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문명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상적인 불행에 대해 다룰 것이다. 즉 분명한 외적 원인이 없으니 달아날 길이 없는 것 같고, 달아날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참아내기 힘든 불행을 치유할 방법을 제시하는 데 이글의 목적이 있다.... 이렇게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내가 삶을 즐기게 된 주된 비결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 있다.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 또한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 결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랬으니 나 자신을 불행한 괴짜로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엇다. 나는 차차 자신과 자신의 결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법을 배워나갔다. 나느 외부의 대상들, 즉 세상 돌아가는 것, 여러 분야의 지식, 그리고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 외부적인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역시 그 나름대로 고통을 부를 수 있다. 세상이 전쟁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분야에서 지식을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친구들이 죽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고통은 자신에 대한 혐오로 생기는 고통과는 달리 삶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파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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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심리적인 원인은 다양하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인 형태의 불행한 인간은 어린 시절에 정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는 어느 한 가지 만족을 다른 만족보다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활동과는 상반되는 것이라고 과소평가하면서, 인생을 외골수로만 몰아가게 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불행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어떤 만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기분전환만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쾌락'의 광신자가 된다.
... 자기도취나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은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그나마 행복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무엇에든 취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망각상태가 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행복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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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염세주의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수입이 줄어드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늘 염세주의자가 늘어난다. 크러치는 미국인이며, 제1차 세계대전 덕분에 미국인의 수입은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 전역의 지식인 계층은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시대적 분위기는 세계의 본질에 대한 그 시대의 이론보다 이러한 사회적 원인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이 시대에 만연했던 염세주의의 원인은 바로 전쟁과 가난, 그리고 폭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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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능력이 아무리 늘고, 글재주가 아무리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입센은 셰익스피어가 될 수 없다. 입센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입센에게는 셰익스피어가 창작했던 작품과 같은 소재들이 전혀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과 인간의 열정이 중요하다는 생각, 인생의 깊이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신'과 '인간', '자연'은 위축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현대 예술의 사실주의적 신조로 인하여 평범한 인간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 생활의 범상함이 우리를 엄습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관점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실주의 예술 이론이 발전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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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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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성공하려면 경쟁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히 성공 그 자체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가능하게 한 뛰어난 능력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 것이다.
돈을 버는 과학자도 있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과학자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과학자가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돈을 버는 다른 과학자보다 덜 존경하지는 않는다. 위대한 장군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놀라는 사람은 없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가난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명예로운 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에서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경쟁은 특정 계층에 한정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계층이 가장 영향력이 있거나 가장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군인들이 국가적 활동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대단히 미미하기 때문에 그들의 ㅅ애활수준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지식계층의 경우에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어느 의사가 의학에 정통한지, 어느 법률가가 법률에 정통한 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실력을 판단하는 손쉬운 방법은 그들의 생활수준으로 미루어 소득을 추측해보는 것이다. 교수들은 사업가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는 사람이므로, 전통이 깊은 나라에서만큼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유럽의 전문직 종사자들처럼 나름의 생활양식을 확립하지 못하고 사업가들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므로 부유한 계층의 경우, 경제적 성공을 위한 살벌하고 강력한 경쟁을 완화시킬 만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소년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경제적 성공만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경제적으로 볼 때 가치가 없는 교육에는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
교육은 즐겁게 사는 능력을 훈련하는 것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이때의 즐거움은 교양이 없는 사람은 누릴 수 없는 매우 고상한 즐거움을 일컫는다. 18세기에는 문학, 미술, 음악을 이해하면서 즐기는 것이 '신사'의 특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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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림 때문에 얻는 즐거움은 그림을 감상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돈 많은 다른 사람이 그 그림을 소유할 수 없게 됐다는 데가 오는 즐거움이다.
... 습관화된 경쟁심은 경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야까지 쉽사리 침투한다. 독서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책을 읽는 동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 읽는 것이고, 또 하나는 책을 읽었다고 자랑할 수 있어서 읽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이달의 책을 읽는 것(또는 읽는 척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책을 다 읽는 사람도 있지만 첫 장만 읽는 사람, 서평만 읽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들의 책상 위에는 한결같이 각 기관들에서 추천한 이달의 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고전을 읽는 법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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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나는 미국 대학생들 몇몇과 함께 캠퍼스 기슭의 숲을 거닐었다. 숲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었지만 그 야생화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의 이름이라도 제대로 아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그런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꽃 이름 따위를 알아봐야 돈벌이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텐데.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또한 어떤 개인이 단독으로 막아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는 삶이란 승자만이 존경받는 승부요, 경쟁이라는 일반화된 생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감성과 지성을 포기하고 의지만을 지나치게 키우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런 관점을 입에 올리면서 우리는 말 앞에 마차를 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신앙을 강조했던 청교도적 도덕주의자들이 현대에 와서는 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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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는 꼭 즐거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날이 다른 날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이 생긴다면 권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은 권태에 빠지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권태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극이다. 자극에 대한 욕망은 인간, 특히 남성에게 있어 매우 뿌리 깊은 것이다.
... 조상들에 비해 우리가 겪고 있는 권태의 정도는 덜하지만, 권태에 대한 두려움은 훨씬 깊다. 우리는 권태란 인간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운명의 일부가 아니며, 자극을 찾아나설 정도의 단호함만 있으면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일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권태롭지 않은 삶을 이상으로 여긴다. 그것은 멋진 이상이며, 나도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다른 이상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상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그런 이상을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전날 밤의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아침의 권태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중년 시절도 오고, 노년 시절도 올 것이다. 스무 살 대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은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쉰여덟 살이 된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본을 금전적인 자본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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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에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과 황폐하게 하는 것, 두 종류가 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권태는 약물이 없는 곳에서 자라나고, 삶을 황폐하게 하는 권태는 활기찬 행동이 없는 곳에서 자라난다. 약물이 삶에 있어서 어떤 긍정적인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능숙한 의사는 아편이 든 진정제는 처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약물 탐닉은 결코 제멋대로 움직이는 자연적 충동에만 맡겨둘 수 없다. 나는 약물에 중독된 사람이 약물을 빼앗겼을 때 느끼는 권태에 대한 치료법은 시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약물에 적용되는 이러한 원리는 일정 범위 내에서 모든 종류의 자극에 대해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 자극이 지나치게 많은 삶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환희에 가까운 감격이야말로 즐거움의 필수요소라고 여기기 때문에, 끊임없는 감격을 느끼기 위해서 점점 더 강력한 자극을 찾을 수밖에 없다.
...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근본적인 만족감을 표면적인 쾌감으로, 지혜를 얄팍한 재치로, 아름다움을 생경한 놀라움으로 바꾸어버린다. 나는 극단적으로 자극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정한 양의 자극은 건강에도 이롭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문제는 그 양에 있다. 자극이 너무 적음녀 병적인 갈망을자아내고, 너무 많으면 심신을 황폐하게 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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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자면 조용한 삶이 위인들의 특징이며, 위인들이 누렸던 기쁨은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흥미진진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끈질긴 노력이 없이는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없다. 위대한 성취를 이루는 일은 고도의 정신 집중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인들에게는 많은 정열을 요구하는 오락에 쏟아부을 만한 활력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예외가 있다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건강회복을 위해서 하는 오락 정도로 알프스 등반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부모들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주로 자신의 노력과 창조력에 의지해서 스스로 환경으로부터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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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면서 정신적 피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도시노동자들은 줄곧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소음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는 근로 시간 동안은 물론이고 출퇴근길에는 훨씬 심해진다. 의식적으로 소음을 듣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소음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소음을 듣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느라 더욱 피곤해진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또 한가지는 늘 낯선 사람과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적 본능 때문에 낯선 상대를 만날 때마다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상대를 탐색한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러한 본능을 억제해야 하고, 본능을 억제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들 일반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게 된다.
... 사장도 같은 기분으로 출근했으니 노동자들의 기분을 풀어줄 도리가 없다. 노동자들은 해고가 두려워 공손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다 보면 정신적 긴장은 더욱 심해질 뿐이다. 만일 일주일에 한 번씩 노동자들에게 사장의 코를 잡아당긴다거나, 사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다면, 노동자들은 정신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장도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앞서 말한 방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해고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장은 파산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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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한 것이냐 타의에 의한 것이냐, 선택의 결과냐 필연적인 결말이냐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신경을 혹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계속되는 과로 때문에 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데 몹시 서투르다.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는데도 걱정거리에 매달려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 현명한 사람은 고민을 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때에만 고민하고, 고민을 해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며, 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그 문제에 맞닥뜨려야 할 때를 제외하면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지나치게 고민하는 것보다 꼭 필요할 때에 적당하게 고민하는 침착한 태도를 기르면 행복과 능률을 엄청나게 증진시킬 수 있다. 곤란하거나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에는 모든 자료를 이용할 수 있을 때 그 문제를 깊이 숙고해서 결정을 내려라.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결코 그 결정을 번복하지 마라. 망설임만큼 심신을 지치게 하면서 쓸데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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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동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며, 결국 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또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슬픔도 이겨낼 수 있다. 마치 인생의 행복을 끝장나게 할 것처럼 보이던 심각한 고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사그라져, 나중에는 그 고민이 얼마나 강렬했는지조차 거의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자아는 세상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희망을 자아를 넘어선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일상생활의 걱정거리 속에서도 어느 정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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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걱정이나 불안이다.
... 신경쇠약을 앓고 있는 환자는 일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감성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일을 중단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만약 일을 중단하게 되면 어떤 종류의 불행을 겪고 있든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에서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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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어려운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 할 경우, 나는 최선을 다해 계획을 세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아주 집중적으로 생각한다. 있는 힘을 다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 시간이 흐르노라면 일이 보이지 않게 진행되면서 생각이 정돈된다. 내가 몇 달 후에 의식적으로 그 주제로 돌아가 보면 그 일이 이미 완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어떤 불행이 닥쳐오면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직시하고 나서는, 그 불행이 그렇게까지 끔찍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적절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제시해보라. 그럴 만한 이유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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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은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그러나 매우 집중적으로 그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에 대해 친숙한 감정이 들게 된다.
... 용기가 많으면 걱정은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피로도 줄어들 것이다. 현대의 남성과 여성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피로의 대부분은 의식적인 두려움 혹은 무의식적인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로는 대체로 자극에 집착하는 데서 생긴다. 여가 시간을 잠자는 데 투자하는 사람은 피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따분한 근무 시간을 보내고 난 사람은 자유 시간에는 즐겁게 지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쉽게 접할 수 있고 겉보기에 너무나 매혹적으로 보이는 쾌락의 대부분은 신경을 혹사시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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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평범한 인간 본성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가장 불행한 것이다. 질투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안기고 싶어하고, 또 처벌을 받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질투하는 자신 역시 불행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대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간 본성에는 질투를 상쇄할 만한 다른 격정, 즉 탄복이라는 감정이 있다.
... 내가 생각하기에 질투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러 가지 불행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눈앞에서 형제나 누이가 더 귀여움받는 것을 목격한 어린아이는 질투하는 버릇이 몸에 배게 된다.
... 부모에게서 사랑받는 것과 같은 특별한 종류의 행복은 만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타고난 권리다. 따라서 이러한 권리를 빼앗긴 사람은 자연히 마음이 상하고 비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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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망치치 않는다.
사실 질투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일종의 나쁜 버릇이다. 질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려는 데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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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사회적 지위의 불안정성과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가 주창하고 있는 평등주의 이론이 질투의 대상이 되는 영역을 크게 넓혀놓았다. 질투의 영역을 넓혀놓은 것은 지금 현재로서는 폐단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다 공정한 사회 제도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참고 견뎌야 하는 폐단이다. 이성적으로 따져볼 때 특별 대우를 해주는 누군가에게 그럴 만한 어떤 뛰어난 공로가 있지 않는 한 불평등은 부당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부당함을 없애는 것 말고는 불평등으로 인한 질투를 치료할 방법이 없게 된다.
... 하지만 질투의 결과로 빚어진 정의는 자칫하면 최악의 것, 즉 불행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증가시키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 정의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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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더 깊은 곳에 자리잡은 죄의식이다. 이런 죄의식은 무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의식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의식 속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죄라고 단정하게 되는 행동들이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까닭 모를 불안감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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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유아적 암시를 물리칠 수 있고 심지어는 무의식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다. 만일 이성에 비추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그 죄책감의 원인을 파헤치고 낱낱이 따져서, 그 죄의식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임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나 유모에 의해 각인된 인상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무의식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확신을 강력하고 생생하게 유지해야 한다. 어떤 때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다가, 또 어떤 때는 비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태도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비합리적인 생각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그것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그것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사람들이 안겨준 기억에 대해서 불손하게 구는 것을 겁내서는 안 된다. 그때는 당신이 약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그들이 힘이 세고 현명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제 당신은 약하지도 않고 무지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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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에게 인습적인 도덕을 가르친다고 해서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지는가? 흔히들 말하는 도덕군자의 모습 속에는 얼마나 많은 미신이 투사되어 있는가? 우리 사회가 어리석은 금지사항들을 동원해서 온갖 가상의 도덕적 위험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애쓰면서도, 성인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실재하는 도덕적 위험들은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라.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진짜 해로운 행위들인가? 법의 제재에서 벗어난 사업상의 악랄한 관습, 피고용인에 대한 가혹한 대우,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잔혹한 행동, 경쟁자에 대한 악의적인 행동, 정치권력을 둘러싼 잔인한 싸움, 이런 것들이야말로 점잖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고 있는 참으로 해로운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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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죄의식이 심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것을 신의 계시나 더 고귀한 행동을 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질병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죄의식은 합리적인 도덕 원칙에 비추어볼 때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생기는 죄의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도덕 원칙을 지니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미신적인 도덕 원칙을 지니지 말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이므로 혼동하지 않기 바란다.
설사 합리적인 도덕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삶의 방식을 개선한다는 목적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죄의식 안에는 절망감과 자존심을 갉아먹는 감정이 존재한다. 자존심을 잃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좋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행동이 좋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될 만한 상황을 되도록 피해가는 데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죄의식은 바람직한 생활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런 사람은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또한 자신의 불행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기쁨을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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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입방아를 찧듯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 대해서 입방아를 찧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 누구나 자신의 눈에는 자신의 미덕이 크고 분명하게 보이지만, 남들이 가진 미덕은 만의 하나 있다 하더라도 아주 너그럽게 보지 않으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 당신은 그가 한 행동이 못마땅하겠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한 행동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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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피해망상은 늘 자신이 가진 장점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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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피해망상의 또 한 종류는 박애주의적인 유형으로,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는 그들이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놀라고 당황한다. 사람들이 선행을 베푸는 동기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순수하지 않다. 권력욕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여러 가지 위장을 한다. 우리가 남들에게 유익할 거라고 믿는 어떤 행동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권력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선행을 하는 즐거움에는 또 다른 요소가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넓은 시각에서 보면 그 사람에게서 술, 도박, 게으름 따위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다. 이런 사례 속에는 많은 사회 윤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친구들의 존경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쁜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질투심이다.
예를 들어 금연법(금연법은 미국의 몇몇 주에서 시행 중이거나 과거에 시행된 적이 있다)에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인데, 남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얻는 즐거움이 이들에게는 고통이 된다. 만약 과거 담배 중독자였던 사람들이 대표단을 보내서 역겨운 악습에서 해방시켜준 데 대하 감사할 줄 알았다면, 그들은 아마 실망할 것이다. 결국 자신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인생을 바쳤는데, 그런 자비로운 행위에 대해서 마땅히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들은 감사해야 할 이유조차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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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칙들에 포함된 진리를 충분히 깨달으면 피해망상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다. 첫째,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둘째,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셋째,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넷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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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의 신념은, 자신이 주요 원동력이 되는 사회적인 변화를 생각하면서 얻는 쾌락을 은폐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기에는 권력욕뿐 아니라 또 다른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허영심이다.
... 인습적인 도덕은 어느 정도 이타주의를 강요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으로 보아 이타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의 덕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이와 같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도달했다고 상상한다. 가장 고상한 사람의 행동도 거의 대부분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만약 이런 이기적인 동기가 없다면 인류는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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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결국 그 고통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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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지만, 늘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의 입장일 뿐, 그들이 당신의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봐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인생의 근본 노선을 어그러뜨리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지 못한 희생을 강요하거나, 희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떤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불평을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어떤 사람이 적절한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자아를 확장하려고 할 때, 상대방이 자연스러운 이기심으로 그 사람의 지나친 탐욕에 대항하여 보이는 건강한 반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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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직업과 관심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을 해코지하는 데 집중할 여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비교적 온건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도 실제로는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모든 행동들을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 이런 가설들에 의지해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은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다.
자기기만에 기초한 만족은 결코 확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진실이 아무리 불쾌한 것일지라도 단호하게 그것을 직시하여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 진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