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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션] 우루과이 VS 대한민국


BY 사교계여우 2022-11-25

수도 몬테비데오를 비롯해 곳곳에서 응원전을 펼친 우루과이 축구 팬들도 결과에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주요 소셜미디어에는 '디에고 알론소 감독 전술이 참 형편없다'라거나 '측면에서 공 올리기 놀이하는 듯' 같은 취지의 비판적인 글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우루과이와 비슷한 하늘색 계열 유니폼을 입는 아르헨티나 팀과 비교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졌지만) 그래도 아르헨티나는 축구라는 것을 함"이라는 글도 있었다.

한 팬은 "하하!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을 이길 수는 없는 건가요"라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에 빗대 자조적인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늘의미션] 우루과이..
뭔가 예측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경기여서 여러모로 즐겁고 당혹스러웠다.

내가 쓰면 무조건 창작 밸리로 가야 하지만,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스포츠 밸리에 등록.

내가 본 양팀 전술은 이랬다.



나는 어제 수비의 백미가 김민재보다 김문환과 나상호의 맘스터치 싸이버거 콤비라고 본다. 이게 초반 기선 제압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가장 골치였던 누네스와 발베르데가 이 둘에게 막히면서 우루과이의 맥이 확 끊겼다. 이로 인해 수아레즈는 퇴장당했고, 음? 아닌가? 안 당했나? 경기장에 있었나? 그 아저씨 본 사람이 있긴 했나? 아무튼 우루과이는 초반부터 말리기 시작했다.

과거에 내가 국대 축구에서 여러 번 분통을 터뜨렸던 적이 있다. 한국의 걸출한 공격수였던 최용수와 김신욱은 심각한 장단점을 갖고 있었다. 후반기의 최용수는 큰 키로 공중볼을 받아내어 연결하는 역할을 잘 했고, 김신욱은 큰 키로 공중볼을 경합하여 놓치는 역할을 많이 했다. 이 둘을 믿고 한동안 뻥축구를 하는 꼴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중거리 패스를 할 때마다 화를 내곤 했다.

그런데 어제 경기는 중거리 패스만 하면 함성을 질렀다. 화면에 보이지도 않는데 나상호와 김진수의 이름을 외쳤다. 카메라 돌아가면 걔들 뛰는 게 보일 거라고 믿었거든. 실제로도 그랬고. 이렇게 기대되는 뻥축구를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우루과이는 발베르데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 연결이 상당히 강력하다.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일본이 독일을 이겼어도 나는 한국이 우루과이를 이길 거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중원이 너무 강력했거든.

근데 벤투가 중원에서 안 노네?

전반의 우루과이는 중원에서 대기 타면서 "드루와. 드루와."를 열심히 외쳤지만, 거기 놔두고 뻥축구로 다이렉트 후방 진출. 이렇게 할 게 없었던 우루과이 중원은 처음 봤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계 역할 능력을 선보여야 할 벤탕쿠르가 어째서인지 김민재 포지션에서만 계속 뛰었다. 안 그러면 공 한 번 못 잡을 것같은 분위기였다.

이러다 보니 우루과이의 전반은 계속 말렸다. 결국 전반 막판 즈음에 우루과이 감독이 전술을 바꿨다. "우리가 들어가겠습니다."

황인범과 이재성의 박지성 빙의로 숫적 우위(...?)를 갖춘 한국은 시종일관 세컨볼 장악에 강점을 보였다. 공이 새면 무조건 한국이 잡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우루과이가 세컨볼을 잡으면 "왜 잡지?"라는 소리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나는 우루과이전의 가장 큰 수확은 큰우영이라고 생각한다. 이 녀석의 가장 큰 단점이자 치명적인 문제가 딱 한 번 빼고 완전히 사라졌다. 큰우영은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이 흩어져서 실수를 저지른다. 이번 경기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얘가 수습을 다 하네?! 집중력을 갖고 끈기 있게 몰아붙이더니 1:1 대결에서 막 이긴다. 큰우영이 아니라, 포텐 터졌던 김정우를 보는 느낌이었다.

다른 분들처럼 심판 휘슬에 불만이 있기는 했지만, 한국의 두 선수는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애매한 수비로 꼬박꼬박 카드를 받던 큰우영과 김영권이다. 얘들이 생각하는 반칙 기준과 심판의 반칙 기준이 이번 경기에서는 쿵짝이 맞았다. 덕분에 이 둘이 은근 날았다.

후반 들어서 우루과이가 중원 때려치고 뻥축구로 맞섰다. 밑에서 알짱대며 들어오라고 쫑알대다가 뻥! 이 방법으로 뭔가 해볼 생각이었는데, 당연히 성공확률은 높지 않았다. 결과는 무승부.

이제까지의 벤투와 너무도 달랐다. 빌드업 축구로 차근차근 나아가서 중원까지 장악하는 전술이었다면, 장담하건대 한국은 밀렸을 것이다. 우루과이 맞춤 전술은 정말 훌륭했다. 게다가 이강인이 나오네? 나는 이강인이 나왔을 때, "이건 아닌데."라고 중얼거렸다. 이제껏 핵심 선수로 활약하는 황인범과 교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인범과 이강인이 같은 필드에 섰다. 젠장! 드림팀이잖아!

역시나 이강인은 그 짧은 시간에도 기가 막힌 패스를 찔러주며 "나, 이강인이야!"를 과시했다. 우루과이전의 수훈 선수인 발베르데는 질주하는 이강인을 막아내더니 "미쳤다! 내가 이강인을 막았어!"라며 개기뻐했다.(...)

나폴리 때처럼 임팩트 있는 활약은 몇 번 못 보여줬지만, 김민재는 패스 하나하나가 나폴리였다. 뭔가 다른 차원의 발놀림이어서 행복했다.

황의조와 손흥민의 축포(...)는 아쉬었지만, 이건 적응기가 필요할 것 같다. 이번 경기에서 꽤 많은 슛이 떠오르는 이유는 아무래도 공인구의 홀 때문이 아닐까 싶다.(이번 공인구는 과학적 어쩌구하면서 매끈하지 않고 홈이 패였다. 그래서 무회전 슛을 할 수 없단다. 다른 공으로 수만 번 연습한 선수들은 아무래도 적응이 필요하겠지.)

우루과이전은 무척 만족했다. 벤투가 벤투같지 않아서 더 좋았다. 와. 월드컵을 위해 4년씩이나 훼이크를 쓰다니. 무섭다.

이제 승리만 하면 벤딩크가 되겠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