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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연히 알게된 목사님의 제의로 인해 저는 무신론


BY 민트21 2010-10-06

얼마전 우연히 알게된 목사님의 제의로 인해 저는 무신론자에서 처음으로 교회란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교회란곳을 처음알게된후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려움에 닥혀있던 나에게 많은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조용한 기도의 시간이 이어졌고, 그후 교회사람들과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교회의 웅장한 분위기에 걸맞게 식당내부도 상당히 격조있고 큰 광장같은곳일거라 상상했던 나의 생각은 기후였을까요? 식당안은 가족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아기자기한 벽지에 잘 조화된 배경, 옛날 동화속에 나오는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아주 꼼꼼한 교실같은 분위기의 나즈막한 방안이었습니다. 겨울 눈이 하얗게 쌓여서 상당히 추울때인데도 온돌방에 약한 보일러의 온도가 목사 사모님의 깐깐한 살림솜씨를 보는것같아서 내심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교실처럼 잘 조각된 인형과 아기자기한 인형들,아이들이 만든 종이액자등 소품들도 소담스럽고 익살스럽게 정감이 있어서 점심식사가 나오기전까지 유심히 보았습니다. 텔레비젼도 대형벌티비젼이 아닌 소형텔레비젼으로 절전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눈에 띈것은 목사님 내외분에게 요즘드물게 아이들이 네명이나 되는거였습니다. 목사님이나 사모님연세도 사십대초반의 젊은 부부였는데 다출산가정이란 생각에 더 깊은 정이 느껴졌습니다. 점심을 준비하는내내 사모님의 손길이 바빠졌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날에 사모님이 준비한 매뉴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하얀국수였습니다. 음식솜씨도 맵고 깐깐하셔서 깔끔하고 정갈한 상차림이 이어졌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것이 아닌 좌반식 식사테이블이었는데 상이 넓다랗게 펴지고 그위에 국수를 먹는데도 수가지나 정성껏 반찬을 준비하셨습니다. 잘익은 곰삭은 김치,국수와 곁들일 시원한 무동치미,찬가지수도 얼마나 많은지 반찬하나하나가 정갈하고 맛있어서 어떤곳에 젖가락을 두어야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목사님이 상당히 작은 교회를 운영하면서 경영난이 심할텐데 이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까? 하는생각이 제 머리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큰 아이는 고등학생이었고,둘째역시 중학생, 다소곳한 착한 딸아이는 국민학생 거기에 갓 태어난 늦둥이 남자아이까지. 참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세상에 없는 값진 행복을 일궈가고 있는 젊은 목사님 부부가 상당히 부럽고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거드는 중학생 딸아이와 초등학생아이들, 모두가 교회일에 한껏 나서는것을 보면서 곱게만 키우기보단 성실하고 믿음직한 아이로 키운것 같아서 보는사람도 참 흐뭇했습니다. 중학생이라서 상당히 바쁘고 자기할일도 많을텐데 엄마를 도와 열심히 하는모습을 보니 정말 대견해 보였어요. 그렇게 무거운 두리반상을 작은 몸집으로 땀을 흘려가면서 나르는 아이, 또한 아빠의 교회일을 도와서 한아이는 피아노를 치고, 한아이는 드럼을 치고, 온가족이 교회의 운영자가 되어있었습니다. 같이 함께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고 ,언제나 웃음이 있는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너무도 맛있게 목사님이 제공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겨우내내 그 추운겨울동안 교회에서 보낸시간은 제게 많은 인생의 경험이 되어주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를 듣지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출산 자녀의 교육방식과 아이들의 성실함과 목사님가족의 부부사랑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웠고 저역시 그런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겨우내 찌푸렸던 날씨가 언제그랬느냐는듯 어느샌가 새순이 파릇파릇 돋고 생명이 자라는 신호를 하듯 버들가지에도 물이 돌고,뽀얀속살을 드리우고 따사롭게 서있습니다. 우리가족역시 다출산가정이 되었습니다. 서른살에 정말 내맘에 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콩고물같이 귀여운 두아이들을 낳았네요. 하나는 남자아이 하나는 딸아이 이렇게 둘을 낳아서 기르게 되면서 정말 출산이란 이렇게 큰 나의 성장과 황홀경을 가져다 줄지 결혼전에는 미쳐알지 못했습니다. 결혼이란것을 하게 되면서 가장 인생을 행복하게 했던것은 돈을 들이지 않고 수적가치로 환산할수없는 엄청난 기업을 선물받은셈이지요. 아이둘이 커가면서 보여주는 재롱과 행복감이 이세상 어디에도 비할바가 아닙니다. 저는지금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8년간의 긴 투병가운데에서도 우리가족이 웃음을 잃지않고 행복한 삶을 살게된 밑바탕에는 너무 믿음직스럽고 으젖한 남자아이와 언제나 엄마의 긴 근심을 행복으로 웃게하는 여덟살박이의 딸아이의 닭살행각 애교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족에겐 지난시련이 너무 끔찍할만큼 컸습니다. 남편과 마악신혼생활을 시작하고 행복이 봄햇살처럼 무럭무럭 자라던 시기,겨울처럼 너무큰 혹독한 시련이 우리가족이 덥쳤습니다. 17년된 낡은 아파트에서 가난하지만 서로의 사랑이 있었기에 너무도 행복한 신혼이었고, 그사이 우리두 꼬마들이 태어났습니다. 한창기쁘고 행복했던 시간에 맞이한 나의 시련으로 우리가족은 한번의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오랜투병생활에 바닥이 났고,긴 한숨과 어려움으로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던 시절 우리가족에게 웃음을 준것은 두명의 우리가족에겐 없어서는 안될 기쁨조 아이둘이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지면서 우리가족은 둥지를 옮겨서 시댁으로 들어와야했습니다. 저역시 근위축증으로 몸이 많이 불편해져서 거동이 많이 불편하게 되면서 휠체어 생활을 해야할정도로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