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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호 보람이


BY 통통감자 2000-10-02

> 아줌마? 얘는 왜 그렇게 뒤뚱뒤뚱 걸어요?

갑작스런 여자아이의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140cm 가 될까말까한 여자아이가 뒤에서 우릴 쳐다보고 있다.

> 응! 우리 형주는 아직 기저귀를 차고 다녀서 그래.
너도 어렸을 땐 이렇게 뒤뚱뒤뚱 걸었을걸?

뭔가 이해를 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이사온지 10개월이 다 되가지만 직장생활 관계로 그다지 이웃과 왕래를 하지 않는 터인지라 어린이웃의 관심이 무척 반가웠다.

> 꼬마야! 너 어디사니?
> 치! 저 꼬마 아니예요. 이름은 강보람이구요.
4학년이예요.
그리고 우리집은 502호 예요.

무척이나 활달한 아이같았다.
묻지도 않은 대답을 줄줄이 해댄다.
즐거운 마음에 아이의 걸음에 보조를 맞춰서 길을 걸었다.

> 아줌마도 좋은 엄마는 아니군...

앗! 깜짝이야!
겨우 11살 먹은 꼬마에게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다니...
한편으론 언짢고, 한편으론 그 이유가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 왜? 아줌만 좋은 엄마인데 넌 왜 그렇게 생각하니?
> 아니요. 그냥요.
> 너무 궁금하잖아.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
> 종이기저귀요. 종이기저귀를 쓰면 환경이 파괴되요.
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러고 보니 형주의 내려간 바지 끝에 삐죽이 종이기저귀가 보였다.
처음만난 꼬마이웃에서 종이기저귀 하나로 나쁜엄마가 되다니,...

> 응, 아줌마가 바뻐서 천기저귀를 채울수가 없단다.
그리고 외출할땐 대부분 종이기저귀를 채워요. 다른 엄마들도.
아줌마도 아기가 더 어렸을땐 회사에 나가지 않아서 천기저귀를 썼는걸?

여전히 금테안경의 똥그란 눈은 동의할수 없다는 불만의 눈으로 빤히 쳐다본다.
이쯤되면 나도 더 이상은 외면할 수가 없었다.

> 그래. 맞다.
종이 기저귀 한 개가 썩는데 100년이 걸린다는구나.

의기양양해진 아이는 슈퍼에 다 왔는데도 여전히 내 옆에 서 있다.
형주 과자를 집어들면서 보람이라는 아이에게도 하나 건넸다.

> 아니예요. 괜찮아요.
엄마 심부름 왔어요.

조미료 하나를 집어들고 계산하는 아이에게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얘기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당돌하면서도 야무진 아이가 왠지 싫지는 않았다.
큰소리로 "예!" 하고 대답하며 가는 아이에게 미쳐 얘기못한 이야기를 입속으로만 되뇌여본다.

{ 보람아. 종이기저귀의 소재는 99%가 폴리프로필렌이나 폴리에틸렌 같은 고분자 화학물질 이란다. }
{ 고분자 화학물질이란 구조가 매우 복잡하게 꼬여있어서 분해하기가 어렵지. }
{ 더구나 불에 잘 타는 물질로 만들어졌지만 수분이 많기 때문에 소각하기도 쉽지 않고, 소각하더라도 유독성 물질이 많이 나온단다. }

어디선가 종이기저귀를 생산하는 업체에서 종이기저귀와 음식쓰레기를 혼합하여 사료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다보니 종이기저귀의 소비는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나 역시 어느때 부턴가 자연스레 종이기저귀만을 사용하고 있다.
가급적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부득이 하다면 기술적으로 생분해 시키는 방법이나 재활용 방법을 강구하는 길이 21세기를 맞이하는 기업들의 자세가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11살 배기 꼬마에게 많은 것을 배운 듯 싶다.
금테안경의 얼굴이 하얀 꼬마, 보람이와 좋은 이야기 친구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