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값이 비쌌던 어린 시절엔 키높은 찬장에 놓여진 설탕종지에서 한 숟가락씩 퍼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국수를 말아먹거나 미숫가루를 타먹을 때 하얀 당원을 넣다가 설탕을 넣었을 때의 다른 느낌,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 2층 복도에 놓여진 설탕들 * 설탕의 가짓수도 많다. 현재 통용되는 독일 설탕도 보인다 * 설탕제조관련 화학실험 장비이다. * 설탕의 제조관련 사진 * 사탕무우 모습이다. 실제모습이다. * 과거 각설탕 기구 * 설탕을 만드는 과거 식민지 시대의 유물 * 실제 노예들의 사진이 보인다. * 과거 설탕제조공장을 보여주는 입체사진 * 우리 딸아이가 침 흘리는 마시멜로 * 설탕 관련 치아건강까지 전시해놓고 있다 * 세계 각국의 설탕회사와 포장지 전시. * 설탕 포장지 * 여러 가지 설탕종지....ㅋㅋㅋ. 예쁘기도 하지 * 해당 제품에 설탕이 몇 개 들어갔지? * 으악~ 콜라에 저렇게 많은 설탕이 들어가다니~ 엄청 좋아하는디~ * 설탕제조 장비 * 과거 식민지시대의 설탕농장 사진. 흑인노예를 다루는 흑인십장. 노예를 거꾸로 매단 모습도 보인다. 노예제도를 없앤 링컨 할아버지가 존경스럽다. 갑자기 멕시코 애니깽도 생각나고~~ 이 박물관은 당시 설탕산업연구소의 Herzfeld 교수에 의하여 설탕산업 관련 역사적으로 중요한 물품들을 전시하고 보관하고자 설립되었다고 한다.
요즘같이, 설탕이 흔해진데다 종류까지 많아지고, 건강까지 생각해서 조절하는 마당에야 설탕의 존재가치가 희미해졌지만 어린 시절엔 정말 달콤한 유혹이었다.
물론 ‘설탕’ 하면 우리 민족의 우울했던 과거사가 떠올라 울컥하는 마음도 없잖다. 1905년 강제이주방식의 노예로 멕시코 농장으로 팔려가 처절한 삶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사탕수수 작업도 설탕의 역사와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솜사탕’의 낭만적 감상에만 몰두해 있는 두 딸아이를 데리고 ‘설탕박물관’(Zucker Museum)을 찾았다.
1904년 5월 8일에 세워져, 올해로 104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설탕박물관이다.
아래 수갑같이 생긴 게 실제로 노예들에게 사용한 쇠사슬 조각
우리나라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안보이넹~~내가 하나 갖다놓을까봐~~
이곳은 설탕의 시대사적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고, 실제 장비들이 보관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귀중한 학습자료로 손색이 없다.
즉 1747년에 사탕무우에서 설탕을 발견하고, 식민지 경제 속에서 노예경영과 설탕농장을 경영했던 유럽식민지시대 등을 시대별로 구성해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들이 풍부하다. 또한 사탕무우의 가공과 설탕 생산을 단계별로 설명하고 있고, 부산물 또한 상세하게 보여준다.
설탕박물관의 역사를 보면 45년 이전에는 설탕산업연구소 산하의 박물관으로 지원되었다가, 45년 이후엔 베를린 주정부의 예산을 후원받고, 78년엔 베를린 공대에 위탁되었다. 그후 82년 2월부터는 ‘베를린 설탕박물관 후원회’가 결성되어 회원들이 매년 40유로의 후원금을 내기도 한단다.
물론 89년 베를린 주정부 지원 독일 기술박물관 산하로 들어가 입지를 더욱 굳히고 있다.
현재 이 박물관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월-목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열고, 일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픈하고 있다. 일요일은 설탕으로 만드는 예술작품을 시연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관람하는 아이들에게 비지땀을 흘리며 시연을 보이는 예술가 아저씨
* 뚱땡이 예술가가 드디어 완성한 예술품. 저거이 다 설탕이라넹~
우리 가족은 일요일에 방문해서 이 특별시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설탕을 녹이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설탕예술품을 만드는 시연자의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중간중간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는 덩치 큰 예술가의 손매가 언밸런스했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나 또한 기분이 해사해진다.
우리 생활 속 동반자 같은 설탕, 아이들이 먹는 거의 모든 제품에 설탕의 위치는 아직도 확고하다. 그렇다면 이렇듯 삶에 가까운 설탕에 대해 관련된 지식만 병행된다면 참지식이 되리란 기대감... 그 기대감을 채워주는 체감적 박물관.
오늘도 아이는 입에 물고 있는 초콜릿에 설탕이 몇 조각 들어있는지 세면서 먹는다. 박물관에서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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