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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와 함께 한 온양 온천여행


BY joongmae 2007-10-10

어머니와 여행!
하면 '효도여행'이 되나요?
우하하! 그렇다면 제가 저희 어머니를 모시고
아니 엄밀히 말하면 어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가셨던 여행을 뭐라고 해야 하나요?
'모녀여행' 이 좋겠네요.
하여튼 이번 여행은 여러 모로 배꼽잡는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그 전말을 여러분께 말씀드릴께요.
 
사실 이번 여행은 큰오라버니가 온양관광호텔 상품권을 주면서 특별히 부탁했던 어머니를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순전히 깍두기로 공짜 여행이었지요.  특급호텔에서 목욕시켜주고 재워 줄뿐 아니라 먹여준다는데 제가 어찌
이런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열일 제치고 날을 잡고 온갖 공치사를 하면서 KTX 천안아산행 특급을 KTX family
Card로  예약했지요.  SMS 발권을 받아 어머니께 세련된 딸(?)이 최첨단 기술을 늘 이용한다는 것을 만고에
뽐내고자...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출발 5분전부터 돌발상황 발생~
 
 혹시 몰라 휴대전화에 심은 SMS 발권 여부를 승무원에게 보여줬더니 할인받은 사람의 자리가 예약되지 않았
으니 빨리 승차원을 발급받으라는 겁니다.  매표소로 뛰어올라가면서 어머니와 언니에게 좌석번호 불러주며
타라고  했는데 헐레벌떡 타고 나서 특실에 가보니 두 분이 없는거예요.  알고보니 내가 뛰어 올라가길래 타지
않고 그냥 승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네요.  승무원에게 워키토키로 다음 차에 승차할 수 있도록 부탁해놓고
간신히 제 자리에 돌아온 뒤 10분후 특실을 맘껏 누리지도 못하고 하차.*-*
 
30분후에 도착하실 어머니가  화를 내시면 어쩔까 싶어 SMS전용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도착하신 어머니
말씀.  "으이그, 내가 정말....."
 
 
 천안아산역에서 나오시는 어머니!                                          온양관광호텔에서 KTX 해프닝을 말씀하시면서 으이그..
 
이쯤에서 순조로울 줄 알았던 여행에 다른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평소 잘 걸으셨던 어머니가 다리가 저리고 찌르는 듯 아프다고 하셔서 욕조에 물을 채워 족욕을 하시도록 했는데
커튼을 욕조안에 드리우고 배수를 했는데 물이 역류해서 카펫이 젖다보니 놀라신 어머니는 벗은 몸으로 욕실을
훔쳐내기 바쁘셨고 세상 모르고 객실에 앉아 있던 나는 사후 약방문 격으로 프론트에 연결해 방을 한식으로 교체
해달라는 전화 한 통뿐.  제가 하수구가 막혔는지 실험삼아 샤워를 했더니 이미 어머니께서 작업을 해 놓으셔서
물길이 뻐엉 뚫려 만사 OK! 그 시간이 밤 12시 30분.
다음 날 한식 온돌방으로 교체하려고 짐을 싸 옮기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직 방에 불을 들이지 않아 냉골이라는
말에 어르신이 몸이 불편해 따뜻하게 주무시라고 온돌방으로 옮기는 것인데 방이 따뜻하지 않으면 다시 류마티스
가 도지니 원래 방으로 다시 가겠다고 했죠 뭐.  어떻합니까? 어르신이 냉골에서 위풍만 훈훈하게 주무시지 못하는
데.  직원이 전기장판을 구해주겠다는데도 사정을 얘기했더니 다른 양식방을 주더군요.
짐쌌다가 옮기고 다시 싸서 풀기까지 자꾸 화가 나는 걸 꾸욱 참고 인내, 인내를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해프닝을 얘기하다 보니 정작 온양온천에 대한 소개가 늦었네요.  온양은 1300년전 신라 문무왕 663년부터 귀한
물이 솟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세종을 비롯한 세조, 성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께서 자주 들르시던 행궁이었습니다.
사도세자께서 활을 쏘셨다던 '영괴대'와 부근에서 발견된 '석불' 그리고 신비한 물이 솟았다는 곳에 세운 '신정비'
등이 보존되어 역사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1903년 초기 온양관광호텔 사진과 1923년 설립 당시 사진을 1층 통로
에서 볼 수 있고 온양행궁전시관이 1층 신관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외암민속마을 살림집                                                                  둘째날 다리가 많이 좋아지신 우리 어머니.
 
아침에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 난 후 여행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는데 온천욕을 하고 풍성한 호텔조식을 잘 드신 후
우리더러 너희들끼리 구경하고 돌아오라시는 어머니를 혼자 호텔방에 계시게 할 수 없어서 관광지에서 휠체어를
대여해 주니 함꼐 나가시자고 했더니 그냥 계시는 게 편하시다고 하셔서 언니와 둘이 두 시간가량 외출했다 오기로
하고 외암민속마을을 구경했습니다.  다른 민속촌과는 달리 현재 주민들이 살림을 하는 마을의 집들을 민속마을로
재구성한 곳이라 마음이 넉넉해 지는 곳이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오지 않아 마음은 영 불편하더군요.
떡메치기, 널뛰기, 그네뛰기, 전통혼례장에서 혼례복입고 사진을 찍으며 백성의 살림터, 양반 주택들과 무덤을
둘러 보았습니다. 나즈막한 곳에 고즈넉한 산촌이었죠.
 
다음날은 온천욕과 족욕으로 상태가 좋아지신 어머니를 모시고 바깥구경을 시켜드리기로 작정하고 가까운 신정호
관광지로 갔어요.  산책로와 호수유원지가 양쪽에 조성된 관광지라 어머니는 정자에서 경치를 보며 쉬시도록 하고
언니와 나는 40분 정도 산책을 하면서 어머니를 자주 바깥에 모시고 나오자고 약속했습니다.  더이상 걸을 수 없으
시면 휠체어를 이용토록 강요해서라도.
 
 
이정렬 고택                                                                                  신정호수 정자에 앉아계신 어머니
 
좀 걸으시겠다는 어머니를 부축해 신정호 주변을 아주 천천히 여유있게 걸어 보았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어머니 손이 어쩜 그렇게 따뜻하던지요.  늘 일손을 놓치 않으신 당신 덕에 제가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걸으시면서도  "얘, 거기 위험하다, 가지 말라, 여기 조심해라, 돌이 있다."
화장실에서 늦게 나오면 문을 두드리시면서 "얘, 너 뭐하느라 이렇게 늦니?" 하시는 거예요.
 
 
 
신정호 주변을 산책하시다가.                                  버섯전골을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
 
따끈한 국물을 이마에 땀이 송송 밴 채 드시면서, 랩스터를 자르며 폼재고 있는 딸에게 어머니는
 "얘, 이거 참 맛있구나.  너도 좀 먹어봐라." 하십니다. 
친구도 올해 어머니를 보시고 일본여행을 다녀 왔는데 새벽 5시면 일어나셔서 부시럭 대는 어머니때문에 잠을
설쳤다면서 "우리도 나이 먹으면 어머니처럼 그럴까?"라더군요.  추억은 지나고 보면 더 아득하죠.
여러분!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세요.
조만간 후회하기 전에 어서!!!


최중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