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새 학기 첫날, 집에 돌아온 지오가 신이 났다.
-엄마, 나 학교가 너무 좋아.
-그래? 뭐가 그렇게 좋은데?
-응. 교실에 피아노도 두 대나 있고, 기차놀이 할 만큼 넓어졌어.
선생님도 좋아.
그리고 뭔가 분위기가 새 학교로 전학 간 것 같은 기분이야.
잠들기 전까지 지오는 학교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계속 이야기했다.
나린이와 지오 둘 다 1학년 담임 샘이 같았다.
단발머리에 코밑까지 흘러내리는 검은 테 안경,
누가 봐도 사감 선생 냄새가 폴폴 풍기는 분이었다.
바른 습관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모습이 늘 거슬렸던 분이다.
나린이는 입학하고 한 달간 학교에 안 갔다.
선생님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지 않고 아예 등교 거부를 택한 나린이와 달리
지오는 집에 와서 날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아주 충실히 전해주었다.
엄마, 선생님이 손으로 코딱지 파지 말래.
엄마, 선생님이 젓가락질 연습해오래.
엄마, 선생님이 연필 똑바로 잡아야 한대.
엄마, 선생님이 똥은 집에서 싸고 오래.
엄마, 선생님이 공부 시간에 웃으면 안 된대.
엄마, 선생님이 한 손으로 턱 괴고 있으면 안 된대. 턱뼈 찌그러진대.
담임샘과 상담하는 날, 가서 요목조목 따졌다.
-전 아이들에게 올바른 습관을 갖게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어머니.
다 큰 어른이 젓가락질 못 하는 거 보면 안 이쁘잖아요.
똥은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 싸고 오는 습관을 길러주려고요. 그래야 건강하잖아요.
.....
30년 넘게 자신이 믿는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해 온 선생님은 확고부동했다.
학부모 공개 수업 때는 인위적인 수업 방식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급기야 한 아이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수업이 끝나고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우는 일이 벌어졌다.
수업 내내 답답함을 참지 못한 나는 수업평가서를 아주 솔직하게 적어냈다.
다음날 담임 샘의 전화를 받았다.
제 수업이 뭐가 어때서 왜 그렇게 어머닌 사사건건 저한테 못마땅해하냐고,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엄마가 쓴 편지에 감동받아서 운 거라고...
(수업 중에 엄마가 아이에게 편지 쓰는 시간이 있었다.)
무기명으로 적어낸 평가서를 보고 이렇게 대놓고 전화해 항의하다니... 기가 찼다.
여하튼 이분은 올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다.
30년 넘는 교직 생활 동안 수업 분위기와 아이들 기분도 파악 못 하시다니, 겨우 일곱 명만 있는 반에서.
다른 학년 교실과 달리 1학년 교실은 북향인 데다 창문에 시트지를 붙여놔서 밖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다.
자기 기준으로 설정한 바른 습관을 핑계로 아이들을 통제하던 담임선생님의 존재는
그 공기를 얼마나 더 무겁게 만들었을까?
운동장이 환희 보이는 교실로 반을 옮기고
공기를 가볍고 따뜻하게 바꿔준 새 담임을 만나서 아이가 기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