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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배불렀던 17명 초대이야기


BY kyou723 2008-05-19

 

한국인 몇 명과 독일인을 포함, 17명을 초대하게 되었다.
이유는 없다. 다들 물었다. 무슨 날이냐고?

대답은 NO!!!

가끔씩 일을 저지르고 싶은 내 충동에 의한 자발적 초대인 셈이다. 아무 이유도 없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 먹자는 게 이유.
굳이 따지자면 봄을 맞아 서로의 관계성을 돈독히 하자는 데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집이 여유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초대한 적이 그리 많진 않으니까. 그동안 좋아했던 지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단합대회 하는 격으로 모인 셈이다. 어디서나 구성원들간에 삐걱거림이 있을 수 있는데, 이번 초대손님들 중에는 서로간에 그러한 이들이 있어 이들의 관계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나의 속내도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만한 숫자의 손님을 접대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양을 도대체가 가늠을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남으면 남았지 부족하면 안된다는 전라도 특유의 먹거리 인정이 살아있어서 남편에게 큰손이란 별칭을 얻어가면서까지 재료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먼저 기본적인 재료는 독일 할인매장에서 공수를 하고, 한국식품점에서 사야 할 몇 가지를 위해 온 가족을 대동하고 베를린의 한인떡집을 찾아갔다.
독일의 집들이 가끔은 큰문을 들어서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한인가게도 우리나라처럼 길가 상가가 아닌 조금 들어가야 하는 후미진 곳에 있었다.

상점을 들어서자 제법 떡대가 큰 청년이 어눌한 한국말로 응수하며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발음을 들으니 딱 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다. 엄마는 여행 중이라고 이야기하던 청년은 ‘똑 좀 드쎄요~’라며 떡 한 접시를 내민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배어있는 절편 한 조각을 먹는 순간 왠지 모를 향수병이 치밀어오른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그 흐뭇한 고향내음에 목이 잠기고 사래가 걸린 마냥 콜록거렸다. 살 것을 체크해 왔기 때문에 고르는 데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떡을 사려고 했는데, 작정했던 꿀떡과 인절미는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단다. 할 수 없이 우리 가족이 심심풀이로 먹을 요량으로 절편 한 팩을 샀다.

17명의 인원을 초대하는 데 전날에 김치 겉절이와 재료를 준비했다.

토요일 오후 5시에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이것저것 준비해도 그리 바쁠 것은 없었다.

대강 준비한 음식목록은 다음과 같다.

1. 김치 겉절이: 가끔씩 독일매장에서 나오긴 하는데, 요즘은 잘 안나온다. 유기농 가게에서 배추가 나온 것을 보아 그곳에서 비싸게 구입. 속은 좋다.
2 오이부추소박이: 아는 한인교포 아줌마가 정원에서 키운 부추를 주셔서 오이소박이를 만들게 되었다.
3. 김밥: 독일인들에게 ‘스시’로 알려진 김밥. 빠지면 안될 것 같고 혹시 밥이 부족할까봐 만들었다.
4. 김부각: 지난 번 독일인들에게 먹였더니 반응이 무지 좋아 힘들어도 만들게 되었다.
5. 다시마 부각: 영국에 있는 동생집에 가서 가져왔다. 통째로 다시마가 있어서 잘라서 튀겨내었다.
6. 인도전통과자: 디저트 개념의 과자. 새우가 들어가서 감칠맛 난다.
7. 고사리무침: 독일에 고사리가 많이 난다. 한인교포 아줌마가 공수해주신 고사리로 무침. 별로 인기가 없었다.
8. 소고기불고기: 아무래도 고기는 빠질 수가 없다. 전날 포도주와 파인애플, 양파, 마늘 등을 듬뿍 넣어 재어놓고 먹기 직전 맛있게 보글보글 만들었다. 인기 짱이었다.
9. 모듬전(호박전, 해물전, 고추전, 버섯소고기전): 잔치상에 전이 빠지면 한국식탁이 아니지. 재료준비는 8살 큰 딸이 책임졌다. 호박 밀가루에 무치고 소고기 간 것을 버섯에도 박는 것도 모두 딸내미의 공로다.
10. 계란과 크림치즈가 곁들인 카나페: 디저트 개념으로 무엇보다 예쁘게 장식할 생각으로 끼워넣었다.

11. 잡채: 항상 빠질 수 없는 고유음식. 양도 푸짐하고 모양도 좋아 오케이
12. 아몬드 케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케잌. 아몬드를 넣으니 꿀맛 같다.

13. 식빵을 이용한 핑거푸드: 식빵을 머핀틀에 넣고 고정시키고 오븐에 구워준 다음 먹기 직전 샐러드를 그 안에 담아 낸다.

14. 멸치호두볶음, 진미채볶음, 무말랭이: 마른반찬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위해 날 위한 식탁. 그런데 의외로 바닥이 났다는 사실.
15. 야채샐러드: 방울토마토, 양상추, 오이 등등 야채를 넣어 소스에 버무림.

16. 새우부르컬리 볶음: 새우와 버섯 등등을 섞어 간장에 볶아 곧바로 내놓았다.
17. 과일꼬챙이: 디저트로 이것저것 과일 내놓기 뭐해 꼬챙이에 딸기, 포도, 바나나, 토마토 등을 끼워서 내놓았다.
18. 소시지핑거푸드: 소시지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오븐에 구워낸 퓨전음식.

19. 무쌈말이:: 남편이 가늘게 썰어준 무우로 야채를 넣어 얼기설기 만든 무쌈말이

 

 

 

 

 

 

 

 

 

 

막상 다 만들고 나서 뷔페식으로 차린 식탁사진을 찍지 못해 많이 아쉽다. 게다가 손이 바빠 일일이 쫒아다니면서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해 찍지 못한 음식도 있는 게 아쉽다. 이렇게 많이 준비하기가 앞으로 얼마나 될런지~~워낙 음식 양을 많이 준비했더니 모두들 먹고도 약 10인 분이 남아 이것저것 온 손님들에게 나눠주었다.
“언제 이 많은 음식을 준비했어요?” “와~정말 손이 크시네요..” "이 음식, 레시피 좀 주세요~~"
모두가 한 마디씩 던진다.
“흐흐흐... 밤새 우렁각시가 다녀가더니만 이렇게 한 상 턱하니 차려놨더군요....”
그러나 초대받은 손님들이 만들어오기도 하고, 선물을 가지고 온 바람에 오히려 내가 받은 게 더 많다. 음료수 등은 손님들이 이것저것 들고 온 바람에 한 달 정도는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창고가 가득해졌다. 게다가 울 딸네미를 위한 동화책, 예쁜 화분과 꽃과 양초 등은 양과 질의 고하를 막론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물론 독일인들이 읽을 리 만무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전한다. 마음으로 들으시길....ㅋㅋ...
아무튼 모두가 배불리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하다. 또한 우리집에 와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고 얽혔던 실타래를 풀어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아무 이유없이 밥 먹는 데 의미가 있는 초대였지만, 그 안에 먹으면서 피어나는 ‘식정(食精)’이 존재했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요즘 같이 배부른 세상이야 먹는 것이 대수겠냐만은, 그래도 선대들의 말은 헛되지 않다.
젓가락이 오가면서 서로의 정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까.
이번 초대로 엥겔계수가 후진국 수준인 우리집 가계부에 비상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우리의 허리띠가 조금은 당겨지더라도 그래도 마음의 배부름은 막을 길 없다.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