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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BY 2007-08-13

한쪽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몇날을 한가지 과제를 가지고 생각해 내야 하는 압박감에

자멸하듯 오른쪽 눈이 그렇게 감겼다.

아..신음소리가 뱃통에서 부터 치밀고 올라온다.

아.....

 

\' 여보 난 말야 한번씩 큰숨을 쉬어야 편해..언제부터인가!\'

 

가족들이 탄 승합차 앞자리에서 난 나도 모르게 윗 말을 뱉었다.

남편은 알까...내가 왜 이말을 뱉었는지..

 

늘상 아침이면 어김없이....시작하라고 한다.

 

근데..며칠전부터 난 감옥에 갖히게 되었다.

 

뭘 하나 써주기로 했는데..도통 생각은 나지 않고..그냥..매일..

명리학 책만 본다.

써줘야해..써줘야해..그래야 돈이 되지..

돈을 만들려면 써줘야 하고...돈이 안되는 명리학책은 자꾸 보고 싶고..

참 바보 같으니라구..

 

혼자 궁시렁거리다..그래도 명리학책만 읽는다.

재미있으니까!

 

나에게 있어 생활의 큰 물살은 책 보는 것과 아이들 건사하는 것과

손님을 만나는 것과..친정엄마 눈치 보는 것과..글 써 달라는 일과

뭐 이런..별 재미없는 ...

청소하기와 걸레 빨기와 마트 보기와...

요런 일들 중에도 바쁘게 내 머리는 자꾸 돌아간다.

몇가지 일들을 마구 하면서 내 머리는 자꾸 돌아간다.

아주 빠르게..

 

그러다 절에서 앉아 있으면 퍽하고 눈물이 난다.

나도 모르게....

 

머리와 현실은 이렇게 차이를 만들며 지나간다.

 

이게 숙명일까..여자라는 이름으로..

 

거울을 보다 내가 많이 늙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조그마한 거울이 이상하게 날 울린다.

 

왜냐면....내 몸을 위해 넌 무엇을 했누..라고 되물어 미안했다.

그래..난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한것이 없어..

문득 반성을 한다.

 

옷을 제대로 입었나!

운동을 제대로 했었나!

화장품을 제대로 발랐나!

먹는 것을 제대로 먹었나!

아무것도 없네..

다...다...대충 그냥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쩌면 이도 감지덕지 하지..

 

이 시간동안에도 머리는 계속 돌아갔지.

수학 공식을 풀듯..

 

.......

 

아...좋다.

난 이렇게 글을 써야 좋다.

그래야 난 마음이 풀리고 좋다.

이 흩날리는 작업이 이 천한 내 마음을 풀어줘서 좋다.

 

어느..점술가를 만난적이 있다.

\" 마음속에 한이 많구만..\"

\" ? \"

\" 마음속에 한을 다 털어 놓아야해.그래야 편해지지\"

\" ! \"

\" 전생에 말야..\"

\" 아..\"

난 특별한 한이 없어 한을 모른다.

그냥 부모밑에서...그냥 사랑하는 신랑 만나서..그냥..애들 낳고..

근데..왜 한이 많다고 했나..

알고 보니 전생을 이야기 했나 보다.

그래..전생에 한은 좀 있었을 것이다.

있지 않구는 이렇게 특별하게 발악거리며 살수는 없지.

 

남편보고 오이를 좀 얇게 썰어 놓으라했다.

얼굴에 바를 것이니..되도록 얇게...

\" 어 \"

그동안 집안일을 한다.

청소를 한다.

할 일도 참 많다.

 

순간순간 벽에 붙은 전신 거울로 날 본다.

왔다갔다 하는 나를 본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머리는 흐드러지는 우뭇가사리 같고..

배는 척 쳐진 것이 ...머리는 글자로 꽉 채워져 있고..

 

딸도 뉘고..남편도 뉘고..

그리고 발랐다..오이를...

참..이쁘다..어쩜 이렇게 이쁠까..

딸에게 말했다..매일 이렇게 이쁘게 커라..

남편에게 말한다..당신도 이제 얼굴이 아저씨 같네..

 

오이 접시를 들고 살포시 잠들 엄마에게 갔다.

얇은 사 같은 오이를 거죽만 남은 얼굴 위에 척 얻는다.

움푹 패인 볼 우물에 초록 빛깔이 안 어울린다.

그래도 입술은 새초롬하게 다물었다.

다 부치고 나니..만족한 얼굴로

\" 너도 해 \"

\" 응 \"

엄마..이제 그만 늙어..나도 엄마처럼 늙겠지.

머리는 늙지 않았으면서 말이야..

아직도 새초롬한 새색씨 같으면서 말이야..

 

홀랑 벗고 목욕통 안에 서서 나를 본다.

그래..아직은 쓸만한데..너도 곧 있으면 말야..

거죽만 남어..뭘 알고 있니!

 

물기 묻은 얼굴을 손으로 쓱 쓸어 보았다.

힘들었던 하루가 그렇게 쓱 쓸여 나갔다.

이 순간을 위해..하루 좋일 땀을 뺏으리라.

 

좋은 것은 다들 덮어 주고...그 중 못난 것만 내 얼굴에

덮었다.

오이가 싱싱해진다.

수고했다고 그런다.

이제 쉬라고 그런다.

척 쳐진 살들과 마루바닥이 한 몸이 된다.

 

손 거울에 미친 나는 아직 때 안 묻은 여자 같다.

어쩜 이렇게 순한 양처럼 변했을까!

날 위해 희생타가 된 오이 덕분에...

여름날의 무더위가 간다.

지리한 생각이 간다.

여자로 간다.

 

일상은 이렇게 작은 치열함 속에서 간다.

여자는 꽤 많은 일을 해가며..

소원이 있다면 말야..

날씬하고 이쁜 여자들이 없었으면 좋겠어..

아니..왜들 그렇게 이쁜것이야.

 

거울속에 나는 천상 아줌마 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