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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엄마" 가 본 의약분업 1, 2


BY 최지은 2000-08-19

약사"엄마"가 본 의약분업 1

계도 기간이 끝나고 전격적인 의약분업이 시작된지 이제 18일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엄마"라는 시각에서 생각한 것을 주저리 주저리 수다떨듯이
말해보고 싶다.

"엄마"이기 때문에 나는 그 어느 병원보다 소아과 처방에
관심이 많았다.
친정에 맡겨논 내 아이들은 엄마가 약사라도 친정 근처 소아과에서
늘 약을 지어 먹였었다.

그리고 선생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한번도 처방에 대한 문의를 하지 않았다.
(수납창구안이 바로 조제실이라 대충 어떤 약을 쓰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감히..아무리 약사라도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잖은가..
그 소아과가 맘에 드는건, 주사를 잘 놓지 않는 것과 약 양이 작다는 것이었다.


하여튼..우리 약국 근처에는 소아과가 없다.
그래서 이곳 엄마들은 좀 떨어진 곳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온다.
얘기 들어보면 두군데가 있는데 한곳은 젊은 선생님인데 잘본다고
소문이 나서 사람이 많아 오래 기다리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아서
그곳으로 간다고 한다.(가까운 지방도시에서까지 온다함)
다른 한곳은 연세가 지긋하신 소위 할아버지 선생님이다.

두 곳의 처방을 받아본 느낌..
한마디로 표현해서 내 아이라면 절대 "잘본다는 곳"에 안간다.

"잘본다는 것"이 결국은 내 아이한테 보따리로 약을 먹이고,
별 효과없이 내성만 기르는 항생제 주사 팍팍 맞는 거였다.
의사선생님들 입버릇처럼 열없으면 해열제 먹일 필요없다고 떠들더니,
열이 없어도 해열제는 기본이고 열이 있으면 거기에 해열제 시럽이 추가된다.
그외 다수로 처방되는 흔히 말하는 독한 약들..

다행인 것은 돌 전후 아이들에게도 7,8가지 약을 기본으로 처방하던
그 소아과 처방이 오늘은 5가지로 줄었다는 것이다.
처방공개의 효과인지..일시적인 우연인지는 몰라도..

소중한 내 아이한테 먹일 약이 어떤건지 그동안은 궁금해도 물을 수 없었다.
물어도 잘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이제는 처방이 자동으로 공개되는 세상이 되었다.
내 아이가 어떤 약을 먹는지, 그약은 효능 효과가 어떤지 부작용이 무엇인지
모니터링을 보통의 엄마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골 약국가서 열심히 물어보고 인터넷 뒤져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의약분업..약사인 나도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이다.
(오늘 우리 친정도 우리 아이와 내 동생 감기약 처방받으러 병원 찾아다니고
약 조제해오고 난리를 쳤단다.)
그 불편한 제도를 이땅의 "엄마"들만은 매우매우 환영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약사 "엄마"가 본 의약분업 2

윗글에 썼듯이 우리 약국 근처에는 소아과가 없기 때문에
이 동네 엄마들은 아이가 아프면 난리가 난다.
저멀리 구가 다른 딴동네 소아과로 원정을 가다시피 다녀와야 하고,
게다가 이젠 약타기 전쟁까지 불사를 해야 할,,아니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먼 소아과보다는 가까운 전문 병원들을 틈틈이 애용한다.
피부병이 나면 피부과로, 눈병이 나면 안과로, 이비인후과, 정형외과까지..

처음엔 멋모르고 그렇게 전문과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아과가 아닌 다른 전문과를 다녀온 아이들의 처방전을
받아보고는 다문 입을 닫지 못하였다.
그리고 당연히 처방이 잘못되었거니 생각하고 확인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 약을 늘 안쓰면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테르페나딘 하루 두알 용량 처방 내신거요..맞는건지 확인전화
드렸는데요..?"
"아~~ 그렇게 처방한 거 맞아요..그대로 해주세요..!"

당연히 잘못됐으니 양을 줄여달라는 답을 기대했던 나는
뒷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거 같았다.
쟤는 겨우 4살짜리인데 어른 용량을??
그거도 모자라서 부신피질호르몬제까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도 없었고,
조제실에 들어와 그냥 돌려보내야 맞는지 조제를 해줘야 맞는지
한참을 앉아 고민하였다.

그러나 우리 약국을 나가면 다른 약국을 찾아 헤매고
다시 같은 과정을 겪을 엄마를 생각해서 일단 조제를 하였다.
그리고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그대로 주라해서 조제는 했지만 이러이러하니 약먹이고 나서
아이를 잘 관찰하시는게 좋습니다.."
오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후에 어떤 엄마가 다시 처방전을 들고와 보니
같은 병원 같은 내용의 처방이었다.
이번엔 7개월짜리이고 테르페나딘 하루 한알에 역시나 부신피질호르몬제.
7개월짜리한테 어른용량의 반을 먹이는 건 도저히 내 양심에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아직 내부 장기가 제대로 성숙도 안된 그 갓난쟁이한테..

전화를 했지만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힘없는 나는 먼저 4살짜리에게 처럼 주의만 단단히 주어서
투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밤..밤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친정에 있는 우리 애기들이 너무 보고싶었고,
그 두아이들 모두 아무일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둘이가 다 무슨 큰 피부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아니고,
단순한 알러지인데 소아과가 멀은 죄로 가까운 피부과를 갔다는
거 밖에 없었다.

전에는 아주 유아들 아니면 그냥 전문 병원 다니시는 것도
괜찮다는 말을 엄마들에게 자주 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겁이 나서 더이상 그런 얘기 못하겠다.
피부과를 예로 들었을 뿐 안과를 비롯해서 거의가 그랬다.

어쩌나..
이제 내 아이들은 몇살까지 소아과로만 다녀야 할라나..
답이 나오질 않는다.

제발 우리 약국 근처 극소수의 병원만의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처방이 공개되었기 때문에 알 수 있게 된 일들이다.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었을라나..?
<= 이런 생각도 해본다 바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