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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으로 세상을 산다면..


BY 2006-02-13

지독히 앓다.

감기다.

사람이 독해지니 감기란 놈도 독해지나 보다.

병원을 가고, 약을 먹었는데도 시간이 말한다.

시간 왈 \" 내가 가야 니 병도 나아지지..기다려\"

\" 빨리 시간아 가라 넘 아프다 \"

짹각 거리는 시계를 보며 희미한 내 의식속에 아프다만 이야기 한다.

그래도 계속 아팠다.

그랬더니 이제 시간이 갔는지 좀 살았다.

그래서 급하다는 손님을 배알 했다.

 

요즘들어 무(巫)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어디가서 보았는데 굿을 해야 한다고 해요.

어디가서 보았는데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해요.

어디가서 보았는데 천도제를 해야 한다고 해요.

어디가서 보았는데 그래야 건강이 좋아지고 사업도 잘 된데요.

 

내가 사주를 이야기하면서 특징적인게 있다면..

사주는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오지, 죽겠다는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살만한 사람들이 사주를 본다는 것이다.

당장 없는 사람들은 사주도 보러 오지 못한다.

두사람만 보아도 돈이 얼마인가!

좀 잘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어째든..

철학관과 무당은 다르다.

철학관은 년월일시를 넣어서 생극비화를 나름대로 풀이한 것이고..

무당은 귀신이 알려주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육감의 발달이라고 설명해야 될까!

엄연히 상황은 다르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 라고 판단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안 풀리는 집은 무당의 말을 들어 수를 쓰는 것도 좋은 일이고..

본인의 사주를 통해 일생의 흐름을 알고 대처하는 습관도 좋은 일이다.

단, 무당과 철학관 선생님의 학식과 덕망의 높이가 얼마만큼이냐에

따라 좀 다를 수가 있다.

물론 유명하다해서 다 알아 맞추고 대처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도 운이 작용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의사 선생님라도 나와 맞는 의사 선생님이 계시듯

이 철학관도 만찮가지이다.

그 선생님의 철학이 나와 같다고 느꼈을때, 그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인연을 맺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맞춘다 못 맞춘다를 따질게 아니고..

 

한분의 스승을 잘 만나면 자연히 본인의 일생을 관망하는 힘이 길러지고

그 다음에는 굳이 가지 않아도 지혜의 힘이 발생하는 것이다.

종교도 만찬가지겠다.

돈을 버는 것도 본인이요, 남편과 아내가 사는 것도 본인 이다.

이 속에 자식을 낳고 또 다른 인연을 받아드려 내가 배운 학식 내가 배운

세상의 습관을 또 잇게 하고 만들어 가면서 좀 더 좋은 세상을 영위 하며

살으라.. 종국의 매듭은 이것이 아닌가!

 

또 이 드라마에서 갈등이 없다면 사는 맛이 없지 안은가!

가끔 감기 걸려서 아프구나 지독히 아프구나..라고 해야 사는 맛도 있는 것이고..

 

이런 저런 좌우당간..

무당과 철학관의 차이는 이렇다.

그럼 같은 것은 무엇인가!

같은 것은 종교의 힘에서 파생되는 것과 만찬가지로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당과 철학관에 정성을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내 마음의 잣대를 세우고 그것에 열심히 정성을 드리고

기도하는 마음을 갖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든 불교든 어떤 종교든 간에 욕심내라고 가르치는 좋교는 없다.

살생하라는 소리도 없다. 마음을 비우고 살으라 한다.

이건 사실적으로 따졌을때 꽁깍지 같다.

벗기면 쓸모 없어지는..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란다.

 

곧 무엇을 하든 정성들여..이왕이면 밥을 먹으면서도 이 밥상까지 만들어 주신

농부님네..상을 만들어준 상 공장 아저씨네..숟가락 만들어준 숟가락 아저씨네..

열심히 일해서 밥을 먹는 나 자신에게 정성과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정성을 알고 살면 미워 할 일도 원망할 일도 괘씸했던 괘씸 죄도 살아지고

없는 것이다.

특히 기도하는 힘은 매우 좋다.

기도 할 때의 사람치고.. 욕심내고 성내고 미워하는 사람 보았는가!

하루에 10분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은 척박하지 않을 것이다.

해보라.. 진리는 살면서 스스로을  많이 깨우치는 일이다.

 

깨우치는 방법중에 굿도 좋은 방편이다.

예전엔 굿을 하면 동네 잔치 였다.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에게 그날 만큼은 육고기를 먹고 좋은 과실과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니 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산사람이 좋으니 돌아가신 양반들도 아니 좋을 수가 있는가!

예전엔 모든 것이 귀하니 굿을 하고 나면 베푸는 마음과 믿음의 마음이 안정이 되니

두루두루 동네도 좋아지고 자기 자신도 유해지니 당연히 좋을 수 밖에..

그 마음을 통해 굿판은 절로 흥해지는 것이다.

 

결(結)은 식(式)을 통해 내 마음을 다잡고 모든 은덕에 감사하여 종국에

무병장수하면 가내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니 이것이 나쁘다 좋다 할 수 있겠는가!

 

기도하고 정성을 드리면 지나가는 복도 다시 돌아 온다.

사주를 보다가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내 자주 쓰는 말 중에 \' 지성이면 감천이다\'

이말 처럼 감사한 표현도 없다.

정성이 지극하면 진짜 하늘도 감동 한다.

 

오늘 좋은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이 한결 개운하다.

내일도 열심히 살아야지..

항시 기도하는 맘으로..

 

나의 적은 내 마음속의 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