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가족이 서점에 다녀왔다.
요즘 슬럼프에 빠졌다고 스스로 인정해버린 남편을 위해
책한권을 샀다. 결혼 10년차 힘들때도 되었다.
형에게 보증을 잘못 서서 알토란 같은 돈 수천만원을
생각해도 속상하고, 그 톡톡한 댓가로 이렇게
외곽에 나와 사는 사연도 답답했을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그래도 우리는 작은 방한칸 짜리 방이지만 삶이 힘들때마다
희망이란 영양제를 먹어가며 잘 견뎌가고 있는데, 아 글쎄
주인집 아지매가 우리집 부억문에 조그만 종이떼기를 붙여
놓은 것이다.
"벽에 붙은 테이프 자욱 좀 닦아주세요"
우리는 무슨 자욱인지 몰라 한참을 찾았다.
지난 겨울 우리가 창문에 비닐을 칠때 붙였던 누런 황테이프
자국이 참 가느다랗게도 세군데 남아 있었다.
젖가락 굵기 만큼한 그 자국을 그 아지매는 어찌 보고 없애란
것인지....
나는 울컥 화가 났다. 그래도 꾸욱 참으며 연장을 찾고 있었다.
내가 그 자국을 띄고 있자, 남편도 나와서 나를 거들었다,
"여보, 이거 긁어 내는 기분 정말 더럽다 그치"
"집 한칸 있다고 정말 되게 유세한다. 그치"
"우리도 근사한 아파트 있었어. 그 잘난 형때문에 팔았지만...
"아까워서 전세는 어떻게 줬대..."
나는 한참을 이렇게 주절대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런 말없이 칼로 벽을 긁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말이란 칼로 남편을 속을 긁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