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279

빌어먹을 년.


BY 2006-11-13

\" 가볼래\"

\" 네..약속 잡아주세요\"

\" 그래\"

찬바람이 도로 한복판을 주행 한다.

녹슨듯한 가랑잎이 빗자루든 아저씨 손을 슬슬

피해 잘도 빠져 나간다.

아저씨 손 시럽겠다.

 

숄을 두른 내 모습이 쇼윈도우에 비춰지며..

더 스산하고, 춰 보인다.

그래.. 내 맘이 춥다.

빌어먹을 년의 마음이..

 

얼마전 스님께서 영이 맑은 사람이 있는데..보련..

하고 일러 주신다.

저 만큼 맑아요..

덩치에 맞게 큰 웃음으로 농을 씻었다.

그래..스님도 일괄해 주신다.

 

아침을 서둘러 보내고..그 분을 만나 뵈러 간다.

지리산에 몸을 두고 있고,

교편 생활 하시다가..영계의 세계를 보는 직업으로..

아직도 호적으론 처녀이지만..딸 하나 둔..엄마..

 

신을 모신 신당 앞으로, 딸의 다복한 세식구 웃는 사진이 

무서운 사천왕상의 용안과 대비되어 있다.

울긋불긋한 느낌은 왜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지..

금방이라도 튀어 나와 춤을 출 것 같은 신들은 어찌나..

선명하게 가슴속에 박히는지.. 흡수되고 있음을 느낀다.

참 강하구나..

 

어른을 뵙는 순간..그의 미친듯한 눈 조짐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린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 오는 징조는 여러가지 이겠지만..

그 기운의 강도는 실성한 사람인듯...

제 정신이 아닌듯..그렇게 보인다.

 

내가 무녀를 찾아다니고..도에 심취한 여러 인물들을 뵈었지만,

이처럼 강한 사람은 처음이다.

\" 일절은 들었어\"

\" 네..\"

\" 나랑 같은 팔자를 지녔구만..\"

\" 그래요\"

어른이 일절로 나를 잡는다.

\" 머리가 썩 좋아..좋은 집 인물 이구만..\"

\" 네..\"
\" 조상대대로 끼도 많고, 화술도 좋고..

  육체도 훌륭하고..멋진 조상이 너를 도와 주는 구나!\"

\" 네..많은 분들이 그 말씀은 해 주셨어요\"

\"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니 팔자를 니가 알터인데..

  뭣 하러 나 같은 것을 찾아 다녀..시간 낭비지..\"

눈이 쌀쌀 맞아지며..날긋한 만세력을 휙 덮어 버린다.

 

\" 그냥 뵙고 싶었어요..그리고 내가 궁금하기 보단..

  어르신이 보이는 그 세계가 더 궁금해서요..\"
\" 빌어 먹을 년 이요..\"

이상 성격의 한도(道)를 하는 분들이라..이렇게 한마디씩

뱉어내며 수습이 어렵다.

\" 어른신..쉽게 말씀 좀 해 주세요\"

\" 너나 나나 빌어먹을 년이란 말이야..\"

\" ...\"

\" 우리 같은 사람은 누구를 빌어 주고 돈을 받어..

  밥을 먹지 않냐..그러니 빌어먹을 년이지..\"

웃음이 이렀다.

\" 남 빌어서 그 놈이 공을 갚으면 좋은 것이고..

  안 갚으면 할 수 없잖냐..그렇다고 팔자를 속일 수도 없고..\"

한 카리스마 하신다.

\" 근데 넌 다르다..넌 머리가 좋고..

  글을 좋아하니..나 보다는 더 힘들지 않을거야 \"

 

어른들을 뵈면..왠지 그 수많은 세월의 갈래를 느낀다.

세월속에 있었던 편견과..아픔과..그리고 어렵게 일궈 온..

어떤 과정을 느끼게 되는데..여지없이 오늘도 느낀다.

 

사람마다 각자의 소임이 있듯..

무(巫)의 세계도 그렇다고 봐야 한다.

그 각자의 소임에 맞춰서 밥을 먹으러 오는 귀신에게

대접을 하고 덕을 베풀어 달라 이야기를 들이고..

융성하게 밥을 해 드리고 처분을 바라는..보이지 않는 세계..

그 세계에서 노는 이분들이야 말로..정말 슬픈 운명체 인가..

 

\" 어르신 식사는 하셨어요?\"
\" 먹었다..차 한잔 주랴..\"

\" 네 주세요\"

찬바람이 신당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추운줄도 더운줄도 모르는 것이 신녀의 몸이라고..

덧붙히며..어..어지간이 바람도 분다..

무슨 뜻일까..바람은 무엇을 의미하나..

 

\" 언제 산으로 가세요\"

\" 이제 가야지..\"

찻잔에 드리워진 내 빛은 왠지 더 쓸쓸해졌다.

 

돌아 오는 길에 빌어먹을 년이란 말이 왜 그렇게 정겹던지.

사람은 누구나 미쳐야 무엇을 일궈낸다.

미친년 소리를 들어야 만이 진짜 참 나를 볼 수 있다며..

어르신은 열심히 더 열심히 공부하라 하신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던가..

 

어쩌면 나는 이름 석자값을 하기 위해 이렇게 발버둥치는

줄도 모르겠다..

아니면 팔자 땜을 하기 위해...업연의 굴레속에서 허우적

거리는지도 모른다.

 

\" 잘 알아 둬라..사람의 마음을 읽고, 사람을 알려는 사람은

  늘 깨끗하고 정갈해야 한다 \"

 

한자락 희망처럼 줄기차게 날 감싸는 이말...

그래..별거 있나..내 마음이 당신의 마음이고..

당신의 마음이 내 마음인걸..

우리는 원래부터 스산한 겨울로 달음질을 하는 걸..

 

빌어먹을 년의 철학이 발길 닿는 곳 마다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