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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제 얘기 해 드릴까요?


BY 환절기 2000-10-11

여기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요샌 이 곳이 꼭 친정같다.
아침마다 출근 - 죄송합니다. 저 직장다닌다고 말씀드렸죠? 근무외 시간에 접속하는 것이니 사명감이 있네 없네 구박하지 말아주세요.지금은 점심시간 - 해서 특히 이 곳 '아무 얘기나 쓰기'를 꼭 들르게 된다.
오늘은 남편 생일.
지금 이 상황에 생일 따위(?)가 무슨 대수랴마는 며칠 전에 사 두었던 아이들과 함께 고른 남방셔츠. 그리고 어제 들른 백화점에서 구입한 반찬거리. 마침 각종 김치를 버무려 시식하는 코너가 있길래 고들빼기. 갓김치, 그리고 포기 배추김치를 조금 샀다.
퇴근해 보니 어머니는 온 집에 파스 냄새로 도배를 해 놓고 누워계셨다. --깔고 주무셨던 자리요가 베란다에 세탁된 채 널려있고.-
서로 아무 말이 없고.
방을 구하기로 했다고 메일을 보낸 뒤라 그런지 그럴 순 없다는 답장 뒤 남편은 계속 전화를 해댔고, 일찍 올 수 없는 날인데 서둘러 집에 왔다.
나는 아무 할 얘기가 없었다.
남편. 학교 3학년때 복학한 같은 과 선배다.
나는 내 입장을 고수했고, 이야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남편은 건너방으로 갔다. 난 아이들을 재워야 했고.
눈을 뜨니 2시가 조금 넘었는데, 저쪽에서 불이 켜진 듯 했고, 다가가니 남편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꺼이꺼이 숨을 죽인 채로.
아침 풍경이 가관이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미역 뜯는 소리를 내며 나를 부르는 신호(?)를 내셨고,아무 정신도 기력도 없는 분께서 저렇듯 움직이심이 나는 왜 그랬을까? 너무 짜증이 났다.
걸게 차린 아침 상. 아이를 깨워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인사를 하게 했다.
남편은 그 옷을 입고 역시 말없이 식사한 뒤 출근하고.
출근해 보니 남편으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생일이라고 멋진 남방 사 줘 고맙고, 억지라도 웃는 모습 보여주어 고맙고, 아이 깨워 아빠 체면 차리게 해 줘 고맙다고...
'아버지'가 생각나 너무 슬퍼 울었다고.
그리고 모든 것에 다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나도 모르겠다.......

어수선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이슬이님, 이지님, 주니님, 수기님. 고맙습니다.
앗, 점심시간이 지나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