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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다.


BY 아하 2000-07-14

웃긴다고 해야 할지, 재밌나고 해야 할지,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몇일전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하늘이 온통 크레파스 하늘색으로 도배한 듯 한 밤이었을 때였습니다. 진작 차를 몰고 오면 아무리 걸려도 10분이면 되는 집과 사무실의 거리가 지하철을 탈 경우 갈아타고....걷는 둥 해서 족히 40분 넘게 걸리는 지라 집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게다가 제 짝꿍이 집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데 걸어가면 어차피 집가는 길이라 같이 분위기있게 걸어갈 수도 있어 기분 좋게 걸어갔지요.

사설이 참 길었지요? 사건은 이제부터 일어납니다.
짝꿍 회사가 바로 저기,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경상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40대 아저씨가 제대로 다가오더니 길을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전 길 묻는 사람에게 상당히 친절한 성격이라 귀를 기울였죠.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길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경상도 어디에 사는데 출장차 서울에 왔다...그런데 공중전화박스에 지갑을 놔두고 와서 현재 수중에 돈이 5,000밖에 없는데 12시에 기차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막내동생뻘 밖에 안되는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려니 부끄럽다며 자뭇 순진성이 묻어나는 경상도 사투리였습니다. (참, 이해를 돕기 위해 전 대구 출신입니다)

워낙 세상에 친절과 동정을 가장한 사기가 넘치다 보니 그런 것에 대한 의심과 절망을 품고 있던 내가 그 날은 어쩐지 그 사람말을 믿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 사람 말이 진심인가, 이 사람이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 가늠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알겠습니까? 그냥 그 얼굴을 몇 번 쳐다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지갑을 꺼내들었죠. 지갑 꺼내드는 나를 바라보며 전화번호를 적어주면 내일 전화를 하겠다며, 돈을 부쳐주겠다고 하더군요. 13,000원 정도를 달라고 하면서요. 돈이 없던지라 그냥 10,000원을 내밀었습니다. 돈이 좀 더 없냐고 물었지만 그것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죠. 그러고 긴가민가....휴대폰번호를 적어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인사를 정중히 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사람이 전화를 주었으면, 꼭 돈을 부쳐주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냥 잘 내려갔다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전화를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생기더랬습니다.

그런데 짝꿍 사무실에 도착해서 기묘한 기분으로 휴대폰 전화를 꺼내들고 나 도착했다고 얘기를 하려던 중 아~ 그 컴컴한 밤에도 희므끄레한 길거리 위...초록빛을 발하는 지폐 2장이 제 눈에 섬광처럼 띄었습니다.
만원지폐 2장이었습니다.

참, 웃기는 일이죠?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던 짝꿍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짝꿍 뭐가 신나는 일이라도 난 듯 한참을 낄낄대며 웃더군요. 그러면서 세상에 그런 일도 있구나 하는 황당한 표정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그 만원지폐 2장의 행방과 그 아저씨가 전화를 했는지 안했는지가 궁금하실 줄로 압니다.
그 아저씨는 아직껏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폰을 열심히 충전시키며 기다리고 있건만 좀 씁쓸하네요.
그리고 초록종이 2장의 행방은 묘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