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살을 먹도록 올해 첨으로 떡국을 못먹었다.
울 막내도련님이 7년의 투병생활 끝에 생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떡국 못먹은것은 하나도 억울할 것이 없다.
21살의 젊디 젊은 나이에 루푸스라는 불치병을 얻어 고통만........
그당시 도련님은 사랑하는 아가씨가 있었다.
둘은 넘 다정했고, 부부나 다름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그러나 아가씨 형제들이 알게되어 둘은 헤어질수 밖에 없었다.
그후로도, 몇번의 만남과 전화통화가 있었단다.
난, 그아가씨가 울 막내동서려니 생각하며 대했는데.....
물론, 울시어머니나 난 이해한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테니까...
24일(구정) 그날 울 도련님 세상을 떠났다.
난 맘속으로 그아가씨가 한번 와주길 바랬었다.
울도련님,미남에다 성격까지 좋아서 한인기 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때(남녀공학)가보니 연예인을 방불케 할정도로
여학생들의 환호성은 대단했었다. 덩달아 나까지 우쭐했었는데....
수려한 외모에(키:186)착하기만한 삼촌이었는데....
죽을때 그사람의 살아생전의 덕을 알수있듯이 장례식날 참으로
많은 선후배, 친구들이 왔었다. 내가 놀랄정도로.....
젊은사람이라, 형제들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러 했는데, 어떻게
알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다. 그분들께 감사하다.
그담날, 우린 화장터로 향했다.
결혼한것도 아니고 자식도 없으니, 우린 그렇게 결정을 했다.
우린 거기서 많이도 울었다. 평소에 말없고, 잘 울지 않던
장남인 울실랑도 넘 서럽게 울었다. 관을 화장터로 집어넣는 순간
우린 이젠 진짜 마직막이구나 하는 마음과 두번
죽이는것 같은 죄스러움에 오열했다.
우리가 그러할진데, 울 시부모님의 심정은 어떨것인가.....
세상에 가장 못견딜것이 자식을 하늘나라로 보내는것이다.
우린 시어른들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7년의 병수발로
많이 강해지셨는지 생각처럼 쓰러지거나 하시진 않았었다.
아니....그동안 ?D임없이 이별연습을 하셨으리라..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재입원 할때마다 '이번이 마직막일려나'
하고 마음의 각오를 다지셨으리라.....
우린 이번에도 그렇게 쉽게 가시리라(본인에겐 고통이었겠지만)
생각지 않았다. 상태가 위독하다는데도 불구하구....
부모님들을 뵈면 차라리 삼촌께서 빨리 가셨으면하고 바랜적도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살기도 힘든데, 이렇게 저렇게 끌려다니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도련님의 죽음앞에 그런것들이 너무 미안하다.
진심으로 죽길 바란건 아니다.
이런 현실들이 싫었을뿐인데.....삼촌정말 미안해..
그래도 중환자실로 들어가기전 내가 조금이나마 정성들인 음식을
먹여 보낸거에 조금 위로를 받는다. 삼촌 우리 모두 이해하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울 어머니도 잠깐 어디간것 같다고 하신다.
울어머니 어떻하나....평생 멍에를 안고 사셔야 하는데....
"어머니 간자식 생각지 말고 남은 자식만 생각 하세요"
라고 했지만 그게 마음데로 되는 것인가...시시때때로 생각날것인데..
화장터에서 도련님 가는것을 보니, 파리목숨이나 사람목숨이나 거기서
거기인것 같다. 그렇게 허탈할수가 없다.
이렇게 간단하게 가는것인가.......
세상 살면서 선하게 살아야 겠다.
남 가슴에 못박는일 하지말고,
내가 조금 양보하고,
내가조금 이해하고,
내가 조금 손해보고,
내가 먼저 손내밀고,
내가 먼저 웃고,
암튼 열심 살아야겠다. 허송세월 안일하게 보내지 말고.....
울도련님 몫까지 열쉼히.....
울 도련님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으니 좋은세상으로 갔을것이다.
"도련님 이세상에서 못다한거 다음세상에서 건강하게 태어나
현세에서 못다한것 다 누리시길....부디 좋은 세상으로 훨훨 가소서"
.......못난 큰형수가 막내 도련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