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을 사는 리듬과, 내게 다가오는 세상의 리듬은 달랐다.
내게 맞는 것과, 내가 좋아서 선택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컸다.
이 차이를 줄이기 위해,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썼다. 그리고 계획을 세웠고, 실천을 했고, 계획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난 나에게 맞지 않는 계획을 세울 수 있지?”
네가 나를 몰랐다. 그리고 현실의 나를 거부하고 ‘됐으면 하는 내 모습’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는 것은, 이전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당연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 아닌가?
몇 번의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느낀 것은, 계획의 목표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 계획의 출발점에 문제가 있었다. 계획의 출발점은,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내 모습에 맞춰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출발점 자체도 이상적인 내 모습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계획은 1주일도 지속되지 못했다.
예를 들면, 3~4년 전 15Kg 이상 체중을 줄인 적이 있었다. 1년 정도 걸려서 이룬 목표였다. 그 당시 난 어떻게 하든 오후 10시 취침 새벽 5시 기상을 지켰다. 즉, 내 몸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내 몸 사용 설명서’를 먼저 숙독하고 시작한 것이라,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는 인체가 스스로를 돌보고 보정하는 시간이라는 내용을 알고 세워 실천한 계획이었다.
오후 10시에 잠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일과를 오후 10시 전에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누어야 했다.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면, 보통 새벽 4시면 눈이 떠졌다. 일정은 새벽 5시부터. 1시간이 나에게 여유 시간으로 주어졌다.
무엇을 해도 나를 자책하지 않는 시간. 가끔은 이 시간에 손을 댄 일로 인해 일과 시간을 어기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는 계획이, 이상적인 내 모습에 맞춰진, 잘못된 출발점이었을까? 아니면 오후 10시에 잠들겠다는 계획이, 이상적인 내 모습에 맞춰진, 잘못된 출발점이었을까?
새벽 5시에 일과의 시작을 맞춘 것은, 남들이 볼 때 이상하게 여길 운동이 짜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조용한 시간에 일과를 시작하려 한 것이다. 단전호흡으로 대변되는 운동과, 기체조로 대변되는 운동을 합한 모습의 태극권 같은 운동, 혹은 목검 휘두르기 100회 같은 것은 타인의 눈이 살아 있는 시간에 하기엔 얼굴이 발갛게 되는 동작들이다.
지금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변경했다. 팔굽혀펴기(Push-up)와 코어 요가가 그것이다. 매일 하루에 1회씩 팔굽혀펴기 횟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처음엔 5회로 시작했다. 동작은 원론적 자세를 그대로 지키는 방식이었다. 몸은 곧게 펴고 허리가 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복근에 힘들 준다. 다리는 곧게 편다. 이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플랭크와 동일한 효과를 준다 생각한다. 그리고 팔은 90도로, 손 위치는 어개 넓이보다 약간 넓게 놓는다. 팔을 굽힐 때 숨을 들이쉬고, 팔을 펼 때 숨을 내쉰다. 호흡 속도는 평소 호흡 속도 혹은 그것보다 천천히.
20회쯤 하게 됐을 때, 팔이 무척 힘들었다. 체중 전체를 팔로 들어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밀어 올리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일인지는 오래간만에 인식하게 됐다. 그럼 1주일 동안 같은 횟수를 반복한다. 20회 1일차, 2일차... 7일차. 8일째 될 때는 팔에 힘이 올라 21회로 올릴 수 있었다.
오후 10시에 잠들기에 가장 큰 허들은, 일을 다 못 마치는 것이다. 일의 분량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면 모를까, 남의 돈을 받는 위치에 있을 경우엔, 일의 분량은 남이 결정한다. 내 생산력은 빨리 늘지 않는다. 하니, 오후 10시에 잠자리에 들기는 녹녹한 실천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10시에 잠들기 위해, 회사에서 오후 6시 전후엔 나서야 한다. 눈치도 보이지만, 이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집중력 있게 일과 내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했다.
그러나 집중력은 원하는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 외에도 가정의 일, 대인관계의 일 등 영향력의 원 밖에서 가해지는 압력들이 많다. 이런 원인으로 집중력이 흩어지면, 자는 시간이 늦어지고,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진다. 계획서는 완료 체크를 할 수 없는 수준이 이른다. 결국 익숙한 나의 새벽 세 시가 열린다. 오늘도 새벽 3시를 어제 마무리 못한 일로 채우면 난 내일 어렵게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몸은 엉망이 된다. 정신도 엉망이 된다.
번역자 중에, 조용한 시간, 즉 가족의 일과가 끝난 후 일을 시작해서 아침 출근까지 챙기고 휴식에 들어갔다가, 저녁 식사 등을 마무리 하고 다시 조용한 시간에 일을 한다는 분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내 계획대로 라면, 몸이 자기 정리 작용을 할 시간에 깨어 있다는 이야기라 수용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일과이지만, 부러운 것은 항상성과 지속가능성을 갖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습관을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 앞으로는 익숙한 내 새벽 세 시가, 오후 10시에 잠든 후 새벽에 일어나 만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어제 못한 일을 새벽에 일어나 할 수 있다는 배포를 갖고 싶다. 그렇게 자기 제어가 가능한 나이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