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오백원 때문에
수원에 사는 사람치고 원천 유원지에 안가본 사람은 없을 거다. 오늘은 원천 유원지에서 일어났던 일을 고백하려 한다 어느날 남편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긴답시고 원천 유원지에 갔다. 가깝기도 하고 돈도 별로 들지 않아서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우리 부부의 드라이브 시간은 대게 7시 이후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가면 통행료 오백원을 내야하므로 통행료 징수원이 확실히 퇴근했다고 믿어지는 시간에 가는 것이다. 징수원은 주차요금이라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통행료가 확실하다.
지금은 성남이나 수지로 가는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통행료를 받을 그 당시에는 원천 유원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도는 성남 수지행 도로는 만성 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부차량들은 편법으로 유원지를 왼쪽으로 끼고 도는 내부 도로를 통과하여 목적지로 향했는데 이 일은 통행료를 징수하는 빌미가 되었다. 유원지 내부에 주차하는 차량과 단순히 도로만 통과하는 차량들이 뒤엉켜 북새통이 되면서 원활한 유원지 운영을 할 수 없게 되자 주차요금을 받는다며 잠시 그 길을 통과하는 차량에도 통행료를 받는 것이다. 그런 일은 우리에게 무척 부당한 일로 여겨졌다. 비록 오백원에 불과하지만 명목이 없는 돈이지 않는가? 그래서 공공의 시설인 도로를 잠시 통과하는데 왜 통행료를 내야하냐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별 효과가 없어 무언의 항의로 7시 이후의 시간을 이용하며 나름대로 시민의 정의를 실천해왔다.
이날은 오히려 좀더 늦은 시간인 8시쯤 유원지 입구에 도착했다. 부당한 통행료를 받는 징수원이 있을 염려가 전혀 없으면서도 낭만적이기까지한 그시간... 네온싸인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호수의 수면이 눈앞에 보이고, 상기된 모습으로 이리저리 다니는 연인과 가족들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가는데... 앗! 세상에 이런일이... 통행료 징수원이 입구에 있는 것 같은 낌새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퇴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앞차들은 그 통행료의 부당성에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차례대로 요금을 내고 순한 양처럼 입장하고 있었다. 망설임의 순간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시간을 내서 왔는데 오늘만 타협할까? 아니면 오백원의 통행료를 내느니 끝까지 소신을 지켜 드라이브를 포기하고 시민의 정의를 실현할까?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타협할 수는 없다!!
서둘러 U턴을 하여 차를 돌렸다. 아깝다.남편과의 즐거운 시간이여! 그러나 소시민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기에 후회는 없다는 신념으로 섭섭함을 달래려는 순간... 삐~ ~ ~ 익 삐~ ~ ~ 익 호각소리와 함께 누군가 우리차의 트렁크 문을 세게 두드리는 것이었다. 놀란 나머지 차를 세웠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이 차의 앞범퍼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도주하는 차량을 검거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너무나 황당하여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면허증 좀 보여주십시오" 정중한 어투였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나에게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옆을 보니 남편도 놀랐는지 상기된 얼굴로 경찰을 쳐다보며 "무슨 일입니까?" 묻는다. "왜 검문에 불응하고 도망가십니까?" 도망이라니... 기가 막혀서... "우리가 언제 도망갔습니까?" "그럼 지금 차를 돌려서 가는게 도망이 아니고 뭡니까?" "도망한게 아니고... " 우리는 차마 다음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 경찰에게 우리가 부당한 통행료에 항거하여 시민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그랬노라고 말한다면 과연 믿어주겠는가. 어쩔줄 모르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물었다. "그런데 경찰 아저씨는 여기서 뭘하시는 거예요?" "검문합니다. 흉악범이요." 주제넘는 엉뚱한 내 질문에 짜증이 났는지 빨리 이유를 대라고 성화다. 남편을 쳐다보니 묵묵무답이다. 그래 남자 체면에 오백원 내기 싫어서 도망갔다고 할 수는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이야기하는게 낫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사실은 여기서 통행료 오백원을 받거든요. 7시가 지나면 안받기 때문에 지금 나왔는데, 앞에 차들이 차례로 있기에 오늘은 늦게까지 돈받는 줄 알고 그냥 돌아가려고 그랬어요." 내 말이 끝나자 경찰은 너무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니 그럼 오백원이 아까워서 그랬단 말이예요?" 되묻더니 우리 두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고나서 차 앞뒤를 빙빙 돌며 살피다가 한마디했다. "티코도 아닌 차를 타면서 오백원이 아까워요? 이거 참.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하나..." 우리는 졸지에 파렴치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정말 정말 억울했다.
통행료 징수원 대신 서있던 경찰에게 검문 당하는 소동을 치루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에게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고 필연적인 일들이 일어난다는데 오늘의 일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나는 혹시 내 안에 존재하는 정의감을 핑계로, 비록 액수가 작긴 하지만 돈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더구나 남편까지 부추겨가면서 말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의 경우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내가 옳다는 생각이 들면 사소한 일에도 목숨건 것 처럼 바르르 떠는 나의 경솔함에 대해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비록 정의와 관련된 것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