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찬 술통에 들어갔다 나온 듯 내 몸은 그러했습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산으로 갔습니다.
가끔 가는 산이지만..어제의 산은 가장 습하고
가장 추웠던 산 입니다.
온 초록의 물결이 짖다 못해 잿빛을 띄며..
음산한 기운까지 내 비쳤습니다.
커다란 나무들이 날 다스리고 있으니..
나무들의 형상이 무서운 것인지..
내눈에 두려움이 있어 무섭게 보이는 것인지
걸음을 빨리해도 여전히 날 다스리는 것은
조급한 마음 뿐 입니다.
계곡의 물살은 산을 집어 삼킬 듯 흐르고..
거친 바람은 나무를 흔들며 제멋대로 소리를 냅니다.
눈동자가 커진 나를 느낍니다.
그러다..
문득..왜...무섭지...뭐가 무섭지!
지금...뭐가 무서워 이렇게 아는 길을 조급하고
안달하며 걷느냐...너 지금 무엇하느냐...
뒷통수를 치며 메아리가 울립니다.
그래..왜..내가...이 길이라면...잘 알면서...야...너
웃기다.
빛도 없고 커다란 잡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 있고..
벼락치듯 비는 오고..산에 발자욱 소리는 나 뿐이고..
인기척 없는 그 산에서..나는 나를 찾지 못해...
두리번 두리번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날 깨우는 것은 역시..생각 이었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 돌아 ...온 길을 살폈습니다.
봐라..너 여기까지 왔지 않니..
오는 동안 무엇을 생각했니..
올라가고 있는 것도 너고.. 올라와서 보는 것도 너인데..
왜 그 길을 미천하게 걸었니..무엇때문에..
앞으로의 길도 무겁게 걸을래..아니면..
이왕 가는 거 좀 어울려서 자연스럽게 걸어 볼래..
물으니..두번째 답을 주더군요.
내가 언제 이 산을 이 젊은 날 걸어 볼 것이며..
이 아름드리 나무속에서 큰 숨을 쉬어 볼 것이며..
이 어둠을 언제 맛 볼 것이며..
두려움은 두렵다는 생각이 더 미치게 할 뿐..
사실은 생각이 없어지면..아무것도 아닌 것을...
너 참 바보구나..
아직도 너 바보구나..
신발을 벗고 저벅저벅 물길과 숲과 바람과 나와..
함께 되어 그 길을 올라갔습니다.
참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그 순간의 마음을 잘 먹고 나니..어찌나 시원하고 좋은지
혼자 놀면서 기뻐졌습니다.
이게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이 변덕이 사람 마음이라..인생도 그런가 봅니다.
절에 올라가 보니..몇분의 보살님도 와 계시고..
비에 흠뻑 젖은 절은 짙은 빛이 더욱 짙어 고풍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변덕부린 몸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아..실컷 절을 하고 나니..
시원한 것이 이 맛에 내가 절에 온다..그랬습니다.
또 낮추고..또 낮추고..
하심은 날 낮춘다는 의미가 아니라..
낮춰진 마음에서 오는 겸손함 이었습니다.
한참 기도를 하고 나니..마음 또한 몽롱한 것이..
술을 한참 마신 듯...기분 좋았습니다.
온갖 갖었던 상념도 어느새 제 갈길을 가고..
일념..무량한 일념만 남아 아...행복하구나..
라고 외칩니다.
만약..지금...날 다스리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열심히 기도하세요.
그럼 참 편해집니다.
극락이든 천국이든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극락의 맛을 봐야..극락이 있구나..
라고 생각 할 수 있는 것이지.
극락이 뭔지도 모르고 극락을 갈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바람 불고 숨통이 막히더라도 나를 잘 다스리면..
한잔 취한 듯한 세상이 참 내것으로 다가옵니다.
신발 두짝을 손에 들고..
알록달록 우산 속에 있는 듯 마는 듯..
온 몸에 물기는 있어도..
와...세상 부러울 것 없이..좋은 기분..
이것이 어제의 제 극락 이었습니다.
오늘...좀 전에 저와 인사를 하신 분도..
지금 큰 바람이 불었지만..
꼭 제 길을 잘 가실것입니다.
그러나..알고 가야지요..알아야 면장은 하지요.
그 알아가는 것..그것은 기도와 명상입니다.
조용하고...아늑한 상태...
내 속의 내장이 녹을 만큼 깊은 기도..
그러면 빛이 보입니다.
사실 검푸른 산은 무섭습니다.
이 무서운 마음 다스리는게 쉬운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이 무서운 산이 하나도 무섭지 않게
되는 것..참 신기한 일이지요.
어느새..가을로 들어선 오늘처럼...
세월은 늘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