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경제학에서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서로 반비례한다고 가르친다. 돈의 흐름이 주식 시장에 몰리면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부동산에 몰리면 주식시장이 침체된다는 논리다. 유튜브에서 경제를 테마로 하는 유튜버들중 상당수가 주식 관련 업자들인데, 이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정부 법망 피해서 부동산으로 돈버는 귀찮은 짓 그만하고, 주식으로 투자하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럼 과연 이게 맞을까?
금융 재테크는 워낙 잼병이라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큰 관심을 갖고 살고있지는 않은 본인이지만, 한가지만큼은 영향을 받는게 있다. 바로 집이다. 주택은 그게 자가든 전월세든간에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심지어 소득이 그대로인 사람이 더 좋은 주택으로 이주하게 되면 거기에 맞는 소비가 늘어 더 많은 소득활동을 하게된다는 얘기도 있다. 소득이 늘면 더 나은 집을 사는 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 반대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결혼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는 노무현 정권때 가격흐름을 주도한 것은 아파트 재건축시장이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지방에서도 재건축 아파트를 소유한 입주자는 재건축 후에 큰 돈 거의 들이지 않고 새 아파트를 받아낼 수 있었다. 지금과 비교해서 워낙 부동산 가격이 쌌던데다가 재건축 대상인 구형 아파트들은 저층에 부지가 넓고 교통이 좋은 곳에 입지하는 경향이 많아,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고층아파트를 올려 수익을 내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재건축 단지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자기돈 거의 들이지않고 새아파트 - 좀더 넓은 주택을 갖게되었기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딱 맞아떨어지는 재건축 시장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고, 구형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당연히 그보다 나은 조건의 아파트들도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인 1950년대생들의 자녀들이 30대가 되는 시점이라 결혼 수요가 매우 높았다. 노무현 정권은 이런 시장의 조건을 재대로 보지 못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 -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몰리는 자금을 막는다는 정책을 내놓았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 이유는 재건축 단지들 다수가 이미 소진되었고, 경제침체와 청년실업으로 인한 결혼-출산율 하락의 영향이 컸다. 박근혜 정부때는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너무 침체되어서 정부가 대출금리를 내려 주택구매를 장려해야 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부채는 다른 OECD국가와 비교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가계부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부동산 부채다. 점점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꾸준한 소득을 얻는 계층이 줄어들고 청년실업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폭탄처럼 여겨졌다. 이점에서만 놓고보면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목적은 그리 틀린것 같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그 목적, 상황인식이 그릇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자기비판이 없다는게 문제다.
한국은 다른 OECD국가들, 특히 문화적으로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도 자가주택 소유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다. 여기에 다른 나라엔 없는 전세제도를 감안해보면 한국인들의 주거문화는 다른 사람이 소유한 집에 세를 얻어 사는 것보다는 직접 자기 집을 갖는 것에 대한 욕구가 한없이 높은 문화를 갖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이 온통 아파트 숲이 된 이유도 단순히 투기꾼들때문이 아니라 이런 문화적 속성이 한 몫을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문재인 정권 들어서면서 주택가격이 폭등하는걸까?
현재 서울의 집값 폭등에 대해 완전한 분석을 보기는 어렵지만, 정부의 주장처럼 전문 투기꾼들의 문제가 큰지는 좀 의아하다. 일단 전문 투기꾼 입장에서 보면 투기하기 좋은 조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때가 가장 여건이 좋았지만 지금처럼 주택가격은 폭등하지 않았다. 9년동안 주택가격이 지금처럼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부동산 시장에서 전문 투기꾼의 영향력은 문재인 정권의 주장만큼 크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디서 분석을 해야할까?
2010년 이후부터 베이비붐 세대들의 정년퇴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라 이들이 보유한 막대한 은퇴자금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수십년간 직장을 다니며 자녀를 키운 세대가 이제 퇴직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때 가장 큰 관심은 당연히 앞으로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연금과 주택소유다. 친정부 성향의 언론이나 주식 전문가들은 노령화가 가속화되면 주택가격은 폭락할 것이라고 꾀꼬리처럼 노래를 부른다. 그렇지만 재테크 실패가 곧 휴지조각으로 귀결될 수도 있는 주식이나 투자상품에 비해 부동산은 아무리 망해도 집(땅)은 남는다는 신념이 존재한다. 특히나 연금고갈의 가능성이 점점 불어나면서 이런 신념은 점점 강화된다. 앞으로의 불투명한 경제적 미래가 더욱 부동산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정부에도 주식 경제전문가들에게도 없는 것 같다.
결국 문재인 정권의 주택가격 폭등의 이면엔,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 그리고 시장상황에 대한 비관이 자리잡고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이걸 전문 투기꾼 탓으로만 몰며 정책을 내놓고 있으니 뭔가 헛다리 집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제관련해서 일본의 사례를 많이 들지만, 일본도 1980년대의 버블 시기에 쌓인 부채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장기 침체가 이어지긴 했어도, 중심지역인 도쿄의 부동산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심지어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2000년대부터는 아예 지방의 젊은 경제활동인구가 도쿄로 집중되는 경향이 더 커졌다. 이런 인구이동 경향을 제대로 분석한 일본은 2000년대 초반에 그들을 괴롭힌 디플레이션 위기를 재정투여(여성, 청년 취업확대)를 통해서 벗어나 아베노믹스를 불러왔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정책에서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부동산으로 노후를 대비하려는 베이비붐세대와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하려는 청중년층 세대에게 부동산에 대한 믿음을 더 강화시킬 여지가 많다. 부동산 수요와 공급의 차원이 아니라, 다른 경제지표들이 매우 불투명하기때문에 사람들이 부동산에 더 연연하는 경향이 강하다. 원래 금융에서 부동산은 쉽게 사고팔기가 어렵기때문에 안전자산이 아니지만, 주거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부동산은 분명 개인이나 가족의 안전을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심리를 전문 투기꾼의 음모로만 몰면 절대 부동산 문제를 올바로 접근하기 어렵다. 부동산을 옭아매어 주식과 펀드시장을 키울 생각을 하지말고, 기업활동과 일자리 대책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