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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가 본 아줌마세상


BY 영자 2000-06-04


나, 영자는 아시다시피 이 아줌마세상에 늘 붙박혀 사는 아줌마다. 여기 아줌마 세상을 보면 몇가지 특이한 현상을 발견한다. 아마도 모두들 이미 눈치채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첫째로, 여기 아줌마는 1주일을 단위로 볼 때 토요일, 일요일엔 찾아오는 아줌마가 적다. 왜냐하면 주말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우리 아줌마들은 분명 가정을 이끌어가는 엄마, 아내로서 주말엔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은 것이다. 나 역시 일주일내내 직장일에 매달려 있어도 일요일엔 집에서 밀린 이불빨래며 청소며... 그리고 주중에는 늘 밖으로만 다니느라 시부모님 진지상 한번 못차려 드리는 이유로 주말은 그래도 가족들 식사에 신경을 쓰다보면 사무실에서 싸들고 온 노트북도 이렇게 저녁이 지나서야 앉을 수 있게 된다.

둘째로, 여기 아줌마는 하루 단위로 보면 점심시간, 특히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에는 아줌마가 적다. 아마도 오후 4~5시면 저녁장을 보러 나가실테고 다녀와서는 가족들을 위한 맛나는 밥과국, 반찬을 만들거고... 남편이 돌아오면 남편과 함께 놀아주기도 해야하고... 겨우 남편을 재운 뒤에나 혹은 남편의 양해하에 아니면 남편과의 투쟁에 이겨서 다시 여기 아줌마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가끔 오후 6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수다천국'을 들여다보면 썰렁하니 방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가 밤 10시가 넘어서면 복작복작.... 아줌마들의 수다는 새벽 1시, 2시까지 그칠 줄을 모른다. 참 재미있다.

이 두가지로 보면 우리 아줌마들은 참 가정적이고 아름다운 주부의 역할을 잘 해내는 멋진 아줌마들인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여기 아줌마세상에서 남편의 발을 따듯한 소금물에 씻겨주는 아리따운 아내의 모습을 배우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여기 아줌마 세상에서 가장 특이할 만한 것은 모두가 하나같이 '아줌마'라는 이름하나로 서로를 감싸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아줌마 년차수가 적든 아님 고참아줌마이든 우리는 '아줌마'라는 이름하나로 '아-'하면 통하는 뭔가가 있다. 남편에 대해 얘기를 할 때도 시댁식구들에 대해 얘기할 때도 또 자식에 대해 얘기할 때도 우리는 모두 내 얘기인양 들을 수 있다. 시를 써도 소설을 써도 우리는 그 글이 마치 내 얘기인양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슬퍼하고 외로워할 때도 우리는 때로 낯선 아줌마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곧 그를 향해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된다. 모두들 공감하시겠지만 여자는 결혼을 하고나서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게된다. 나 스스로를 죽이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되고 남과 더불어 살기 위한 지혜를 쌓게 되고 또 엄마가 되면서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게 되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그런 아줌마들일진대 이 세상 어떤 얘기, 어떤 모습들이 다 내 일같지 않겠는가?

나 역시 어떤 날은 무척 우울한 날이 있다. 누구에겐가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다. 어떤 날 나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그건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깊은 감동이다. 그 날 나는 생각했다. '이 세상 단 한사람이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라고 말이다.

나는 여기가 참 아름다운 아줌마들의 세상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야말로 나의 인터넷 생활을 위해 남편과의 실갱이를 무릎쓰고 컴앞에 앉더라도 저녁식사 때면 어김없이 가족을 위한 엄마로 돌아서는 아줌마들, 주말이면 엄마노릇, 아내노릇 때로는 며느리노릇을 하느라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아줌마들.... 늦은 밤 앞치마를 걷어내고 물기젖은 손을 쓱쓱 닦고는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우리 아줌마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나도 지금 세탁기에서 다 짜진 이불빨래를 널고서는 늦은 샤워를 하고 머리엔 수건을 감싼채 방바닥에 엎드려 아줌마들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찐감자를 먹고 있다. 아까 저녁 때 장보러 나갔다가 남편이 사준 옥수수도 먹고 있다. 난 참 행복한 아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