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덕수궁 돌담길에 노오란 낙엽들이 물고기떼처럼
모여들고 흩어지고 하더니, 오늘은 제법 칼칼한 바람이 빌딩사이로 겨울장군을 모시고 옵니다.
마크 트웨인은 매월마다 "...하기에 좋은 달"하며 작가의 상상력
을 뽐냈지만, 나같은 천둥벌거숭이에게 11월은 그저 군밤 먹기에
좋은 달입니다.
사실 이맘때면 일년남짓 애쓰고 발버둥치며 해오던 일의 열매를
수확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불혹의 나이 중반에 걸치다
보니 연말이 다가올수록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 457세대라는 것이 남들과 어울려 살기보단 절대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독하게 홀로 서는 법을 먼저 익혀야 했고, 과정
보단 결과를 우선하는 직달주의에 젖어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뒤돌아서서 눈위에 남은 발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고, 고르지 못한 삐뚤빼뚤 눈자욱에 가느다란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3주전인가 을지서적에 들렀다가 '가시고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습관처럼 맨 뒷장을 펼치니 99쇄라는 숫자에 놀라 사 들고 돌아와 밤을 밝혔습니다.
무엇보다도 잊으려고 외면하던 답답한 시절의 편린들이 시퍼렇게
살아나는 바람에 한동안 머리가 죄어 왔습니다.
사실 스토리는 평범하고 최루성이 가득하여 나처럼 눈물샘이
말라붙은 사람도 한두번 찔끔 했지만, 가시고기 특히 아빠 가시
고기의 처절한 삶을 알게 된 것 하나로도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토록 고단할 뿐이지만 자기의 종말을 알면서도 내일도 모레도
자식에게 충실할 따름인 ... 바로 우리의 모습 아닐까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데에 저도 동의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 고로 내 뜻대로 하고픈 일만 하며 살겠다는
목소리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머리는 좌우로 저어도 어쩔 수 없이 가시고기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나만의 부질없음 일까요?
하루 한뼘씩 해걸음이 짧아지는 초겨울의 문턱에서, 바늘이가
에어로빅 운동간 틈을 기어 들어와 서툰 글 몇자 올렸습니다.
몸도 튼튼! 맘도 튼튼! 하시길 읽어주신 분께만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