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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가 죽었어요


BY 통통감자 2000-11-14

형주를 놀이방에서 데리고 오다가 현관 옆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보람이를 보았다.
우리집은 1층이기 때문에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보람이는 고개를 푹 숙인체 계속 앉아 있었다.

> 보람아!
차가운데 거기 왜 앉아있어?
엄마한테 혼났니?

> .... (고개를 숙인체 머리를 가로젖는다.)

아이를 달래서 집에 데리고 오니 그제서야 얼굴을 들고 마주 앉았다.

> 왜?
무슨일이야?

> 물고기가 죽었어요.
제가 죽였어요.

....

사연인즉, 마트에서 사온 금붕어를 엄마 몰래 보람이가 물을 갈아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음날 아침에 보니 세 마리 다 죽어서 물에 둥둥 떠 있었다는 것이다.
싫다는 엄마를 졸라서 간신히 사온 금붕어인데, 먹이를 너무 많이 주었는지 물이 더러워서 엄마에게 칭찬 받으려고 물을 갈아주었단다.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사온 금붕어였기에 더더욱 엄마 손이 안가도록 깐에는 무척이나 신경을 썼던 듯 싶었다.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아직 엄마가 모른다고 하니 퍽이나 걱정스러운가 보다.

> 흑흑... 엄마가 금새 죽는다고 키우지 말라고 했는데,.. .(훌쩍훌쩍...)

> 흑흑... 잘 키울 수 있다고 막 졸랐는데,... (훌쩍훌쩍...)

게다가 보람이가 고른 물고기는 예쁘기는 하지만 유독 약한 종이었던 듯 싶었다.

> 보람아.
수돗물에는 나쁜 병균이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 약품처리를 한단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해롭지 않지만,
금붕어처럼 약한 동물에게는 죽음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
물을 갈아주려거든 미리 수돗물을 받아다가 몇 시간 쯤 가라앉힌 후에
윗물만 걸러서 원래 있던 물과 반씩 섞어줘야 한단다.

> 왜요?
왜 그렇게 해야해요?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건데?
왜 물을 넣었는데 죽어요?

아이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보람이 생각에는 깨끗한 물을 받아 주었으니 더 잘 살아야 하는데, 왜 죽는 것인지 수긍할 수 없는 듯 싶었다.

> 물이 깨끗하게 보인다고 해서, 다 깨끗한 물은 아니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도 있고, 또 중금속과 같은 물질이 녹아서 들어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먹는 물을 보내기 전에 염소나 오존 같은 것으로 살균을 시키고,
중금속을 없애기 위해서 약품을 넣어서 처리를 하는거지.
이 성분이 물속에 남아 있어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나 역시 정수기의 물을 사용하는 지금 먹는 물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때 부터인가 수도관을 통해서 나오는 식수를 안심하고 마실수 없었고, 낡은 관을 통해서 나오는 시뻘건 녹물을 보며 아찔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의 기술로도 정수처리며 상수처리는 완벽에 가깝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고도의 기술로 서비스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적인 측면 때문이다.
게다가 낡고 노후된 상수도관의 문제로 인하여, 설사 제대로 처리된 맑은 물이 공급된다 할지라도 관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이차오염이 유발된다.
그렇다고 그 많은 관들을 다 새로 바꿀수도 없으니, ....

자신의 잘못으로 금붕어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얘기해줬다.

> 그건 보람이 잘못이 아니야.
맑은 물을 지켜내지 못하는 어른들의 잘못이란다.
물을 더럽히면 어항속의 금붕어 뿐만이 아니라
호수에 있는 붕어나 잉어도 바닷속의 물고기도 다 안전하지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