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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통상점에서 잡은 토끼, 잡아먹다


BY kyou723 2008-03-26

 

이번 주와 다음 주인 3월 30일까지는 독일의 오스턴 페리언(Ostern ferien; 부활절 방학)기간이다. 큰아이 초등학교 휴업 일을 세어보니 딱 16일이다.
생각해보니 독일은 이런 일 저런 일로 쉬는 날이 부지기수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하는 것이야?’ 볼멘소리로 제법 교육열 높은 엄마흉내도 내본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쇼핑센터와 상점이 문을 닫는다. 그러니 그 이전에 몇일 분의 식량을 비축해놓아야 한다. 부활절 휴가에 이리저리 휴가를 떠나는 독일인들과는 달리 긴 휴가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아무래도 아이들과 베를린 내에서 뜀뛰기 관광이나 하려고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부활절 토끼모형을 그리며 차분히 부활절을 맞고 있다.
독일의 부활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달걀과 토끼라고 볼 수 있다.
‘부활절 토끼’는 종교적인 근거라기 보다는 토끼의 왕성한 번식력을 상징하고, 새로운 계절인 봄을 맞는 기대감에 부합한 동물로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물론 1678년부터 토끼가 부활절에 언급되었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부활절 기간인 이때에는 일반 할인점이나 길거리의 쇼핑센터에서도 초콜릿으로 만든 달걀과 부활절토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소비하는 초콜릿 양이 독일에서 연중 최고라고 하니 대단한 명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시중에서는 초콜릿으로 만든 모형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어쩌면 초콜릿 시장의 대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는 초콜릿과 카카오 전문매장이 있다.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이곳은 부활절을 맞아 부활절 토끼와 각종 초콜릿 모형을 진열해 판매하고 있었다.
초콜릿으로 만든 부활절 토끼를 주변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매장을 찾았는데, 관광객은 물론 구매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1863년에 오픈한 이 전통적인 초콜릿 상점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여러 가지 초콜릿 모형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게문을 들어서는 입구에 ‘Seit 1863'이라는 오픈년도를 표기하고, 정문을 막 들어서면 이곳의 최초의 주인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 초콜릿 가게 입구

 * 앙증맞은 부활절 토끼 초콜릿

 * 사람모형까지~

 * 우리 아이가 좋아하던 핸드폰 모형의 초콜릿 

 * 엄청나게 큰 부활절 토끼 초콜릿. 저놈 한 번 잡아먹었으면~~

 * 정말 맘에 들었던 초콜릿으로 만든 성. 신기해서 만져보고 손가락 빨고~~..ㅋㅋ..

 * 신기한지 초코릿을 만져보는 딸들

 * 초콜릿 상점 전경

 * 전통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

 * 초콜릿 가루....'초콜릿 차'라고 한다

 * 콩처럼 생긴 초콜릿

 * 저기 서있는 사람 옆 토끼가 모두 초콜릿으로 만들어졌다.

 * 부활절 초콜릿 토끼의 전형적 모습? 이거 사서 먹었는데..

 모형이 너무 정교해 먹기가 아까울 정도, 토끼야 미안해~토끼 맛도 입에 살살~~

 * 1863년도에 누가 만들었나?

이곳에서 오래된 가게를 보니,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 명동의 먹자골목 한귀퉁이에 나이 드신 할머니가 경영하는 80년 된 순대국밥집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막걸리 세대인 직장선배들을 따라 후미진 골목으로 따라들어가 맛있는 빈대떡을 후하게 대접받았던 오래된 밥집들.
초로의 노인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마치 세월을 거슬러 그분들과 같은 세대를 걷는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데... 물론 경로당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고...
전통이 있는 베를린의 초콜릿 상점을 바라보며 이국적 냄새를 느끼면서 자못 흐르지 않는 역사의 언저리에서 관망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나라의 문화를 3인칭적 관점에서 읽는 느낌이다. 이렇듯 나의 이방인적 감상주의적 관심처럼 많은 외국사람들도 우리의 허름한 전통밥집을 방문했을 때 이색적인 감상에 빠져들까.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순대국밥의 어색한 향에 코를 쥐고 나오지는 않을까.
물론 순대국밥과 초콜릿의 비교는 어불성설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먹는 것이라는 공통분모를 놓고 볼 때 아예 상관없는 비교는 아닌 듯 싶다. 절대 ‘비교불가’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마음 깊은 곳을 헤집어보라. 아마도 그 마음 깊숙이 문화적 사대주의에서 출발하는 어줍잖은 비교의식이 꿈틀대기 때문이 아닐까 반문하고 싶다. 바로 내 심중의 작은 터럭이 그러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마음의 양심은 다시 외친다. 앞으로 독일지인들과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그 할머니가 운영하는, 80년된 허름한 순대국집을 데리고 가리라. 물론 그때도 운영하고 있다면 말이다. 비록 식당 안에 삐걱거리는 의자, 지저분한 테이블, 그리고 거나하게 술에 취한 초로의 노인들이 풍기는 주사가 진동하더라도....
그러나 내심 마음이 오락가락이다. 이게 바로 한국의 맛이라고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을지. 내내 고풍스럽고 고급스런 1863년도에 오픈한 초콜릿 가게가 눈에 어른거린다. 니도 문화사대주의에 점령당했냐?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