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오는 사람
왕야루......현재 주인공
루어깡......야루의 애인
티엔리.....야루의 친구
왕후성.....야루의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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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안심해도 돼. 아기는 정상이야. 심장소리가 꽤 힘찬걸."
티엔리는 흥분된 어조로 야루의 가슴을 툭 치며 소리쳤다.
"요놈의 아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태아가 정상이란 말 진짜지?"
야루는 티엔리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하고
태아 상황만 궁금한듯 다그쳐 물었다.
"정말이라니까. 임신 5개월이야. 모든 게 정상이구."
"아, 정말 다행이야. 난 너무 놀랐었다구.
그런데 왜 갑자기뱃속에 동정이 전혀 없었지?"
"그건 네가 너무 긴장한 탓이지......"
그나저나 어떻게 된 일인지 빨리 내막을 실토하라구!"
야루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티엔리에게 감춘것이
후회스럽고 미안하기도하여 솔직히 고백하고 싶었다.
"응, 사실은 루어깡이 검거되기 전날 밤 구 사람 숙소에서......
그뒤 난 그 사람의 아이를 가졌고 집에서 나와 지금은
그 사람 숙소에서 묵고 있어. 그래서 너한테 말할 수 없었던 거야."
"너희 혼인신고는 한 거야?"
"아니,아직 못했어. 당에서 안해줘."
"하여튼 너 참 대단하다. 산부인과 의사인 나까지도 감쪽같이 몰라 봤으니."
티엔리는 야루의 손을 꼬옥 잡으며 원망과 걱정이 엇갈린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이 일, 루어깡도 알고 있니?"
"모를 거야.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루어깡은 이미 특별수사 대상자에 올라 있어.
그런 그에게 만일 알렸다가는 당장 지워 버리라고 야단칠 거야."
"그렇다면 앞으로 어쩔 셈이야? 처녀가 애를 낳으면
무슨 화를 입게 될지 생각은 해봤겠지?"
"이미 각오하고 있어. 물론 별별 생각을 다해 보았지.
아기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견딜 각오를 하고 있어."
"지금이 어떤 시절인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너뿐만 아니라 낳은 아기까지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한 거야?"
"잘 알고 있어. 루어깡 처럼 끌려가게 되겠지.
그 사람은 돌아오게 될지 아니면 영영 못 돌아오게 될지 정말 아무도 몰라.
나 역시 조사를 당해 어떤 곳으로 끌려가고 말 거야."
야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며
막막한 앞날을 변명이라도 하듯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난 내 아기를 꼭 낳고 말겠어.
난 잃어버린 게 너무도 많아. 학업, 이상, 사랑, 가정,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어.
이런 나에게 아기만은 있어야 돼.
이 아기를 절대로 잃을 수는 없단 말이야......"
야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가 노크하며 환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티엔리는 환자를 잠깐 기다리게 하고는 야루에게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그래, 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그렇지만 지금 네 입장에서 애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니?.....
.알았어. 이따 저녁 때 우리 집으로 일단 와봐.
남편이 오늘 숙직이라 집에 없거든.
그때 우리 둘이서 천천히 이야기 하자."
"괜찮아, 그럴 게 아니라 네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좋겠어."
야루는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퇴근 후 요 앞 정거장에서 기다릴게."
저녁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에 두 사람은 루어깡의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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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어깡의 숙소는 말이 집이지 임시숙소로 지어 놓은 판잣집이나 다름없었다.
공장 뒷편에 바짝 붙여 지어놓은데다 바로 앞에는 철도길이었다.
비좁은 통로에는 자전거며 연탄아궁이며 쓰레기통과 같은
온갖 잡동사니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티엔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뭔가 발목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루어깡의 방도 들어오는 골목 못지 않게 비좁고 지저분했다.
침대와 의자 하나를 빼놓고는 이렇다 할 가구 한점 없었고
그밖의 물건들은 모두 방바닥에 널려 있었다.
야루는 침대 아래 널려 있는 잡동사니를 옆으로 치우고는
티엔리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티엔리는 침대에 풀썩 주저 앉고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야루를 바라보았다.
"이런 너저분한 곳에서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루어깡도 여기 살았었고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는데 나라고 못살게 없잖아?"
"내 말은 아무리 봐도 의사집 같지 않다는 것이지."
"지금 내가 무슨 놈의 의사니? 빨래 아줌마일 뿐이지."
"그런 소린하지마. 언젠가는 외과전문의가 될 텐데 뭐.
너같이 우수한 인력이 언제까지고 이렇게 썩어 지낼 것 같애?
난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아.
지금 당장은 빨래나 한다고 치고 그나저나 이 집구석에서
마냥 뒹굴면서 이대로 내버려둘 거야?"
"그만 둬! 귀찮기만 해. 정리하고 싶은 마음의 여유도 없고,
먼 훗날의 일은 생각조차 안해 봤어."
야루는 힘없이 웃으며 계속 말했다.
"뭐 어때? 나의 영혼은 오히려 이런 지저분한 곳에서 진정 순화될지도 몰라."
고통스런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으려고 애쓰는 야루를
티엔리는 아픈 가슴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 없이 앉아 있던 티엔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심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뱃속의 아기를 지워 버리자고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진정한 친구라면 이런 때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해서 후회 없이
감정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다.
티엔리도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야루의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티엔리가 우물쭈물하며 갈등이 생긴 시간은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이란 어떤 때는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가 보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말할 기회를 놓치고는
원래 자신의 생각조차도 바뀌어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때 티엔리는 기회를 잡아 위험스럽지만 인공유산을 강력하게 권하지 못했고
그 뒤 다시 말할 기회는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야루 뱃속에 있는 아기 때문에 빚어진 야루와 루어깡간의
비극을 생각하면 티엔리 자신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자책감을 면치 못했다.
그 후 사건이 터진 뒤 티엔리는 보상심리에서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루어깡과 야루의 애정비극을 막아보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티엔리, 빨리 이리 와봐."
야루는 침대 밑에서 큼지막한 가방 하나를 끄집어 냈다.
그 속에는 곱게 바느질한 이불과 베개 그리고 유아복 등이 가득 차 있었다.
"세상에, 바느질 솜씨 좀 봐. 정말 기가 막히네."
티엔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유아용품을 하나하나 펼쳐보며 찬탄을 연발했다.
"이건 예술품인데 그래. 정말 애 많이 썼겠구나."
"그렇지도 않았어. 수술하는 거보다 훨씬 쉬웠지."
"아이구, 말하는 것 좀 보라지."
갑자기 남색포대기 가장자리에 홍색실로 수놓은 두 글자-L.D-가
티엔리의 눈에 확 띄었다.
그녀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야루에게 물었다.
"이게 뭐라고 쓴거야? L.D,영어 약자 같은데 무슨 뜻이지?"
"내가 지은 아기 이름의 첫글자야.
아기 이름이 루어딴(羅丹)이라서 영어로L.D라고 표시한 거지."
화제가 아기한테로 가자 갑자기 야루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아기 이름이 어때?"
"루어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은데......"
"왜 있잖아? 불란서 조각가!"
"아하,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그 유명한 조각가?"
티엔리는 생각 났다는 듯이 소리쳤다.
"꽤나 낭만적으로 노시는군."
"이 아기는 루어깡과 5년에 걸친 사랑의 결실이자 현재 나의 유일한 희망이야......"
. . . . . . . . . . .
출판사...지리산
제목...남색 포대기
원작자...정완룽. 리샤오밍
옮긴이...박하정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토마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