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점(즉 감추고 싶은 취약점)을 건드리는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시도 자체가
사단을 일으킨다.
어른이 하는 말씀인데 들어야지'라는 저변에 굳게 선
궁굼증을 가장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내밀 취약점에 대해.
취직을 해야지?
피설교자(이런 낱말이 사전에 있지는 않지만)는 행여 이런 질문이 나올까 조마조마한데
누군가 저지른다. 대체로 작은 아버지나 고모(친인척이 뭐 여기가 다지)가 세게 저지른다.
답이 나오리라는 기대가 아니리라. 그냥 분위기나 띄우자고 꼰대질(본인은 꼰대질인지 모른다)을
했을 뿐인데, 답을 기대하지 않았으니 당연 분위기 이어갈 답 대신 그야말로 갑분싸에
어색한 침묵.
다른 이가 한번더 찬물을 끼얹는다.
그래 둘째는 애 가질 생각이 있나?
역시 피설교자는 이런 문의가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전혀 예상 답변을 준비한 적 없고
준비할 수도 없다.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은 폭력(정신적, 언어적 폭력. 동의하지 않는 분 있겠지만)이다.
큰 손주는 몇 등하나?
신혼 집은 몇 평이야?
어느 대학은 들어갔다고?
어디 명절에만 벌어지는 일이랴. 어디에곤 있음직한 폭력이지.
그럼 뭔 이야기를 해야 하나.
딱히 할 이야기가 없네 구랴. 오래간만에 만나서...
이래저래 명절은 힘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