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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는 시간에 익숙해지기


BY 칵테일 2000-07-18

친구가 많은 사람을 보면 항상 부러웠다.
언제나 좌중을 집중시키며,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부럽고 또 부러웠던지.

몸이 약해서 체육시간엔 맡아놓고 '견학'을 했다.
달리기를 하면 꼴등은 언제나 내 차지.
달리다가 누가 넘어지는 경우엔 그나마 꼴등을 면하기도 했지만, 넘어진 친구는 그나마 날 생각해준듯 뿌듯해하고.

사교성이 부족한 나는 늘 몇 명의 친구들과만 교분을 나눴다.
그 친구들 역시 거의 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집에서는 더 더욱 나 혼자. 남동생들은 나와는 별개로 자랐다.
시커먼 남동생들 덕에 더운 여름날에도 민소매나 반바지한번 제대로 못입어보고 컸다.

결혼을 했다. 외아들집이라 더더군다나 단촐했다.
명절이 되도 특별히 가야할 곳이 없었다. 유일하게 시댁뿐.
친정부모가 다 돌아가시니, 때되어 찾아가야 할 친정도 없었고, 동생들 집엔 신정때 잠시 다녀오곤 했었다.

집에서의 내 생활이란 그야말로 적막강산.
아들아이 하나 달랑 있는 집에 낮시간의 대부분은 나혼자.
7시경에 출근하는 남편은 거의 대부분을 늦게 퇴근한다.
가끔 일찍 퇴근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야말로 어쩌다 한번 정도.

그렇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일생을 그렇게 적막하게 살아오다시피 한 나에게, 어쩌면 이런 삶은 너무도 익숙한지 모르겠다.
집 밖을 나서는 일이 별로 없으니 딱히 이웃을 새로 사귈 기회도 없었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 바닥과 벽지를 새로 바꾸고 있느라 현관문을 열어놓고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7~8명의 여자들이 갑자기 우르르 열린 문으로 우리집에 불쑥 들어와서는 까르르르 법석을 떨다가 사라졌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이라 너무 황당했었다. 같은 라인 주민이라면서 몰려왔던 그 여자들은 아마도 우리가 새로 이사온다니까 궁금해서 왔던 모양이었다.
남편과 함께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그 이웃여자들의 천연덕스러움에 너무도 당황했었다.

막상 이사온 뒤엔 또 그들이 갑자기 들이닥칠까봐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다시 더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보니까 우리집의 전주인이 오지랖이 하도 넓은 여자라, 수시로 이 집이 동네 마실방 비슷하게 되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사를 갔다고하니, 누가 이사왔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그렇게 몰려왔었다고......
반상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야 대충 이해가 되긴 했었다.

이사온 지 이번 달로 꼭 1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혼자 보낸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기서는 걸어서 다닐 곳이 많아서 차를 두고 외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디든 차가 없이는 못다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선 대부분의 볼일을 걸어서 볼 수 있을 정도라 좋았다.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구나하는 걸 새삼 깨닫는다.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아, 어쩔 땐 그냥 일부러 걷기위해 길을 나서보기도 한다.

나는 점점 혼자있는 시간에 익숙해져간다. 함께 섞여 즐거운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혼자있는 시간에 익숙해지는 것도 싫지는 않다.
더더군다나 요즘은 인터넷으로 인해 나 혼자 있다는 것을 별로 실감하지도 못한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남편은 나더러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라고 놀린다. 그러면서도도 집에 전화했을때, 어쩌다 내가 받지 않으면 몇번이고 통화가 될 때까지 전화를 해대는 집요함의 이중성도 보인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집을 떠나 있는 나에 대해 남편은 무척 걱정스러워한다.
외출한 뒤에 전화를 받으면 남편이 꼭 하는 말,
"무슨 일 없었어? 괜찮아?"
내가 무슨 앤가. 낼 모레면 내 나이 마흔이 다 되는데, 잠시 외출해도 뭔 일 난 줄 아는 남편의 이중성은 참으로 놀랍다.

어쨋든 내가 혼자있는 시간에 익숙해질수록, 이러다 정말 땡그랑 나만 남아있게되면 어쩌나 싶은 그런 생각도 든다.
그냥 많은 사람들과 벅적이며 매일매일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단, 시댁식구들은 제외!!
웬지 시댁식구들과는 북어국에 들기름마냥 겉돌기 십상이니까.

혼자 더위를 식히고 있자니 이런 글도 써지네. 후후.
나 외롭다는 이야기가.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