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나온 이야기랍니다.
"더워서 안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아들만 4형제… 그 가운데
전 셋째 아들로 태어나 집사람 만나 아들 하나 낳고 잘먹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년전. 푹푹찌는 7월의 초순.
할아버지 제사가 있어 고향집에 도착을 해보니..
아버님의 표정이 영 좋지를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전 속으로..
"아! 할아버님 생각이 나셔서 그러시는구나.." 그냥 눈치만 살피고 있었죠.
그런데 저녁상을 물린 아버지께서는 저희 4형제와 며느리를 모아놓고
뜻밖의 발언을 하시는 겁니다. "마… 내 어제 뒷집 자춘이 칠순잔치에 갔다왔는데…
마..손자손녀가 얼마나 억수로 많은지..좋아죽더라..
자춘이도 아들 넷이고 내도 아들 넷인데.. 우리는 와 손주가 달랑 넷뿐이고..
내 긴말은 않겠고.. 너희 넷 중에서 딱 하나만 더 불리도!!"
아버지가 문을 닫고 나간 후 우리 4형제는 장남인 큰 형만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효심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큰 형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두 분만 사시게한 걸..
항상 마음 아파하며 아버지가 방귀를 꾸었다는 연락만 와도 뭘 드시고 뀐 방귄가
내려와 뵙고 올라가야하는 그야말로 효자 중의 효자거든요.
그러나, 우리의 눈빛을 의식한 형은 무거운 입을 열며,
"난 안된데이.. 니 형수 나이도 있고 아들놈 장가 보내는게 빠르지 난 어려울 것 같다."
하시는데… 그리고 보니 그날 따라 어머니 몸빼 바지를 빌려 입으시고
초췌하게 앉아계신 형수님을 보니 정말 무리가 따르는 바람인 것 같드라구요.
나이가 많아서 안된다고 하시니 당연히 우리모두는 막내 부부를 쳐다보게 되었지요.
그러자 막내가 잽싸게 입을 열었더군요. "저도 안됩니다. 저희가 집이 있습니까,
차가 있습니까. 이 사람이랑 같이 벌어야지 저 혼자 벌어서는 우린언제 내 집 마련하고
그 흔한 자동차 한번 굴립니까? 그리고 저는 아들도 있고 말입니다." 그 때 전 생각했죠.
'맞아. 직장 부실하게 빌빌거리는 저놈!! 결혼할 때 제수씨가 직장 확실한 걸
우리가 얼매나 다행으로 여기며 두 팔 벌려 환영했던가.
제수씨 임신해 직장 그만두게 되면 저 녀석 능력으론 네 식구 쪽박차지..
백 번 옳은 말이군.' 다들 공감하는 표정이었고 아들도 있고 해서 안된다는 말에
또 우리 모두는 딸하나 두고 있는 둘째 형님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둘째 형은 "저도 안됩니다. 아들 낳는다는 보장이 있으면
낳겠지만 또 딸이면 어쩌란 말입니까? 소신있는 단산으로 만족합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요. '이번엔 꼭 아들일꺼야.'하며 밀어 붙쳤다가
또 딸 놓으면 그 원망을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형제들의 의견이 이쯤에 오자, 마누라 나이 적당하지, 전업 주부인 데다가 아들까지 있는
저희 부부야말로 딱이란 표정으로 다들 쳐다 보는게 아닙니까?
얼떨결에 저도 입을 열었습니다. "저도 안됩니다."
목소리만 컸지 안돼는 확실한 이유가 없는 저는 "절대 안됩니다. 절대!!" 라고
외쳐대고만 있었죠. 그 때, 큰 형님께서 그러시대요. "니 절대 안되는 이유를 대봐라!!"
그래서 다급해진 저는 "더워서 안됩니다." 라는 엉뚱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는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모두들 환한 웃음을 띄우며 숙덕거리 더니 에어컨한 대 달아 준다는 말을 남기고
개운한 표정으로 각자 집으로 가더라는거죠.
아!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집에 도착해서도!! 아무리 생각을 해도 타의에 의해
애기를 낳을 수는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래 안되는 이유를 찾자"
머리를 싸매고 며칠을 열심히 고심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내고 가장 그럴싸한 이유하나를
추려내고 있을 때 집에는 대형 에어컨이 배달되었고 설치비까지 계산한 형제들의
따듯한 배려에 그냥 거기서 눌러 주저앉고 말았다는거 아닙니까.
그날 밤부터 우리 부부는 매일 밤 에어컨을 돌리기 시작했죠.
한두달이 지나자 형님께선 "에어컨 잘 돌아가제?" 하시며 소식을 물어오는데
뇌물 받은 우리 부부는 후회해도 이미 늦었기에 열심히 노력하여 보답하는게
최선의 길이라 느껴 더더욱 분발했습니다. 겨울이 오자 형님은
"와? 춥나? 히터도 사줄까?" 하시며 노골적으로 재촉하시는데…
그러던차에 해가 바뀌고 집사람이 '욱욱'거리며 입덧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와?! 대한독립만세!!
아! 정말 빚지고는 못살겠더라구요. 효자 형님은 한숨에 달려가 아버지께
이소식을 전했고 모든 이들의 관심과 기다림 속에 둘째 놈은 고추를 달고 태어났죠.
아버님 어머니 앞에 재롱을 떨 때 이제야 자식이 불어났다고 흐뭇해 하는 두 분을 뵈니
참 장한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오더군요.
그런데, 참! 그렇게 태어난 둘째 놈이 벌써 세살인데 집사람이 뭐라고 혼내면
에어컨 밑에 가서 에어컨을 부여잡고 아주 서럽게 '꺼이꺼이' 울어 댑니다.
이 녀석이 뭐를 좀 아는지 다른 전자제품 리모콘은 다 박살내면서 에어컨 리모콘은
고스란히 원형 보존시키는 것이 여간 예사롭지 않거든요. 뭘 아는 걸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