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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엄마이기에...한번쯤 생각을..


BY blue 2000-05-08

아무리 늦었다고 해도 안하는 것보다는 빠른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엄마라는 자리 김희경

내가 아는, 정년퇴직을 하신 지도 이미 10여년이 된 여자교수님이 한 분 계시다. 그녀는 1950년대에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 도미유학을 가셨던 분이다. 여자가 대학은 가서 뭘하냐는 집안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까지 혼자 힘으로 가셨었던 분이다. 집안의 도움이 전혀 없이 유학을 갔던 만큼 보육원 보모, 미용사, 웨이트리스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당시에는 외국인에게 관대했던 장학금을 받아서 어렵게 미국에서 다시 학사학위를 따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귀국한 후,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를 하셨었다. 그녀의 이력이 말해주듯이, 그녀는 당시 여성들보다는 몇 세대 앞서서 사신 분이다.

그 분에게 한 번은 자식을 낳고 그들의 성취를 위해서 어머니로서 어느 정도 희생을 하면서 사는 것이 자신의 커리어만을 위해서 사는 인생보다 전체적으로는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드렸던 적이 있다. 이 질문은 가끔 내게 하는 질문이다. 나는 자식이 없는데, 가끔은 자식을 낳아서 그들을 내가 자랐던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고, 내가 가지지 못했던 기회들을 주면서 그들이 눈부시게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도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되어 학생을 기르는 보람같은 종류의 것이겠지만, 강도로는 몇 백 배 더한 보람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기 때문이다.

그 분은 꽤 성공한 자제분들이 있고, 본인도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이라곤 자식들 잘 키운 것이라는 것밖에 없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성공한 자식이라는 것도 당신의 성공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의 성취감을 그리 많이 주지는 못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그것은 본인이 아니니, 본인 스스로가 하는 일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 성공한 자식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껴서는 사실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이 분 연배의 대부분의 한국 어머니들과는 다른 생각이다. 그러나, 이 분의 심정이 오늘의 젊은 세대가 늙었을 때 가지게 되는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끔 딸을 낳고 싶다. 나와 똑같이 생기고, 나와 똑같은 아이큐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아이의 베스트가 나오는 지 알테니까, 그녀의 베스트가 되도록 키울 수 있을 것 같고, 설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 유전자를 가진 한 인간을 그녀의 베스트가 되게 하도록 하는 건 아주 큰 기쁨일 것 같다. 그리고, 굳이 그것이 내 유전자가 있는 자식이어야 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나마 나의 모탈리티(mortality)를 극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인생의 반을 살았지만, 내 유전자가 들어있는 아이의 탄생을 보는 것은, 내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지구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이 내 딸을 통해서, 그리고 내 딸의 딸을 통해서 남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때문이다. 소위 이런 심정이 종족보전의 본능이 아닌가 한다. 내 유전자가 계속 이 세상에 그런 식으로 보존되어 길이 길이 전하게 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물론 직업의 종류에 따라서 아이를 낳은 여자는 권고사직을 당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아이의 양육과 직업을 가지는 것을 병행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데다가 아이의 양육이 대개의 여자들에게는 아주 큰 기쁨을 주기때문에 여자들이 자진해서 직업을 그만 두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이의 양육시설이 변변하지 않은 한국사정에서, 아이를 보아줄만한 친정이나 시집식구가 없는 한, 일단 낳은 아이를 키우는 걸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똑같은 식으로 남자가 직업을 포기하고 아이를 키우는 경우는 대단히 희귀한 경우이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만 세 살까지는 어머니가 늘 같이 있는 것이 좋다느니 하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엄마없이 커서인지 아이가 말이 늦었다는 어떤 이의 글을 읽은 적도 있다. 어린 아기를 집에 두고 출근을 하는 어머니들은 대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느니, 직장에서도 신경의 반 쯤은 아이들 걱정을 한다느니 한다는 말은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이번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아넷 베닝은 네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데, 영화배우라는 직업의 장점은 아이를 낳고 일을 쉬면서 아이만 키우면서 살아도 되는 자유로움에 있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관찰하거나 읽은 것에 의하면,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쁨을 남자보다 훨씬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남의 손에 기르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훨씬 더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나는 이것의 근원이 사회적인 것인지 생물학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상적으로는 자식을 기르는 기쁨은 자신의 직업과 바꿀 만큼 어머니에게 더 큰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즘은 아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아이들 학교 공부를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을때가 있다. 내 친구들의 아이들은 이제 엄마손이 별로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이제부터 진짜로 엄마가 필요하다면서 아이들 공부시키는데 에너지를 쓰는 걸 목격한다.

가끔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단히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아이를 훌륭히 키워야 해서 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업주부들도 만난다. 내 친구들 중에도 그런 이가 있는데, 그녀는 딸에 대한 교육에 대단히 많은 투자를 한다. 그러면서, 가끔은 내게, '이렇게 내가 이 딸에게 많이 투자를 하는데, 나중에 얘도 나처럼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 아이들이 원하는 어머니는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본다. 가끔 내게 상담을 하는 여자 제자들이나 여자 후배들 중에 도저히 어머니와는 상담이 안된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그녀들의 어머니는 그녀들이 겪는 고민, 그네들이 직면하는 선택에 대해서 정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을 뿐 아니라, 이해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여자들이, 딸도 얼마든지 아들처럼 잘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키워서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가진 딸들을 키웠다고 하자. 그래서, 그 딸들이 원하는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일까? 그렇게 유능하게 자란 딸들은 그 시대가 되면 이제 글로발하게 비즈니스도 하고 세상을 보면서 사는 여자가 될텐데, 전업주부로만 생활한 어머니, 직장에서의 섹슈얼 허래스먼트는 신문에서밖에 읽은 적이 없는 어머니, 비즈니스 파트너인 외국인을 집에 초대해서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를 보이면서 교류를 할라치면 영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해서 더듬거리면서 부?Z에 숨어 있는 어머니,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손주들 봐주는 일밖에는 없는 어머니, 이런 어머니들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어머니일까? 이런 어머니들은 우리 세대가 가졌던 어머니들이다. 그들의 역할은 우리도 남자들 만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면서 키운 것이었다면, 우리는 그들이 앞으로 갈 길을 쉽게 열어주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우리 세대가 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딸이 외국인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할 때, 바쁜 딸을 대신해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 음식을 선보일 줄 아는 어머니여야 한다. 우리 세대가 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딸이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할 때, 딸이 가고 싶어하는 직업에 있는 친구를 소개해주고, 내 딸이 먼저 그 길을 간 선배 여성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어머니여야 한다. 우리 세대가 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다른 어머니의 딸이 와서 직업적 상담을 할 때 20-30년 후배에게 직업적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우리 세대의 딸들이 아이를 낳을 때 쯤이면, 사회 곳곳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도록 우리 세대가 세상을 바꾸어서, 우리 세대의 딸들은 그 문제로 골치를 썩이지 않으면서 남자와 경쟁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 세대의 딸들에게는 그런 어머니들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딸도 아들처럼 잘 키우는 것, 그것은 이미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이 한 일이다. 우리도 그것을 반복해서는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을 실망시키는 일이고, 우리 세대의 딸들이 필요로 하는 어머니도 아니다.

전업주부가 되어서 아이를 부족한 것이 없이 뒷바라지 해주는 어머니가 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생활이 온갖 섹슈얼 허래스먼트, 치열한 경쟁, 이기적인 여자라는 비난, 구역질나는 상사를 견디는 것, 이런 저런, 한국에서 여자가 직업을 가지자면 겪어야 하는 어려움보다 행복을 느껴서 선택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선택이다. 다만, 그 직업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의 시한이 있는 것이고,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어머니가 되는 쪽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 커크 더글러스처럼, 첼시 클린튼의 어머니 힐러리 클린튼처럼,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 그런 어머니가 되는 선택이야 말로 정말 지금의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어머니가 되는 선택이 아닐까.

지금, 아이를 낳고 직업을 포기했다고 해서, 커리어가 끝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알브라이트 국무장관은 13년에 걸려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박사학위를 하느라고 개점휴업상태에서 박사학위과정에 들어있었던 시간, 남편 직장때문에 이리 저리 옮겨살아야 했던 시절, 그런 것들 때문에 집중해서 공부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해내었고, 지금은 여성최초로, 정부 관리로는 최고의 자리인 국무부 장관에 올랐다. 아무리 늦었다고 해도 안하는것보다는 빠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