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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한그릇 먹자는데......


BY 칵테일 2000-07-10

어제는 너무 더웠죠.
연달아 주말따라 손님을 치르다보니 녹초가 됩디다.
그래도 저번주도 걸렀는데 이번주도 거를 수 없어 시댁에 갔습니다.
남편과 나, 둘 다 새벽 5시에나 누울 수 있었기에 시댁에 가서는 서로 눈만 마주치면 하품을 해댔습니다.

"도대체 뭣들 했는데, 하품만 디리 해대냐?"
"집에 온 손님들과 노느라고 거의 밤을 샜드니만...."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싱겁다는 듯이 시아버님이 웃으시고, 어머님이 따라웃으시두만요.

"저녁으로 냉면이나 한사발씩 시원하게 먹자. 내가 사마."

오늘 저녁은 뭘해야하나 속으로 갈등하던 나는 정말 어깨가 가벼워지대요.
그래서 아버님차로 우리 아들까지 다섯명이 냉면집을 찾아갔습니다.
첫번째 집. 동네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었는데, 가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더군요.
음식점밖에 열댓명가량이 옹기종기 모여 서있는데, 그게 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멋모르고 내렸다가 다시 차에 올라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두번째 집. 다른 먹자촌에 있는 곳이었죠. 거긴 더 황당합디다. 아예 주차장앞에서 자리없다고 차도 못대게 하더군요. 자리가 나려면 한참을 기다리셔야한다구요.
이쯤에서 아버님 오기가 생기시나 봅디다.
두번째까지 퇴짜를 맞자, 운전하던 남편도 분위기가 심상찮은지 아버님을 돌아보며 묻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할까요? 일요일이라 다들 냉면먹으러 나온 모양인데, 그냥 고기나 먹을까요?"

"......"

"어떻게 해요? 어디로 갈까요?"

남편의 재차 물음에,

"냉면 먹자. 저기, 야탑에도 '사임당'이란 냉면집이 있어. 니 엄마랑 낮에 둬번가서 먹은 일 있다. 냉면먹으러 나섰으니 기어이 냉면먹어야겠다. 가자."

끙. 조수석에 앉은 나는 갑자기 서늘한 한기를 느낍니다.
세번째집에서도 만약 퇴자맞으면 분위기가 정말 장난이 아닐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

세번째 집. 건물 뒤쪽으로 차를 댈 자리를 찾으니 꼭 한자리가 비어있어 다행히 차를 댈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 앉아서먹는 자리는 다 찼고, 에어컨이 쎄게 나와 아무도 안 앉았은 듯 싶은 좌석이 남아있었습니다.
거기에 앉았죠. 정말 무쟈게 춥대요. 에어컨 온도계를 보니 24도와 25도를 오르내립니다.

민소매원피스를 입은 나는 그야말로 덜덜 떨립디다.
슬그머니 남편곁으로 자리를 옮겨앉았습니다.

"왜, 춥냐? 흐흐"
아버님께선 그래도 냉면집에 오셨다는 흐믓함으로 농을 건네십니다.
"네. 춥네요. 아버님은 괜찮으세요?"
"응. 난 시~원하다."

맛은 어떨지...... 그러나 맛은 역시나~였습니다.
그래도 어디 표현할 수 있나요. 가뜩이나 양이 적은 나는 옆에 앉은 남편을 아래로 쿡쿡찔러 내걸 몰래 슬쩍 덜어줬습니다.
만약 남기면 맛이 없냐? 그러실게 뻔하거든요.
깔끔하고 넓직한 홀은 마음에 들었지만, 냉면맛은 그저 그랬는데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나봐요.
조그맣게 이러더군요.
"그만줘. 나도 겨우 먹는거야."

만두 맛은 더 별로. 그래도 두 노인네는 예전에 드신 맛이 있어서인지 잘 드십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만약 세번째에서도 잘못됐다면 저녁 기분 다 망쳤을텐데......

맛있게 잘먹었습니다. 인사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아버님께선 당신이 자식며느리에게 냉면을 사주게되어 흐믓하신 모양입니다.
골프친구들과 다니셨던 맛있는 집은 꼭 기억해두셨다가 우리도 데려가시는 데, 애초에 가려했던 첫번째집이 그 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 집을 몇번 가봤지만 정말 맛있는 집이었거든요.

평소에는 엄하시고, 말씀도 별로 없으신 우리 시아버님. 그래도 우리앞에선 어느때부턴가 말씀이 많이 느셨습니다.
남편과 나, 그분들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에 (우리도 자식키우는 입장이니까) 이번 주도 무사히 시댁을 다녀갔다고 안도하게 됩니다.

그 뒤는 어찌되었냐구요? 하품만 디리하던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둘 다 죽은 듯이 잠에 빠져들었답니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