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댁쪽으로 친하게 지내는 집에 놀러 갔다.
며느리는 너무나도 심성이 착하고 여리며 행동도 조심스럽다.
시어머니는 카리스마가 강하셔서 가뜩이나 착한 며느리가
언제나 절절매고 시어머니 한 말씀에 이 일 저 일 손길 발길이
분주하다. 냉장고에서 음식하나 꺼내는 것 조차 일일이 확인
해야할 정도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며느리 초보시절이 생각나 속으로 몹시 안스러웠다.
그런데도 아무 내색없이 시어머니 거슬리는 일 없이 잘 참고
시어머니 심장약 드시는 것 시간맞춰 드리고 예쁜 미소로 고운 말씨로 대하는 모습이 참 예뻤다. 그리고 꼭 엄마라고 부른다.
시어머니도 겉으론 무뚝뚝하고 혼을 내시지만 돌아서서는 며느리
몰래 우리에게 참 착한 아이라고 칭찬하신다. 단지 시어머니는
불같은 성격이고 며느리는 너무 찬찬하여 가끔 답답하게 느껴
지시는 때문에 큰소리가 나기도 한다고...
그렇지만 서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해주고 한발짝 물러서고
조율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참 아름다운 고부간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자식에게는(아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그런 분이시다. 결혼해서 2년간을 분가해서 살다 어머니댁에
들어가 함께 살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은 참으로 창살없는
감옥같다는 생각으로 지냈었다. 아파트에서 함께 사니까 여름
에는 마음놓고 샤워도 못하고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다. 부부
싸움도 어른들 마음 상하실까봐 접어두게 되고 아이에게도 큰
소리 한번 치질 못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도 못 만나게 되고
내가 먹고 싶은 건 차마 할 수가 없다. 갑갑하여 직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토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밀려드는 피로를 뒤로 한 채
시누이 식구들과 1박2일을 지내야 했다. 며느리는 직장을 다녀도
피곤한 건 흉내도 못낸다. 이런저런 갑갑한 상황들이 겹쳐
나는 늘 목구멍에 뭔가 걸려 있는 듯한 느낌과 항상 체한 것
같은 느낌으로 내과랑 이비인후과랑 다니며 진찰을 받았지만
심인성 이란다. 스트레스성.. 결국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어깨가 너무 뻣뻣해지고 등이 쪼개지듯 아픈 증상에 병원을
찾아 한달동안 근육침에 물리치료까지 받을 정도였고 흔히
울화병도 생겨났다. 나는 나대로 너무 예의를 차리느라 할 말
못하고 참고 살아서 생겨난 병이다.
그런데 난 자꾸 살이 찌고 울 시어머니는 자꾸 살이 빠져만
가셨다. 아무리 착한 며느리라도 같이 사는 것은 힘드셨나보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얼마나 힘드셨을까? 친자식 같으면 하고
싶으신 말도 한 두번은 꾹 참으셨을테니까. 지금은 분가해 사는
데 같이 살라면 다시는 못 살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내게 스트
레스를 주시는 건 아니었고 내게도 잘못이 있는 것 같다.
며느리를 며느리로만 보는 것, 그리고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로만 보는데서 많은 섭섭한 일들이 상대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전화도 자주 드려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어머니와 아무 스스럼 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부럽다.
우리 시어머니는 자식들 챙겨주시느라 본인은 지금 덜 여유있게
사신다. 지난 겨울 불시에 찾아 뵈었다가 거실 바닥이 냉골처럼
차가워서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다. 정말 불효하는구나.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하시며 사용하시는 방에만
불을 때셨다. 화장지도 꼭 한칸씩만 뜯어서 사용하시는 분이다.
참 알뜰하셔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나도 이제 조금은 어머니를 흉
내내곤 한다. 아직도 멀었지만.. 어머니께선 능력이 있으신 한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시댄다.
뒤늦게 기독교에 입문하셔서 처음엔 성경책이 잠오는 약 처럼
느껴지신다고 하더니 이제는 우리만 가면 전도하시느라 열성이시다. 하지만 나는 전도 당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종교는 가족이라도 강요받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뭏튼 시어머니는 종교를 가지시고 자식들에게서 조금 한발짝
물러나셨다. 더 관대해 지시고 사랑이 커 지신 것 같다. 그리고
자식에 의지하기 보다는 더 큰 분에게 의지하시니 마음이 놓이
시는가 보다. 그리고 평안해 보이신다. 세련되고 학식이 높진
않으시지만 구수하고 순수하신 어머니가 다시금 좋아진다.
아마도 한 집에서 이런 저런 단점 보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더 잘해드려야 겠다.
우리 엄마도 시어머니이시다.
그런데 5년전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혼자 되신 이후로 우리 올케가 목소리도 커지고 어른을 잘 몰라보는 것 같아
속상하다. 원래는 착한 심성이겠지만 (사람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 특별한 경우는 빼고) 상대적인 걸까?
우리 엄마는 갑자기 혼자되신 충격으로 마음의 상처가 크신 것
같다. 그래서 평소보다는 좀 더 여유가 없어지셨고 보호본능이 더욱 강해지셨다. 그런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며느리는 자기대로
측은한 반면 허전함을 감추시느라 강하게 나오시는 어머니가
힘든가 보다. 자기 나이도 이제 40대 이니까 언제까지나 며느리
가 할말 다 못하고 사나 싶은가 보다.
시어머니이든 며느리이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그 자리
에서 다 여과없이 내뱉고 나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하면 다다. 그러기 전에 조금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전 우리 엄마가 갑자기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하시더니 하룻밤 지내고 가셨다.
그런데 엄마 눈에서 슬픔이 느껴지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며느리와 다툼이 있으셨나 보다.
나도 며느리이지만 아무리 미운 감정이 들더라도 어른을 대할
때는 좀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눈 똑바로 뜨지 말고 노인네
노인네 하는 말도 듣기 싫다. 시어머니들은 며느리가 자기 앞
에서 돈 없다고 하는 말이 제일 듣기 싫댄다. 그리고 아무리
미운 아들이더라도 자신 앞에서 험담하는 게 제일 싫댄다.
어떤 친구가 그랬다. 자긴 친정갈 땐 잘 차려입고 가고 시댁
갈땐 거지처럼 하고 간댄다. 너무 속 보인다.
서로에게 마음의 빗장을 열고 정직하게 다가선다면,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를 서로에게 지킨다면 고부간이 조금은 쉬워질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사소한 것도 예사롭게 넘어가지 않고
속상하시다고 한다. 물건이나 돈으로 형식적으로 위하는 척
하지 말고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