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 오후 6시 40분 여기는 신촌의 한 피씨방이다. 오후 5시 30분경 나는 세미나 자료를 들고 연세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횡단보도 맞은 편에서 바라보니 정문은 전경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고 겨우 한 사람 정도만 통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상태였다. 그리고 전경들은 그 좁은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신분증 확인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불심검문 반대카드를 꺼내 법조항을 확인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중 제3조 (불심검문)에 해당하는 사항을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의 신분증 요구에 대응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내게 연세대학교 학생인지 알아야 한다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어떤 수상한 짓이나 범죄를 지은 사람처럼 보이느냐, 당신들은 시민인 나에게 신분증 확인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간부쯤 되보이는 사람이 내게 와서 '그렇다면 들어갈 수 없다. 학교에서 시설보호요청을 했기 때문에 신분증 확인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뒤에서 관망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이 좁은 통로를 들어가려고 시도했는데 전경들이 거세게 막았다. 이에 흥분한 사람들은 전경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중 한 아저씨가 전경들의 행동을 비판했다. 지금의 집회가 어떤 불법적인 요소와 시설파괴의 위험이 있다는 것인지 설명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시설 파괴의 위험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여기 모인 시민들을 폭도로 모는 행동이 아니냐고 따졌다. 또 다른 아저씨는 '당신들이 내 병원에 불순한 사람이 있다고 신고하면 와서 내 병원 시설을 보호해주겠느냐'라고 물으면서 법의 형평성 문제와 공권력의 남용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던 중, 나를 포함해 맨 앞줄에서 항의하던 사람들을 전경들이 드세게 밀쳤다. 그리고 한 전경은 항의하던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밀친 행동과 한 전경이 욕설을 퍼부은 행동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으나 전경 쪽은 묵묵부답이었다.
햇볕이 따가웠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연세대 정문 앞 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다시 한 번 신분증 없이 들어가려고 시도하다가 전경과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경들이 자신들의 저지선을 사람들이 있는 앞쪽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실갱이를 벌이다 들어가는 데 실패한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밀착해달라'라고 주문했고 이 말에 따라 다들 앞으로 움직였다. 전경들과 대치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서 다같이 구호를 함께 외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의권쟁취'를 연달아 외쳤다. 나는 짐작은 했으나 여기 모인 사람들이 의사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의약분업 문제 때문에 연세대 안에서 집회를 갖기로 했던 것이다. 순간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이 자리에서 항의 시위를 같이 했던 이유는 시민을 잠정적으로 범죄자로 취급하는 공권력의 오만한 행동과 인권 침해에 항의하기 위해서이지 의사들의 파업에 동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를 질타하는 의사들의 항의가 집단적인 구호로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본질을 호도하면서 의사들을 집단이기주의자로 모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다. 하지만 나는 그 구호를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보다 더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환자들을 볼모로 하는 투쟁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인권 세미나를 하기 위해서 오늘 학교에 왔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권리도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인권 세미나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나 저는 연세대학교 학생인 것은 맞지만 의대생은 아닙니다. 제가 여기에 있었던 이유는 시민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공권력을 이용해 탄압하려는 행동의 항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저는 여러분들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와서 보니 정부가 여러분과 대화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만 가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것 모두 알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내가 겪은 일의 전부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급하게 신촌의 한 피씨방을 찾아서 들어온 것이다. 단지 세미나를 하기 위해서 연세대로 들어가려다가 이런 일을 겪었을 뿐인데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중 시설보호요청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시설보호요청'이라는 말은 학교 당국이 '외부인이 학교에 들어와서 학교 시설을 파괴할 위험이 있으니 정부가 시설을 보호해주기 바란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학교 당국이 시설보호요청을 했는지의 여부는 의심스럽다. 항의 도중 사람들이 시설보호요청의 증거가 될 문서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경찰 관계자는 '문서는 있는데 지금은 없다'라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설보호요청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학생들의 항의 집회나 의사들의 파업 집회처럼 정부의 행동을 문제삼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학교 당국의 시설보호요청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연에 불과한 것이 결코 아니다. 결국 시설보호요청이란 정부가 자신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모든 이들의 발언권과 집회를 가질 권리를 봉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의사들의 폐업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의사들이 집회를 가질 권리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사회적 합의는 서로를 존중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한 법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어느 한 쪽의 권리를 부정한 채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타협이 불가능한 집단이라고 매도한다면 마녀사냥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하게 된다. 오늘 내가 본 정부의 행동은 바로 마녀사냥이었다. 그들에겐 대화로 이 중대한 문제를 풀어나갈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하니리포터 김형수 기자 rad1ohea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