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산길에서 서로를 지나치며 우연히 얼굴을 보았습니다.
어렴풋이 다시 보고싶을듯한 눈빛에 가만히 고개만 숙였습니다.
남자도 눈에만 살짝 웃음을 담아서 나에게 주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만났지만 서로를 잠시도
잊을 수 없는 시절을 지나고 시어머니의 반대 앞에서
칠전팔기 불굴의 투지로 결혼을 했습니다.
그날이후 아주작은 아파트에서 둘이서 함께 살게 되었을때
남편은 너무 좋아서 집에선 잠시도 나랑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잠을 잘때도 팔베개를 해주었다가 손을 깍지껴서 꼬옥 잡고 자다가
자는듯 마는듯 날마다 새우잠을 잤습니다.
나는 정말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밤엔 깨어 있다 시피하고 낮엔 남편이 출근하면 작은밥상만 보자기
덮어서 부억에 내어놓고 그대로 잠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밤이면 남편과 놀고 같이 나가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그러던중에 뱃속에선 아기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낮이면 정신없이 자고 밤마다 남편과 속닥속닥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 키재며 뺨도비비고 발등도 비벼가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드디어 어느 여름날 배가 너무너무 아파서 남의배 였음 좋겠다고
난리를 치며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그날 나는 죽을거 같다고 울며불며 소리를 질럿고 간호사들은
아이가 나올듯 말듯하니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있는힘을 다모아 모아서 숨을 다시는 안쉴것처럼
마지막 숨인양 들이쉬고 힘을 다바쳐서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그고통.......
아는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다해도
모를겁니다.
공주라고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근데 땅콩공주인지 땅콩을 나몰래 먹다가 태어난건지
얼굴이 암만 봐도 땅콩집딸 이었습니다.
간호사는 태어나면서 너무 고생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땅콩이거나 말거나 눈은 너닮고 코는나닮고
입은 너닮고 손은자기닮고 잘도 갖다가 붙였습니다.
그런데 하룻밤을 자고나니 딸은역시 우리딸이지 땅콩집 딸이
아니었습니다.
단 하룻밤 사이에 얼굴이 얼마나 이쁘게 변했던지 ^^*
얼굴형은 갸름하고 눈코입 모두 우리 부부를 닮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우리부부를 닮기만 한것이 아니었습니다.
딸은 우리부부만 아는 비밀까지도 알고있었습니다.
밤에는 아무리 재워도 말똥말똥 놀자고만 하고
낮에는 아무리 깨워서 놀자고 해도 새근새근 잠만 자는것 이었습니다.
밤마다 둘이서 졸며 자장가를 부르고 아기가 타는 요람을사서
태우고 흔들고 그래도 아기는 돌이 될때까지 밤과낮이 뒤바뀌어
우리부부에게 온갖 벌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던 딸이 이젠 자라서 어느새 중학교 일학년이 되었고
저보다 키가 2센티나 커답니다.
딸만 보면 너무 좋아서 따라 다니며 귀후벼 달라고 했다가
얼굴 맛사지도 해달라고 하고 송송 솟아나는 흰머리
뽑아달라고 염색해달라 주문도많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으며 다해주는 딸이 그땐 밤마다
왜 그리도 울었을까요?
당연히 둘째를 가진후엔 밤엔 잘자고 낮엔 잠와도 참고 놀아서
그 고생을 두번 다시는 하지않았습니다.
둘째를 키울땐 딸이 얼마나 잘도와 주었는지 딸덕을
단단히 보았답니다.
아마도 그아름답던 날들속에서 생긴아이라 그런지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남편은 딸을 보며 우리가 서로를 처음 본 날의 나를 다시 날마다
만나는거 같다고 좋아합니다.
어느새 세월은 그리도 많이 흘러간 건지 지금의 나는 그 추억속의
그녀라고 말하지만 그런날의 나를 잊은지 오랩니다.
그토록 힘들게 한거 잊어달라고 복사꽃처럼 이렇게 곱게
피어나나 봅니다.
그래도 딸보면 그날들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