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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으로 살어..


BY 2006-11-23

시골에서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들여 옵니다.

 

\" 봉투 큰 것 가지고 오고..찜통도 가지고 와 ..

  어디 있냐면..\"

\" 알아요. 엄마 나..지금 많이 바빠요\"

\" 늦지 말고 와..정서방 어딨어..\"

 

손님을 앞에 놓고 앉아 할 일은 아닙니다.

계속 이어지는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를 손님도

알아 듣고는 아무말도 안 하십니다.

 

\" 끝나면 가요..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는 늘 하실 말씀이 많습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요.

 

김장을 어울려 이모들과 같이 하십니다.

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포기 수도 모르고..무작위로

마구 담습니다.

그리고 열집 정도가 나눠 가지고 갑니다.

담궈진 김치는 또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갑니다.

각 집의 자손들에게 그득히 실려 보내니..

이 양은 만만치 않습니다.

대단하지요.

 

년중 가장 엄마가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는 때가 이때 입니다.

왜냐면 엄마의 일 손은 무척 빨라서 말 나오는 양 만큼

손 놀림도 걸합니다.

그러니 엄마의 진가가 충분히 발휘 되는 때지요.

단..며칠전부터 아프다고 하십니다.

 

\" 내가 삭신이 아파 죽겄다 \"

\" 가지 말아요. 하면서 아프다고 해..\"

\" 내가 안가면 누가 가냐..니가 갈래..\"

\" 아니..그냥 조금씩 담아서 먹으면 되잖아요\"

\" 누가 김치를 담어..값은 얼마나 비싸고..\"

 

사실은 알아요.

엄마의 어린양이며..당신이 하고 있는 일들 중에 가장 큰

노고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긋장을 놓아요.

왜냐면..너무 힘들어서..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어른들 모시고 사는 분들은 이 맘 이해 하실거예요.

ㅎㅎㅎ

 

해시가 끝날 무렵 전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 열심히 하는 동생이지요.

\" 나 지금 들어가..\"

\" 그래 잘 들어가 \"
\" 아..힘들다..\"

\" 밥 먹었어?\"

\" 아니..\"

그러면서 말은 이어집니다.

하루 일과 중 통화하는 시간은 많지만, 그때 그때 마다 다릅니다.

집과 일을 병행하는 여자의 치고, 힘들지 않은 팔자가 없습니다.

참..여자니까..두개를 같이 하지..

사실은 두가지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하지요.

 

\" 언니.. 왜 살어?\"

\" 그냥 산다 \"

\" 언니..나 요즘 00 때문에 살어..\"

서른 중반에 낳은 아들을 이야기 합니다.

일로 마음으로 힘들다가도 십오개월 된 아들을 보고

위안을 삼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 언니가 애들 때문에 산다더니 그 맘을 알겠어\"

웃습니다.

\" 얼마나 잘 먹는지 바나나를 주면 금새 먹고..\"

바나나가 먹고 싶어지게 말을 이어갑니다.

\" 이제 마트가면 00가 이거 잘 먹지..하고 당연히 바나나를

  사게 돼.\"

맞습니다.

에미는 애들이 잘 먹는 입만 보아도 웃음이 나오고..

에미는 애들이 사오라는 것을 사다 주면, 기분이 제일 

좋습니다.

한껏 시장 봐다 풀어 놓으면..달려 와 엄마는 아랑곳 없이

시장 바구니에 매달립니다.

\" 엄마는 안보이지.. \"

\" 엄마!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한참 성장하는 나이이니...당연하지요.

흐뭇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게 에미의 마음입니다.

 

힘든 가운데도 가장 소중하게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 웃는 얼굴만 보아도 힘을 얻습니다.

어떤 분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힘을 얻고..

어떤 분들은 쌀독에 쌀이 그득 담겨 있으면 힘이 난다고 합니다.

 

그 맛에 사는 것을 찾아 보십시요.

내가 힘 얻는 것을 찾다 보면..

세상 사는 맛을 알았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엄마는 김치냉장고를 열어다 닫었다 하십니다.

아마도 김치를 보면 힘이 나는 가 봅니다.

그리고 쭉쭉 찢어 사위 숟가락 위에 올려주기도 하고..

내 숟가락 위에 올려 주기도 하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손자 위에도 언저 주십니다.

\" 아주 맛있어요..\"

정서방은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추임새까지 넣습니다.

\" 맛있어 할머니..\"

손자도 맛장구를 칩니다.

수줍은 미소가 엄마의 얼굴에 그득해집니다.

아마..엄마는 이맛으로 삭신이 아픈데도 먹거리를

준비하시는가 봅니다.

 

그 맛으로 살어..

이..맛...세상 살이 중에 과연 나에게 힘이 되는 것..

잔뜩 움크리고 있다..훨훨 풀어 놓고..아무 사심 없이..

진실한 맛을 볼 수 있는 것..과연 무엇인가요..

 

진짜 힘들다가..

그것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거..

그 마음이 극락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오늘도 나는 극락으로 갑니다.

두손 무겁게 해가지고..

애들의 극락은 아마도 시장에 다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