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있는 특목고나 대학을 갈려면 자원봉사를 해야한다.
명문대나 일류대에 가려면 학원 갈 시간도 쪼개서 일부러 봉사활동을 해야한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 가면 시계를 쳐다보며 언제 시간 지나가나 그거 지켜보는 게 큰 일이고 자원봉사가 되었다.
그마저도 못하면 엄마 아빠가 잘 아는 공공기관이나 그런데를 봉사확인서를 주민등몬처럼 떼러 다닌다.
정작 자원봉사라는 활동은 이미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점수로 변질되었다.
문제는 어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요즘은 창의력을 주로 개발하는 교육이 최고 인 줄 안다.
어디가나 이 줄기찬 창의력 개발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교육비가 지출된다.
창의력은 돈이 있냐 없냐에 따라 개발이 되냐 마냐식으로 또 변질되었다.
상황은 이런데 아직 평준화를 줄기차게 똥고집으로 여전히 텃세다.
이런 상태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과연 가장 창의력을 갖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점수는 숫자다. 이 숫자는 한 사람의 성장역사를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냥 대학이나 특목고에서 우선은 편하게
입시요강에 편리함으로 몇 십년 우려먹은 편법이다. 아뭏튼 그렇게 받은 점수나 성적은 절대 창의력과는 절대 하등의 상관이
없다. 꼴등이 무시되고 일등만 인정되는 교육은 사람을 길러내는 인성교육은 우습게 한다.
자원봉사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어떤 뜻을 두고 일회성이 아닌 두고두고 평생동안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를 배우게 하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단지 입시요강에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시계만 쳐다보는 봉사활동으로 전락을 시켰다.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 중고등학생들은 시키는 일만 하고 가만히 서 있다.알아서 할 줄 모른다. 그런거는 학교에서 안 배웠어요식이다.
다음에 뭐 할까요? 묻지도 않는다. 공장에 부품처럼 달국달국 시키는 일만 하면 다 끝나는 줄 안다.
융통성은 절대 하루아침에 배우지 못한다. 시키는 일만 할 줄아는 학생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 직장 생활 할 때
상사를 부아나게 하고 오너는 속 뒤집어지게 한다.
왜냐구? 후후..한 번 당해보라. 그 마음을 어찌 단 한마디에 표현 할 수 있겠는 가?
일일히 시키지 않은 작고 사소한 일들을 하지 않고 리모콘처럼 누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직원이라면, 그 직원이 바로 대학을 일류대학을 나와도 지능지수가 높아도 앞 뒤 콱막혔다면 어쩌겠는 가?
내게로 오는 자원봉사활동하는 학생에게 물었다
니는 네방 누가 청소하냐? 걸레는 빨아 봤냐? 청소는 일년에 몇 번 해봤냐?
대답은 천편일률적으로 완전 평준화다.
" 울 엄마가 여기로 가래요? 봉사점수 많이 준다고 !"
봉사고 뭐고 그럴둣한 철학적인 대답은 원하지 않았지만 참 우리나라 대학이 어쩌다가 이런 어린학생까지 절대적인
봉사의 가치를 씹다가 버린 껌보다도 더 못한 신세로 떨어지게 한건지 한탄스럽다.
오늘 그냥 가라! 대신에 학원도 가지말고 공부하지말고 차라리 실컷 놀아라!
점수는 그냥 준다. 그러나 나는 일일히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는 게 힘이든다고 했다. 뭐든지 자발적으로 행동해야만 보는 사람도 하는사람도 순조롭고 아름답다.
내 대답은 차라리 놀다가 아! 세상에 이런 이치도 있고, 저렇게 사는 법도 있고. 그러다가 하다못헤 피씨게임을 하다가 무릎을 탁치며 왜 오늘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느끼는 자존적인 생각도 하지 않을까 싶다.
점수를 위해서 공부하고 오로지 대학만 들어가면 다 만사형통이라는 교주없는 어느 신흥종교에 푹 빠진 맹신도들은 공부만 하다가
창의력이고 뭐고 다 까막눈이 될 지경이다. 헤어나올 수 없는 평준화는 그렇게 함정이 빠졌다.
한 가지 제안한다면 우리집만 내 자식만 잘 되게 어디가서 기도나 소원을 빌지 말았으면 한다.한다면
제발 말도 안되는 개도 씹어 먹지않을 이런 엉터리 입시교육제도나 정신차리게 해달라고 촛불을 높이 들고싶다.
절대 혼자서는 잘 살지 못한다. 우리의 미래는 모두가 함께 깃발을 나부끼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실컷 놀다가 커야한다. 그래야 성숙한 어른이 된다. 한 사회를 이어받을 사회인은 인생을 배운다. 절대 점수가 성적이 높은 공부는 가장 작은 수단일 뿐이다.수단이 전부가 될 수 없다.
아이들은 사람이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