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미개인 조회 : 176

뒤늦은 성묘


지난 추석 때,바쁠 일도 없었건만,벌초도,성묘도 안 하고 지나쳤다.
운동을 하다 허리를 삐끗한 게 이유라면 이유인데,얼마간 몸을 추슬렀고,
마침 헬스 클럽이 공사를 하는 관계로 휴관도 했기에 차를 몰고 의왕시에 있는 어머니 묘를 찾았다.


수풀을 이룬 칡 넝쿨 때문에 잠시 길을 잃었는데,
더듬더듬 올라가는데,눈 앞에 어머니 묘의 십자가와 흡사한 십자가가 세워진 묘를 발견했다.
낑낑대며 기어 올라갔는데,잡초와 칡 넝쿨로 뒤덮인 그곳이 바로 어머니 묘였다.;;

망연자실~!
참으로 무심도 했구나~!


주변의 묘들은 다 깔끔하게도 정리가 돼 있는데...
평소엔 늘 명절 전에 와서 벌초를 하고 갔던 탓에 이런 광경이 다소 생소하고,어머니한테 미안했다.
나무나 굵은 풀 등을 베기 위한 ,두터운 조선낫을 꺼내들고 일단 주변의 잡목 등을 서둘러 제거하고,
왜낫으로 잡초를 파내며 부지런히 벌초를 했다.
"엄마!미안해요~"했더니,
"괜찮다,아파서 그런 걸 어쩌니,앞으론 아프지 말거라!"하시면서도 살짝 ,아프지 않게 꼬집으신다.



아프진 않았는데,어머니 손이 매서웠던지,피가 난다.ㅋㅋㅋ
설마~그 어린 나이의 삼 남매를 두고 떠나셨던 어머니께서 ,성묘가 조금 늦었다고 꼬집으셨을까?
긁혔다.긁힌 줄도 모르고 어딘가에 긁혔다.
어머니 묘에 오면 나는 열다섯 살 장난꾸러기로 돌아간다.
어머니도 서른여섯 살의 젊고 어여쁘신 모습이다.

우리를 떠나신 지 2년 만에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하루종일,문을 걸어  잠그고 울었더랬는데,
그래서 거짓말이라며 어머니 장례식에도 안 가고 버텼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이듬해부터 나만 홀로 봄.가을로 어머니 묘를 찾고 있다.



저 멀리 나와 어머니의 어린 시절의 추억의 상당 부분을 간직한 백운호수가 조망되는 자리에 누워 계신 어머니.
한때는 외가가 남아 있어서 들르곤 했었는데,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작은 외삼촌이 카페를 하신다며 세운 초 현대적 카페만 남아 있어서 안 가게 된다.

어머니 형제가 8남매인데,그 중 맏이셨는데,아직도 여섯 분의 삼촌,이모들이 살아 계신 줄 아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을 하시고 떠나면서부터 어색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틈만 나면 찾아가서 추억을 쌓곤 했던 백운호수 인근의 장소들도,온통 카페나 음식점 등으로 바뀌었고,
최근엔 영원할 줄만 알았던 백운호수 인근에 신도시 급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서서 씁쓸하기만...
참 예쁜 산에 둘러싸인,물도 맑고 공기도 신선한 ,수도권의 천국 같은 곳이었는데,
결국 이곳도 난개발의 손길에선 자유로울 수 없나 보다.ㅠㅠ
접근도 쉽잖은 이곳을 이리 허물어뜨리다니...
사람의 욕심은 정말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
오염되지 않은 곳을 경쟁적으로 찾아 다니며 오염 시키는 놀부 심보라니...



낮의 길이가 짧아진 탓에 평소보다 부지런히 벌초를 하고,잠시 묘비에 걸터 앉아 어머니를 그리다가,
길 가에 핀 들국화 한 줄기를 뚝!꺾어다 상석에 놓아드리고 내려왔다.



인근에 있는 외가의 가족묘에도 들러서 외가의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기원하고 ...

웃긴다,두 아들만의 묘와 가묘만 만들어 두고 여섯 딸의 묘 자리는 없다니...
어머니도 여기에 묻었더라면 한결 편했을 텐데...^*^

어려서부터 어머니 묘에 올 때면 들러서 땀을 씻고,손 바가지로 물도 받아 먹던 계곡에 자리를 잡고,
훌러덩 벗고 몸도 씻고,물도 한 모금 받아 마시고,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눈과 귀를 호강 시켰다.
요즘 들어 나의 최고의 벗이 된 구름과자도 맛나게 먹어주고...^*^

최근 한 친구와 함께 다녀온 적이 있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밥만 겨우 먹고 온 게 못내 아쉬워서 ,
어린 시절 살던 집에 가보고 싶었지만,주말이라 교통 체증이 걱정돼서 서둘러 돌아오고 말았다.
조만간에 시간을 내서 여유있게 ,지금은 온통 새 집들로 바뀌었지만,고향집이 있던 동네도 둘러보고 ,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수원 화성 부근도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확실히 나이가 좀 들고 보니 추억이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