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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편하게 다시 정리


BY 지나가는 넘 2000-08-11

제목 : 한 약사의 고백(펀글)

최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약사 한 분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의약분업 후에 약국에서의 조제문제가 화제가 되었지요..그 분은 종합병원앞의

문전 약국과 동네 약국의 중간 쯤에 위치한 약국에서 월급약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 대화에서 들었던 내용입니다.


1. 그 약국은 의약분업전에는 주로 수입이 영양제, 한약 등이 큰 수입원이었다고 합니다.

혈압약, 당뇨약, 제산제 등도 많이 나갔지만 주변 약국과의 가격 경쟁으로 큰 이윤이 남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임의조제(환자가 증상을 호소하면 약사가 알아서 약을 져주는 행위)의

경우 전체 매상의 10%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2. 의약분업 이후 주변 병원의 문전 약국에서 소화하지 못한 처방전이 약 30-40건 정도

넘어 온다고 합니다.. 병원 처방 조제 이게 황금알 낳는 거위더군요.. 일단 조제료,

약품관리비 등등으로 수입이 보장되고 그 밖에도 위에서 말한 이윤이 별로 없던 약들이

보험에서 10-15%정도 약가마진을 보장해주니까 이게 수익이 크다고 합니다. 게다가 병원

처방은 1-2달 짜리 처방도 많거든요.. (그분 말로는 문전 약국은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큰 수입이 되었던 영양제, 간보호제, 혈류개선제, 한약 등등의 판매는 전혀

줄지 않았다고 합니다..


3. 임의조제는 안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법이 무섭기라기 보다 이윤도 적었던 부분이고

처방전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하더군요.. .


4. 대체조제는 처음에는 약이 없으면 그냥 돌려보내다가 자기가 생각하기에 별 문제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바꿔준다고 합니다.. 환자에게 대체조제 여부 통보는 처음에는 하다가

나중에는 환자가 물어보지 않으면 그냥 준다고 합니다.. 별로 중요한 약 같지 않으면

물어봐도 맞게 줬다고 하기도 한답니다..(훼스탈 포르테를 그냥 훼스탈로 주는 일 등)


5. 대체조제는 원래의 의미(같은 성분, 같은 제형, 같은 용량)가 아닌 처방변경까지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소염제를 다른 성분의 소염제로 주는 등). 문제는 그 약사분이 자신이

처방변경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사의 조제권이라고

하시더군요..


6. 가장 놀란점은 같은 성분의 약이라도 의사가 1정에 800원 짜리 약을 처방한 경우 약국에

180원짜리 약이 있으면 그걸로 조제를 합니다.. 조제 기록부에도 남기지 않고 환자에게도

알리지 않으므로 환자에게는 800원짜리 약값을 받습니다.. 그리고 약국 주인은 나중에

800원짜리 처방전으로 보험 청구를 할 거라고 합니다.. 그 차액은 약국이 그냥 꿀꺽..!!

이 차액이 또 크다고 합니다..


7. 근처 안과에서 온 처방은 무슨 무슨 약을 몇 대 몇으로 섞어서 조제해라 이런 처방을

준다고 합니다.. (안과 선생님에게 물어본 바에 의하면 안과에서 쓰는 약품중 많은 수가

상품으로 나오지 않아서 안과의사가 직접 조제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의약분업 이후에는

이런게 금지 됐지요..) 그런데 이런 처방은 수지 타산도 맞지 않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그냥 다른 약국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처음엔 의사가 약사 골탕 먹일려구 일부러 어려운

처방을 낸닥 그러더군요..)


8. 약사 월급은 의약분업전에 한달기준으로 1시간당 30만원 (여자) -35만원(남자) 정도

받았다고 합니다.. 의약분업 후 수입이 크게 늘어서 1시간당 여자가 40만원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 분은 여약사였음.). 병원약사 출신은 더 받는다고 합니다.. (계산해 볼까요?

의원진료시간인 오전9시부터 오후7시까지 10시간 근무한다면 40만원 x 10시간 = 최소 400만원 )



이상이 그 약사분과 솔직하게 얘기한 약국의 현재 모습입니다.. 약사가 돈 많이 번다고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약사분들 자신이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대체조제, 처방변경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많은

탈법사례도..(그분이 일부 약사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분은 제가 아는 사람중 가장

소심하고 고지식한 분입니다..)


전에 서울대 약대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운영자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지금의

의약사간의 갈등은 의사들이 약사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업이 되면

약사들은 자신의 직능에만 충실할 것이고 상호간에 신뢰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하지만

분업 후 약사들에 대한 의사들의 신뢰는 더욱 더 추락했습니다.. 지금 의사들은 처방전

내기가 겁이 난다고 합니다..


그분과 대화를 하며 느낀 점은 아무리 법을 완벽하게 만들어도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의약분업은 모래성위에 집짓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 좋은 재료를 가져다 지어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