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의 조그만 글방을 방문해 주심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저의 집안 소개를 잠깐 할까 합니다.
저는 외과 전문의로 또한 의대 교수로 대학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의사입니다
. 저의 집사람은 대학 병원에서 근무한 적도 있고 동네 약국을 십년 정도 경영하기도한 약사입니다.
특히 전공의 싯적에는 집사람의 약국 경영으로 들어오는 수입 부분이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의약 분업"건이 불거지면서 집사람과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때론 다툰 적도 있었고 생각이 맞아 떨어질 때는 저에게는 튼튼한 원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 내용을 일부분만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이야기 하나 : 외과 전공의 싯적 약국 카운터에서
동네 약국을 개업하여 약을 판매하는 집사람을 가끔씩 도우곤 했었습니다.
어느날 배가 아파 죽겠다고 호소하며 이웃 주민이 집사람에게 왔습니다.
집사람은 무언가를 한 두마디 물어 보더니 당장 약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그냥 구경을 하던 저는 그만 겁이 덜컥 났습니다.
혹시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환자에게 수시간 이상 경과된 복통이라면 좀 더 상세한 진찰(병력 청취, 과거력, 부신 피질 홀몬 같은 약물 관계, 가족력의 조사 및 환자를 누여서 시행하는 복부 검진)과 혈액 및 오줌검사 그리고 필요에 따라 방사선 사진을 찍어서 병에 대한 윤곽(응급 개복수술이 필요한 병인지 아니면 약물 투여로 해결이 될 병인지)을 확실하게 잡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환자는 설명을 듣고는 길 건너 외과 의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집사람으로부터 핀잔을 들었으며 그 후로 저는 약국 카운터에만 내려가면 쫓겨나곤 했었습니다. 물론 저의 설명을 듣고 집사람이 이해를 하긴 했었지만요.
이야기 둘 : 관절약, 보약(?), 입맛 나는 약, 한봉지만 먹으면 곧 온몸이 시원해지는 몸살약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름하여 스테로이드(부신피질 홀몬약)란 약물인데 일주일 이상 복용을 하면 부작용으로 당뇨병, 고혈압, 골다공증과 같은 고약한 만성 질환이 달라 붙을 수 있는 위험 천만의 약입니다.
이 약을 수일 정도 복용하면 밥맛이 좋아지고,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풀어 오르고 배와 엉덩이에 살이 입니다. 일견해서 사람 신수가 훤해졌다고 좋아합니다만 이는 벌써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환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당뇨병, 고혈압, 골다공증과 같은 속 골병이 들게하는 약입니다).
이 약은 외과 의사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약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약을 장기 복용한 환자는 수술을 하기 직전 전신 마취를 거는 과정에서 갑자기 치명적인 저혈압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5분 이내로 스테로이드(부신 피질 홀몬약)약물 장기 복용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자는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망을 하게 됩니다.
수 십년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감기 몸살로 약 한 봉지를 복용한 뒤 곧장 온 몸이 가뿐해졌다면 처방약을 한번쯤은 의심해야 하는 것이 의료계의 상식아닌 상식입니다.
물론 집사람에게도 설명을 했었죠. 그리곤 맥주 서너병을 강의료로 맛있게 받아 먹었습니다.
이야기 셋 : 끼워 파는 약 이야기를 좀 할까요?
감기 혹은 몸살로 약을 지으면 추가로 권해주는 약들이 있습니다.
같이 드시면 몸에 좋을 것이라면서요. 대다수의 시민들께서 한번쯤은 겪었던 일이죠. 의약분업 문제가 거론되면서 요즈음 집사람이 별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약사들의 취업 자리가 갑자기 많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남편을 돕겠다고 나서니 약간은 기특도 하지요).
대형 약국에 취직을 하면 집사람은 경력이 화려(대학병원 근무 + 개인 약국 경력 십년)하므로 고액의 월급을 받을 수 있대요.
그러나 그런 약국에서는 약 끼워 팔기를 해야만 한답니다. 양심상 그럴 수가 없다고 포기를 하더군요.
끼워 팔기는 약사를 보조하는 카운터 아가씨나 아저씨들(약사가 아님)이 훨씬 더 잘 한답니다. 물론 의학적인 타당성은 별로 없는 것이죠.
이야기 넷 : 싼약을 쓸까요? 비싼 약을 쓸까요?
시중에 나도는 아스피린이 한알 당 25원에서부터 두세배 비싼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답니다. 집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25원 짜리 아스피린으로 조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라고 반문을 합니다.
똑같은 약효를 지니고 있을까요?
정확한 검사법을 동원하여 확인할 필요가 없을까요?
시민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이야기 다섯 : 약을 처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의사입니다.
환자에게 약물을 처방할려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만 합니다.
즉 병명이 먼저 밝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열이 난다던지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어떤 특정 질환(예를 들면 복막염 혹은 장폐쇄)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 중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세한 진찰(의사들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임)이 이루어진다면 상기 병명을 거의 틀림없이 찾아낼 수 있으나, 병명이 밝혀지기 전에 열 혹은 복통에 대해 우선 단순히 해열제 혹은 진통제 만을 투여(집사람의 관행)하면 환자는 일시적으로 편해지긴 하지만 질병의 증세가 사라져 버리므로 병을 빨리 찾아내기가 어렵고 이로 인해 응급 수술 시기가 늦어져서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습니다.
집사람도 이 설명을 듣고는 아주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집사람의 이야기로는 약학대학 교육 과정에서 인체에서 나타나는 각종 질병(병명)이나 인체 혹은 진찰 과정에 대하여 전혀 강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야기 여섯 : 처방전대로만 조제를 하니까 마음이 굉장히 편하답니다.
집사람이 드디어 약국에 시간제 약사로 취직을 했습니다.
주변에 몇 개의 의원들이 몰려 있어서 위치가 꽤 괜챦은 약국이랍니다.
조제 건수가 많아서 쉴틈없이 바쁘긴 한데 마음은 편하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는 약화사고 자료들을 모아서 집사람에게 보여 주었더니 임의 조제나 대체조제할 생각이 싹 가셨다고 합니다.
이야기 일곱 : 가벼운 병입니까? 무거운 병입니까?
"어제부터 가슴께가 살살 아팠습니다. 괴로워 죽겠는데 빨리 좀 낫게 해주세요."하며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고 칩시다.
이 환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가능한 질병(병명)의 종류를 가벼운 병부터 무거운 병까지 나열해 보겠습니다.
급성 위염(특히 과음후), 십이지장염, 위액 역류성 식도염, 게실, 담석증, 식중독, 맹장염 시초(이는 응급수술감임), 급성 췌장염, 췌장 가성 낭종, 급성 간염, 만성 간염, 간농양, 간암, 위암, 담관염, 담관암, 심근 경색 등입니다.
정확한 진찰과정을 거쳐 병명을 찾아내지 않고 진통제만 쓰면 환자의 병은 숨어 버립니다.
"설사가 이틀간 계속됩니다. 괴로워 죽겠는데 빨리 좀 낫게 해주세요."하며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고 칩시다.
이 환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가능한 질병(병명)의 종류를 가벼운 병부터 무거운 병까지 나열해 보겠습니다.
만성 변비증, 식중독, 대장염, 노인성 급성 맹장염(충수염), 부분 장폐쇄, 대장암 등입니다. 정확한 진찰과정을 거쳐 병명을 찾아내지 않고 설사를 멈추게 하는 지사제만 쓰면 환자의 병은 숨어 버립니다.
집사람에게 이런 설명을 하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팔월 초순 보건복지부에서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국민들에 대한 홍보 목적으로 유력 일간지에 낸 커다란 광고의 내용 중에서 "가벼운 병은 약사에게 먼저 진료를 받으라"는 문안에 대해서 집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피식 웃고는 오늘은 그만하자고 했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맺음을 하겠습니다.
저의 조그만 생각 조각을 따라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의학적으로 궁금한 점이나 보태실 말씀이 있으시면 메모를 해주세요. 열심히 답을 해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