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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여자,노련한 남자...이중적인 성 개념


BY 미개인 2019-02-07


*이중적인 성 개념-순결한 여자,노련한 남자
           https://blog.naver.com/qkdnl098/110096277262

얼마 전,라디오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온 적이 있다.
"아니,왜 여자 연예인들은 스캔들이 났다 하면 인생이 끝장나야 하냐고요!
남자 연예인들은 별 상관이 없거나 ,좀 타격을 받더라도 다시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여자 연예인들한테는 왜 더 까다롭게 구는 거지요?정말 화가 나요!"

우리를 둘러싼 성 문화 속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행동의 의미가 서로 달라진다.
여러 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어떤 남자 연예인에 대해선 아무도 '걸레'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면 여러 명의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여성 연예인은 쉽게 '걸레'라고 부른다.
더러운 인간이라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을 둘러싼 성적 각본에 의하면 
바람직한 여성의 첫째 조건은 순결을 지키는 것,결혼한 사람하고 만 성관계를 맺는 것인 반면 ,
바람직한 남성의 첫째 조건은 경제적 능력이지 결코 순결이 아니다.
때로는 성적으로 경험이 많은 노련한 남성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내가 더러워진 느낌이다!

20대 후반인 나는 남자 친구와 그리고 둘의 친구인 남자아이 Y,이렇게 셋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Y는 이제 막 대기업에 취직을 하여서 기분이 좋았는지 마구 술을 마셔 댔다.
그러다가 술에 취해 옆의 아저씨에게 시비를 걸었고,
일렬로 나란히 앉아 있던 셋은 자리 배치를 바꾸어 나를 가운데에 놓고 양쪽으로 나눠 앉았다.
내 남자 친구는 화가 난 옆의 아저씨를 달래느라 아예 옆으로 돌아 앉아 이런저런 ㅇ;약;를 하고 있었고,
내 옆에 앉은 Y는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하며 막 울기 시작했다.

나는 Y가 불쌍해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팔로 쓰러지지 않게 잡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Y가 손을 내 코트 밑으로 집어넣더니 허벅지를 만지고 가슴을 만지려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뭐라고 말도 못하고 '야!야!'만 연발하며 손을 막 떼려 했다.
하지만 술에 취해서도 어찌나 힘이 센지 손이 거의 가슴에 닿을 지경이었다.
내가 다급한 소리로 '야!야!'부르는 소리를 들은 남자 친구가 돌아다 보며,
'왜?토하려고 그래?'하고 태연히 물었다.
그제서야 Y는 손을 슬그머니 뺐고,그들은 Y를 바로 옆 숙소에 눕혀 놓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내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평소 여성 문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많이 고민해 왔고,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도 많이 생각해 온 나였지만,극심한 분노 만이 아니라 '더러워진'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남자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아까 그 상황이 떠올라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분노,배신감,수치스러움,역겨움이 모두 한데 섞여 정말 토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남자 친구는 분노만 있는 듯했고,그 분노는 곧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의 남자 친구는 Y에게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는 척하며 Y는 메세지를 몇 번 남겼지만,결코 연락을 하지 않았다.
Y를 다시 본다면 일단 그때의 역겨운 느낌이 살아날 것이므로 지나가다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 놈은 멀쩡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멀쩡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온 몸에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은 이런 느낌들을 훨씬 강하게,그리고 오래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성범죄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회의 통념에 의한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말이다."

      --사단법인 한국여성민우호 저  '성희롱-당신의 직장은 안전합니까?'에서--

~참으로 고리타분한 이야기이지만,지금이라고 저런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생태적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추구하는 여성과 육체적 관계를 중시하는 남성의 생리적 특성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만나서 이뤄졌던 남성 위주의 성 문화가 지금이라고 말끔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순종적인 여성을 원하는 남성이 많으며,경제적 능력을 갖춘 남성을 우선 시 하는 여성이 많고,
여성들도 딸보다는 아들을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는 등,
어딘가 모르게 남녀 공히 그런 분위기를 고착시키려는 듯한 작태를 펼치고 있으니...
누가 누굴 질타할 수 있을까?
하지만 49대 51 정도로 남자에게 조금 더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남성들의 각성이 절실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에게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조리한, 불합리한 상황을 당하거나 목격하면서도 쉬쉬 하는 것은 거기 동참하는 것 아닐까?
반대편에선 그럴 줄 알고 더욱 기승을 부리며 부조리와 불합리를 키워 온 건 아닐까?
그리고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남아를 선호하며 운동장 자체를 남성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나마 각성한 사람들이 목청을 높이는데,
거기 반발하는 데 삐딱한 남성들 만이 아니라 상당한 여성들이 동참하고 있지는 않은지?
위의 글에서 남녀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보는 시각의 왜곡에 여성들의 책임은 전혀 없는지?

일제 식민지를 거치고,다시 친일매국노들에 의해 유사 식민지로 100년 넘게 살아오면서 뼛속까지 배어든 ,노예 근성,피해망상증이, 
3.1혁명으로 시작돼서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민주 혁명을 거치면서도 결국 죽 쒀서 개 주고 마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주인 정신이 부족한,여전히 다스려지는 걸 편해 하는 거지 근성 때문이 아닌가?
심부름꾼을 뽑아 놓고는 이내 그 심부름꾼의 수하로 들어가서 다스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여권 신장을 외치고 남녀 평등을 주장하면서 얼마간 흐름은 돌려 놨는데,아직 그 흐름을 주도하는 게 두렵지는 않은지?
권리는,자유는 투쟁하는 만큼만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이 있잖은가?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남녀 간의 성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선 직접 나서서 투쟁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게 동등한 존재로 나설 수 있고 대접 받을 수 있게 된다.
최근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나 ,서 모 검사,심 모 선수 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면서 자신의 의식을 점검하기 바란다.


위의 글은 10여 년 전에 쓰여진 글이다.
그동안 많이 변했다지만,아직도 위의 글의 사례처럼 참고 ,화가 나는 걸 스스로 삭이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서 모 검사나 양 모 양,심 모 선수의 '미투' 운동을 보면서,어차피 되지도 않을 텐데 뭐하러 저러나 생각하고,
먼 발치로 불 구경 하듯 굿이나 보다가 떡이나 먹으려는 도둑놈 심보를 펼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거기서 그치면 좋은데,제2의 성 폭행이라 해야 할 언행을 일삼는 여자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스스로 나서서 투쟁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불의를 보고 분개하고 투쟁하지 않는 것은,그 불의에 동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봐왔으면서 
여전히 고지식하게 '여자답게', '조신하게' 고고하려는 비겁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최초의 민주 혁명이랄 수 있는 3.1혁명 100주년을 맞는 지금도 이런다면,
앞으로 또 다른 100년이 지나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의식 개혁이 있지 않으면 ,제2의 바벨탑을 건설하려는 족속들의 물신 숭배에 넋을 빼앗기는 데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바람직한 남성의 첫째 조건'으로 경제적 능력을 앞세우는 우를 계속 범한다면 ,
제 아무리 페미니즘을 외치고 젠더  논쟁을 펼쳐도 겉 모습만 살짝 바꾸는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본주의적 사고를 하지 않고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면서 물신을 숭배하는 한 0.1밀리미터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편하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벗어난 것만 추구하면 ,
그럼으로써 수단을 목적에 앞세우는 가치 전도 현상을 자연스럽게 만들면 세상은 점점 더 망가지기만 할 것이다.
여자는 수동적이어도 되고,여자는 보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여자는 수줍어 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지 말자.
남자는 강해야 하고,주도적이어야 하며,능숙해야 한다며 스스로 부담을 짊어지지 말자.
우리는 모두 존중받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대중가요에서도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가 아니라 '당신'이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강조하지 않던가?
노래는 잘도 따라 부르면서 실제 행동에선 왜 '당신' 대신 '나'만 강조하는 실수를 하는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말은 잘도 따라하면서 
당신만이 아니라 당신의  상대도 그런 존귀한 존재라는 건 왜 이리도 잘 망각하는가 말이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당신'더러 '나'를 사랑만 하라 강요하진 말자.
귀하디 귀한 '당신'에게 납작 엎드려서 '나'만 귀히 여기라고 강요하진 말자.
내가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면서,사랑해 달라고,대접해 달라고 요구하자.

이는 성 개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인 관계에 다 적용되는 것일 것이다.
네 탓을 하는 대신 나부터 돌아보며 내 탓을 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다.
싸움도,질투도,전쟁도,비난도 하지 않고, 서로 돕고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