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으로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올 초부터 서울특별시와 세종문화회관에서 기획한 '천원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매월 5일부터 7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면 컴퓨터 추첨을 통해 3백여명에게 단돈 '천원'으로 훌륭한 공연관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원래 의도는 문화를 향유하기 취약한 시설에 계신 분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분들에게 좋은 공연을 싼 값에 보여주게 하기 위한 문화정책의 일환이지요.
저는 이 프로그램에 있다는 것을 몇 개월전에 알았지만 신청일을 매번 놓쳐서 날짜가 지나고 난 뒤에야 에고 놓쳤구나
다음 달에 잊지 말고 신청해야지 했다가 또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선배가 갑자기 전화를 했더군요. 천원의 행복에 당첨되어 휴대폰 결제를 마쳤으니 9월의 공연 '시카고'를 보러 가자구요.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순발력있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오신 분들은 대학생, 아줌마, 할아버지 그야말로 십인십색이시더군요. 벌써 여러 번 이용해 보신 분들도 더러 계셨지만 9월의 공연은 내용상 15세 이상 관람가능해서
어린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뮤지컬 '시카고'는 한국에서 200년 초연된 이후 200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라더군요.
곧 막이 올랐는데 악단이 무대 중앙을 차지한데다 지휘자가 종종 연기자로 소품담당자로 공연에 참가하는 모습이 신선했고 무대가 좁은 듯했지만 공간과 조명을 잘 조화시켜 짜임새있게 활용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선을 집중시키고자 배우가 무대속 계단에서 또는 어둠속에 앉아 있다가 조명에 의해 존재를 부각시키는 방법도 재미있었구요.
몸매나 연기, 가창력에서 결코 브로드웨이 배우에게 빠지지 않는 최정원, 배해선, 성기윤의 춤, 노래, 연기력에 박수를 보내지만 특히 이번 무대에서 가장 빛났던 '마마'역의 경선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냅니다.
여자살인수를 수감하는 간수장 역으로 분한 경선은 넘치는 카리스마와 역동적인 Force로 여유만만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죄수 뚜쟁이 역을 멋지게 소화해 내더군요.
공연의 주제가 살인, 갱, 배우들이 1920년대를 재즈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거라 다소 어둡고 침울해 지기 쉽건만 간간이 유머와 위트, 상소리로 경쾌하게 긴장을 풀어주는 센스를 발휘했답니다. 남편을 죽인 사연이 제각각인 6명의 죄수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자기가 남자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혀놓고 "죽어도 싸'라는 대사를 내뱉을 때는 살벌한 느낌이 들었고, 출연배우들의 의상이 전부 검은 색에 선정적, 도발적인 디자인이라 미국적인 냄새가 재즈와 함께 물씬 풍겨나는 뮤지컬입니다. 이번 추석때 가족과 함께 뮤지컬을 즐겨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두터운 가족애를 느끼시면서.
다시 배우로 돌아가서 주인공 벨마역을 맡은 최정원의 기름진 목소리와 자연스런 춤, 원맨쇼같은 대목을 연기하는 그녀의 열정적인 에너지가 관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이끌어 냈습니다. 자기는 사랑밖에 모른다고 떠벌리는 돈만 중요한 변호사 빌리역의 성기윤. 그의 긴 호흡과 순발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배해선과 함께 복화술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간의 연습이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군요.
감독이 시작 전 인사말에서 오늘 공연은 내일(18일) 초연전 리허설인 셈이므로 실수가 있더라도 즐기라는 말을 하더군요. 1막만 맛보기로 공연했거든요. 커튼콜은 물론 앵콜도 당연히 없었지요. 저는 3층에서 보았는데 많은 분들이 공연관람용 휴대 망원경으로 배우들을 보시더군요. 저도 미리 알았더라면 꼼꼼하게 망원경을 준비하는 건데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요? 천원으로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공연에 앞서 관람예약 2만번째 손님으로 당첨된 모녀께 1년분 천원의 행복 가족관람권을 증정하더라구요.
와우! 운이 억세게 좋은 모녀를 부러워하며 뜨거운 박수로 축하해 주었지요.
여러분도 잊지 마시고 매월 5일 당장 '천원의 행복'에 신청하세요.
'천원이상의 행복'을 만끽하실겁니다.
10월은 오페라 갈라 콘서트랍니다.
www.sejongp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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