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섬에서의 포근한(습기제거를 위해서라도 냉방기를 계속 가동해야하니..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쿨쿨) 잠자리속에서 늦은 모닝콜을 받고 아침도 여유있게 먹으며 한껏 열대의 느긋함을 즐기며 아침을 맞았다.중국사원을 거쳐 원주민 마을로 이동한다는 가이드 포니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에 올랐는데 어찌나 한국말을 잘 하는지 발음은 어눌하더라도 한국어의 어감,느낌 이런 것을 너무나 잘 표현해 일행의 박수와 칭찬을 아낌없이 받았다.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도 무지 높고 그야말로 코리안 드림같은 것을 다들 갖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자원이랑 사람이 많아 정부가 부정부패만 없으면 잘 살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첫 일정인 중국사원로 이동하며 시야에 들어오는 낙후된 마을의 모습들이 왠지 쨘하기 그지 없다.
(사원내부의 모습)
다민족이 살다보니 종교도 다양하여 불교,도교,이슬람교,힌두교,시크교,그리스도교로 다양한데 도교가 50%를 넘어 가장 많다.중국계가 70%를 넘어서이기도 하지만 불교보다 도교가 더 많고 도교사원도 더 눈에 띄는 듯 하다.사원 지붕위에 마주보는 용이 조각되어 있으면 그것은 도교 사원이란다.그러고 보니 곳곳에 용이 마주보는 지붕을 한 사원이 더 많이 보이네.우리나라 절과는 여러모로 사뭇 다른 절에서 그들식대로 6개의 향을 태워 올리고 다음 행선지인 원주민 마을로 이동하였다.
버스가 내리자 마자 까만 피부 새까만 눈동자의 아이들이 와와 달려들며 "대~한~민~국."을 합창한다.언제 배웠는지
미남,안녕하세요,친구 등등 한국말도 제법 할 줄 안다.과자나 사탕은 모르되 돈은 함부로 주지 말라는 가이드의 당부를 단단히 들은지라...
(민속춤을 같이 추는 큰 아들)
허술한 무대에서 6명의 무희들이 전통 춤을 추는데 얼굴이 한결같이 앳되보인다.그러나 가이드 아저씨의 말은 모두가 유부녀란다.시골에서는 특히 여자가 14살 15살 정도면 시집을 간단다.세상에~~!!!이제 막 중학생이라 할 그녀들이 아줌마라니 애틋한 생각이 마구마구 밀려온다.하긴 우리나라도 예전엔 조혼시키는 풍습이 있었으니 문명과 동떨어진 이 곳 원주민들로서는 어쩜 당연한 건지도 모를 일이지!
공연을 보고 기념 촬영도 하고 그네들이 재배했다는 커피며 수공예품 과일 가게등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그야말로 원주민의 생활이라 할 만 하다.비위생적이고 삶이 녹록치 않을 듯 하여 모두 어이쿠 안타까움의 소리를 내는데 가이드 포니씨의 명해설이 일품이다.
"여기 사람 행복해요오~~!! 불행하지 않아요.도시사람 더 가지려 하고 돈 생각만 해요.여기 원주민들 마음 이씀니이다아~~!!마음 있어서 행보옥 합니다아~~!!"
더이상 무슨 걱정이 필요할까?
마음이 있어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데....
우리는 놓치거나 잊었거나 잃어버린 마음 때문에 얼마나 헤매고 다니는 때가 많은지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다음은 수상 식당에서의 점심.
(수상 식당에서 더위를 식히며)
나무로 지어 놓은 수상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시원했고 시푸드(SEA FOOD)라고 각종 해산물이 요리되어 나오는데 감기기가 있어서인지 향료가 너무 강해서인지 입맛은 뚜욱 떨어졌고 먹는것 보다 눈으로 보는 눈요기로만 거의 식사를 했다고 할까? 다행히 할머니도 잘 드시고 아이들도 땀 뻘뻘 흘려가며 제법 잘 먹는다.휴우~~!!
식사후에 10여분 거리에 있다는 미니 발리에 들렀는데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 리조트이던지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기 싫을 정도였다.우리나라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과 그 주연배우들 이름마저 주욱 꿰뚫는 가이드의 입담으로 한바탕씩 웃음 보따리도 터지고...
(미니 발리 리조트에서 한껏 폼을 재고)
(미니 발리의 나무다리에서...)
끝없이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하나가 되는 수평선까지 그냥 걸어가도 될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경관에 감탄하며
발리를 꼭 가봐야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벌써 솔솔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었으니....과일쥬스도 마시고 이국적인 경치에 흠뻑 취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일정으로 넘어갔다.바탐섬도 우리나라와 똑같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어서 나고야 시내가 있다.지금도 일본에서 많은 것을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오토바이 차량 이런것들은 거의 일제가 많다하니 웬지 씁쓸한 마음!
바탐섬에서는 시내라 할 나고야 시내를 잠깐 둘러보고 여독을 풀기위한 다음 일정으로 신나게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이 무슨 조화로 1시간 40여분의 마사지가 감기몸살기 있는 내게는 과했던지 호텔에 돌아오니 그야말로 제대로 몸살이 낫다.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몸살약 사고 호텔에 들어와서는 약먹고 뜨거운 홍차 마시고 저녁식사시간까지 1시간여 잠속으로 곯아 떨어졌다.모시고 간 엄마가 식은땀 흘리는 나를 물수건 얹어가며 간호하고 아이들은 아빠랑 그새 호텔 수영장에서 신나게 수영을 했단다.엄마께 어찌난 죄송하던지 평소에 멀미를 많이하셔서 걱정이 많았는데 엄마는 쌩쌩 날고 엄마를 잘 모시고 다니겠다던 나는 슬슬 기어다닌 셈이다.
중국식으로 저녁을 먹고 기념품 가게도 둘러보고 호텔 노래방에도 가보고(한국 노래가 300여곡 정도 있다) 각종 부대시설을 즐기며 천천히 객실로 와서 쉬니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듯 하다.아빠와 아이들은 당구장에서 당구를 배우네 가르치네 올라올 줄을 모르고!
다음날 바탐섬에서의 느긋한 휴식과 성실한 가이드 포니씨와의 작별을 뒤로하고 싱가폴로 귀환,싱가폴 제1의 관광지라고 하는 센토사 섬의 관광에 나섰다."평화의 섬"이란 뜻을 가진 센토사섬에서 작은 규모의 해양 수족관을 보고 센토사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위를 날아가는데 가히 장관이다.아래로 내려다 보는 중에 유명한 크루즈 선인 스타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배위의 풀장과 온천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위용이 어미어마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섬 으로) (케이블을 타고 찍은 센토사섬-스콜이 쏟아지는중)
센토사 섬에 내려서 센토사 리조트를 셔틀 차를 타고 한바퀴 돌아보고 머라이언 공원으로 출발하였다.싱가폴의 상징인 머라이언은 사자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는데 예전의 수마트라 왕자가 여기에 도착하여 흰갈기를 가진 사자를 보았다하여 사자의 도읍(싱가푸라)이라고 명명했다하는데 8M의 사자상에서 뿜어내는 시원한 물줄기가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그리고 두리안 모양의 공연장인 에스플라나드와 쌍용이 지은 동양 최대 높이의 건물등이 눈길을 붙잡는다.저녁의 마지막 일정으로 보트키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강(물은 바닷물)을 유람 하기로 하고 우리는 인력거 투어를 하러갔다.
(에스플라나다와 동양최고의 빌딩)
(머라이언 상앞에서)
인력거는 싱가폴에서 유일하게 더러워도 허용이 된다는 인도 거리와 아랍거리를 관광하는 코스인데 싱가폴내의 다민족 문화를 한눈에 알 수 있었고 중국계에 편중된 부와 문화들도 여실히 짐작하고 남음이었다.인력거 자전거를 운행(?)하는 사람들은 싱가폴에서 최하층민이라는데 이들을 보호하고 생계를 지원하려 도로상에서도 차들이 양보하고 지원하는 모습이 다민족 나라 다웠다고 할까? 간단한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는 아저씨의 노고에 감동받으며 쾅쾅 크게도 틀어주는 우리나라 트로트 음악을 들으며 훅하게 더운 도로를 달리니 뭐라고 해야할지....
(인도 거리를 지나며)
인력거를 타고 난후 싱가폴 시장을 둘러보고 군것질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저녁은 한식당에 들려 김치찌개를 먹으니 다시 기운이 충전된다.마지막 여정인 리버보트를 타고 싱가폴강가를 따라 보트키 유람을 하며 찬란한 싱가폴의 밤문화를 눈으로 흠뻑 느낀다.빌딩마다 멋진 야경을 만들려 그런지 대낮처럼 훤히 불을 밝혀 놓아서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식당가가 아닌 금융가 쪽도 환히 불을 밝혀 놓아 밤의 스카이 라인이 화려하기 짝이없다.
(보트키의 야경)
보트키의 야경 감상을 마지막으로 창이 공항으로 달려가 귀국 수속을 하는데 얼른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열대의 더위에 제법 크게 혼쭐이 빠진지라 우리나라의 싸한 공기가 너무나 그리워서...단 며칠만에 더욱 애국심을 고취시켜 돌아가게 되었다.밤을 지새우며 인천 공항에 다다르니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원한 비마저 주룩주룩 내리는데....이렇게 비가 반가울 수가...스흡...심호흡 크게 하며 달디 단 공기를 마시고 습한 스콜의 기억을 지우려는 듯 손을 뻗쳐 비를 맞아본다.
시.원.함.
청.량.함.
잠시 몸이 어깃장을 놓기도 했지만 즐거운 열대 탐험을 하고 온 기분.추억의 한갈피가 곱게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김성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