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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銑소설--동숭동 그 女子---▲4회 ▲5회...끝까지


BY 토마토 2001-03-20

p31


< 25세의 童貞>



그런데 그의 하숙방을 드나들다가 나는 매우 흥미있는 사건 하나를 목격하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 사건이 매우 사소한 일 같았지만, 나는 그 사건을 통해서 그의 진면목을 차츰 알기 시작했고 그의 고립의 역사가 매우 오랜 세월 동안이었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하숙방에 자주 드나들며 보니, 그는 독방을 사용할 처지가 아닌데도 거의 독방을 쓰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의 방에 이사 오는 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웬일인지 이사 와서는 얼마 안 있다가 이사 가버리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는 독방을 사용하는 것처럼 된 것이다.


하숙생이란 원래 후조와 같아서 마음에 안 맞으면 당장 그날 밤에라도 짐을 싸들고 떠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나는 그 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어떤 날 보니까 그 원인은 김덕만에게 있었다.


이것은 내가 오후 6교시에 시작되는 강의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학교 식당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잠깐 쉬려고 그의 하숙집에 들렀을 때 본 일이다. 그날은 마침 그의 방에 그의 동숙자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내가 방에 들어가 얼마 안 있다가 그들의 점심밥상이 들어왔는데 나는 점심을 했기 때문에 방구석에서 학교신문을 읽고 있었고, 그들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식사를 시작하고 5분도 채 안됐을 때 "어허!"하는 김덕만의 짜증스런 목소리가 우람스럽게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즉시 신문을 놓고 그들을 보았는데 김덕만은 동숙자를 노려보고 있었고, 그의 동숙자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김덕만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영문을 몰라 가만히 그들의 모양을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김덕만이 혀를 한 번 차고 나서 그의 동숙자에게 한 말은 이러하다 "형씨, 집이 얼마나 부잔교? 상 위에 떨어뜨린 밥알을 왜 안 주워 먹는기요? 오늘 아침에도 국물에 밥을 말아 놓고 먹다 남겼지요? 형씬, 곡식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모르는기요? 형씨 같은 사람들 때문에 쌀값이 올라 없는 사람 밥 굶는단 말이오! 그리고 형씨가 지금 밥상 앞에 앉아있는 자세는 도대체 그게 뭐요? 바르게 앉아 먹을 수 없소?"


김덕만은 준엄한 어조로 그러한 말을 두어 번 되풀이 하고서 그의 동숙자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격으로 어리둥절해 있는 것은 아랑곳없이 자기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김덕만의 태도에 나도 어리둥절해져 아무 말 않고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까 김덕만의 동숙자는 밥이 먹기 싫어 밥투정하는 애처럼 상 앞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고, 김덕만은 똑바른 자세로 정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동숙자는 숟가락을 든 채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나는 그 광경을 계속 보고 있기가 민망해서 잠시 후에 강의시간을 핑계대고 곧 그방에서 나와 버렸다.


그러나 방에서 나올 때 나는 다시 한번 그들을 흘끗 보았는데 김덕만은 체격이 커서 마치 성난 곰 같았고, 그의 동숙자는 토끼만했다. 그러니 싸움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토끼가 성난 곰에게 어떻게 대들 수 있느냐?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뒤 3일 후엔가 다시 김덕만의 방에 가보았더니 그의 동숙자는 이사가고 없었다. 이 사소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숙생들의 생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숙생들이란 대개 친한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 하숙하는 경우가 많지만, 홀로 하숙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친구들끼리의 일이니까 상관할 바 없지만, 홀로 떠도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별별 일이 다 생긴다. 생판 모르는 남남끼리 한방을 같이 쓰다보면 그 인연으로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싸움도 자주 일어나고, 신경전도 벌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말하자면, 홀로 떠도는 하숙생들은 자기 동숙자와 마음이 안 맞으면 자기가 보따리를 싸든지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떠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어서 싸움도 일어나고 신경전도 벌어지는 것이다.


내 친구 하나는 자기 동숙자와 싸움을 하지 않았지만 신경전을 꽤 오래 벌인 일이 있다. 내 친구는 복덕방의 소개로 선참자가 한 명 있는 하숙을 정했는데, 그 선참자는 첫 날부터 내 친구에게 도전한 모양이었다.


그 선참자는 내 친구와 서로 자기 소개를 한 직후부터 뚱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밥상이 들어오자 난데없이 손거울을 꺼내더니 밥상 앞에 앉아 족집게로 자기의 턱과 코 밑에 난 수염을 서너 개 뽑고나서 밥을 먹더라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그것을 처음 목격했을 때는 이놈은 독종이구나, 하고만 생각했는데, 그 선참자는 그 뒤로도 밥상이 들어오기만 하면 밥상 앞에 앉아 꼭 손거울을 보며 족집게로 수염을 뽑고 난 뒤에야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그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독종이 그 지랄하는 것은 내가 마음에 안든다는 표시지? 개 같은 새끼! 밥상만 들어오면 오만상을 핵지고 밥상 앞에서 족집게로 털을 뽑아대니 내가 밥 먹고 싶은 생각이 나것냐? 나보고 밥 먹지 말라는 말 아니여? 하여튼 재수가 없을랑께 별 좆같은 새끼를 만나 가지고 내가 요새 밥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밥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독종은 너보고 나가 달라고 데모하고 있는 것이다. 너도 밥상 앞에서 코를 풀든지 가래를 뱉어라. 니가 쫓겨날 수 있냐. 그 놈을 니가 쫓아내야지."


내 말을 듣고 내 친구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또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말씸이야. 그 새끼가 자기를 소개할 때 자기는 당수 3단이라고 했단 말이야. 주먹을 보았더니 운동을 분명히 한 놈이더라. 그러니 시비가 벌어지면 내가 곤란하단 말이야. 그 새끼 쫓아낼 묘안이 없냐?"


일이 그렇게 되면 결론이야 뻔한 것이다. 나는 내 친구에게 그 독종을 쫓아 낼 수 없으면 네가 보따리를 싸야 할 게 아니냐고 말했는데 얼마 후에 만나보니 내 친구는 하숙방을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


내가 김덕만의 하숙집에서 김덕만의 태도를 목격하고 학교로 가는 길에서 생각햇던 것은 내 친구의 그 이야기였다. 김덕만이가 자기 동숙자를 그런 식으로 쫓아내고 적은 돈으로 독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김덕만도 그 독종처럼 비열한 놈인가? 하는 의문이 내 머리 속에서 한동안 맴돌았었다.


물론 그때까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김덕만은 그런 잔재주를 피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좌우지간 나는 김덕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김덕만이 자기 동숙자에게 내뱉는 말들은 지극히 옳은 말들이었지만, 반찬이 없어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자니 자세가 비뚤어질 것은 당연지사고, 또한 남이야 국물에 말았던 밥을 남기건 말건 무슨 참견이냐는 게 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덕만의 말이 아무리 옳다해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표현하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 3일 후에 김덕만 하숙방에 갔다가 그 동숙자가 이사가버린 것을 알고서 나는 넌지시 김덕만의 생각을 떠보았다. "아니, 이 방 친구 이사갔냐? 하여튼 적은 돈으로 독방 쓰는 비결도 가지가지구나." 그러자 김덕만은 정색을 하고서, 나의 얼굴을 보더니 내 말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한술 더 떴다.


"무슨 말이긴? 그런 말 듣고 이사 안 갈 놈이 어디 잇겠냐? 체격이라도 비슷하면 싸움이라도 하겠지만 그 친군 토끼만하고 넌 황소만하니 그 친구가 눈물을 머금고 보따리를 쌀 수 밖에....."


그리고 나는 김덕만의 행위가 내 눈에 고의적인 처사로 보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김덕만은 당장에 펄펄 뛰며 내 말을 부인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곡식의 소중함에 대한 그의 신념을 길게 늘어놓았다.


곡식에 대한 그의 신념을 요약하자면, 곡식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어서 한 알의 곡식이라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논리였지만 그는 그것을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크리스천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신념을 말할 때 곡식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나는 그의 표정과 태도에서 그가 잔재주를 피운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문제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 더 했다.


"물론, 곡식이야 소중한 것이지. 하지만 어느 놈이 네 신념을 알아 주겠냐? 누구에게나 물어보아라. 너의 태도는 제가 독방을 쓰려고 고의적으로 시비 걸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자 그는 시무룩해지더니 한참만에 자기는 자기 신념대로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우쨌든, 나는 내 신념대로 사는기라. 곡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놈들은 가치 없는 놈들이니까 그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해도 상관 없다. 그놈들도 굶어 보면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테지...."


그리고 그는 시무룩한 표정을 풀지 않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김덕만은 자기 동숙자들과 그와 유사한 일들로 자주 다투었음이 분명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하숙집 주인 내외로 부터 총애를 받고 있었다. 야간학교 수위여서 낮에는 집에 있는 경우가 많은 그 집 남자주인과 서른다섯 살쯤 되는 그집 여주인이 김덕만은 물론이고 그의 친구인 나에게까지 호감을 보였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아 김덕만에게 "여자 주인과 수상한 관계가 아니냐?"고 놀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김덕만의 근면성 때문이었다.


하숙집 여주인이 어느 날 나에게 김덕만을 칭찬한 일이 있었는데, 그 칭찬에 의하면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마당과 집앞 골목을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문이나 그 외의 허술한 곳이 보이면 자기집처럼 수리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숙집 주인들이 보기에는 탄복할 만큼 착한 일이어서 특별대우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더욱이 하숙집 주인과 하숙생들의 관게가 하숙비에 의해서만이 비정하게 연결되어 있는 학교 부근의 하숙집 풍토에서는 김덕만의 그런 근면성은 훨씬 돋보인 성질이다.


어쨌든, 그 사건은 내가 김덕만의 내면세계를 알기 시작한 출발점이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김덕만을 몇 가지 단편적인 인상들에 의해서만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입생 시절에 그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내가 그에 대해서 알았던 것은 그가 몹시 가난하다는 것과 그렇지만 또한 패기에 넘쳐 있었고, 활달하고 순진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가난은여전했고, 외관상으로는 활달성이 없어진 대신 외롭게 보인다는 정도를 나는 알고 있었을 뿐이다.


한데, 그 사건을 통해서 내가 추측한 바로는 그의 가난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심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아마도 출생 이후줄곧 그 극심한 가난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지 않느냐 하는게 내 생각이었다.


누구나 밥이 소중한 것은 잘 알지만 사람 마음이란 원래 간사해서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밥의 고마움을 잊고 밥을 소홀히 대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가 남이 그것을 소홀히 대하는 것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낼 정도로 그 소중함을 깊이 깨닫고 있었던 것은 그의 가난의 깊이와 폭을 말해 주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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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로만 곡식의 소중함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이후로도 그가 밥상을 대할 때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숙집의 형편없이 메마른 반찬과 함께 나온 밥이라도 그는 진지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까 그의 신념은 오랜 체험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나는 그가 엄격한 가훈에 의해서 훈육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숙집 주인들로부터 총애를 받는 원인인 그??근면성은 그의 몸에 완전히 배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근면성은 하숙집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그는 언제나 흑판을 깨끗이 닦아 놓았고, 강의실의 책상이 흐트러져 있으면 바르게 놓는 것도 언제나 그가 했다. 그러니까 입학 시험장에서 잘 피지 않는 난로를 잘 피도록 손질한 것도 그 근면성의 발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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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것들을 참작하면, 그는 엄격한 근검.절약의 가풍속에서 훈육 되었다고 단정할 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집안 식구들은 개미처럼 열심히, 그리고 분주하게 그들의 식생활 해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임이 분명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먹을 것은 언제나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김덕만은 한 알의 밥알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용돈으로 단돈 10원도 지출하지 않는 그의 대학생활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의 중요한 것 또 하나는 그 사건에서 보이듯이 그는 대인관계가 극도로 서투르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의 고립의 역사를 말해준다.


그는 그의 궁핍 때문에 대학생 사회에서 고립되었듯이 성장과정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외계와 고립되어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가 고립된 데는 그의 자존심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어쨌든 그는 친구 하나 없었다.


어쩌면 그는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에게는 가난한 그의 부모 형제밖에 없었고, 친척도 없는 눈치였다. 그는 고립감 속에서 자기의 소박한 인생관의 척도에 의한 꿈들을 키우며 자존의 성만 높이 쌓아 올렸으리라. 그래서 그는 대인관계의 미묘함을 몰랐고, 그 미묘함을 몰랐기 때문에 행동이 투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차츰 접촉해 보니까 그는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했다.


그리고 세상물정도 몰랐다.세상사, 정치니 사회니 또는 사람의 일에 대해서 그것의 깊은 내막을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아는 것이라곤, 그의 소박한 인생관의 척도에 의한 것들, 예컨데 곡식은 소중한 것이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낭비는 죄악이라는 것과 같은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신입생 시절이후로 내가 그에 대해서 막연히 가졌던 기대와는 매우 상반된 성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말이지 고생이 값지다는 것은 고생에 의해서 얻어지는 정신적 폭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가 나보다 훨씬 많은 견문과 인생 경륜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그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착한 소년? 순진묵하기만 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입생 시절에 그가 나에게 강렬하게 심어 놓았던 인상들은 하나하나씩 지워졌고 나는 다시 그의 순진성에 감탄하면서 그와 친해졌다.


4년의 세월 속에서 그가 새 사람으로 변질됐는지, 아니면 내가 신입생 시절에 받았던 인상들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가 세상물정에 어둡다는 것을 알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이 자식은 굶주림?l 공포에 지배되어 아무 생각없이 개미처럼 일만 할 놈이다.' 그렇지만 또한 나는 그의 순진성이 좋았다. 내가 그의 순진무구성에 놀란 날 중에서도 가장 결정을 이룬 날은 그가 그때까지 동정(童貞)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날일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이미 25세, 더욱이 생명을 걸고 이국땅인 월남전쟁에 출정했던 그가 동정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놈들은 월남에서 뿐만 아니라 귀국 즉시 부산땅에서 부터 여자 줍기에 정신 없었다는 것을 나는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전투부대 요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회로 말하면 월남에서도 다른 놈들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그가 월남의 풍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는 그 문제를 꺼냈다. 좀 점잖지 못한 표현이지만, 그가 얼마나 순진한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때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길 수 밖에 없다. 남자끼리 앉으면 무슨 말을 못하랴, 그의 이야기 도중에 나는 불쑥 이렇게 물었었다."야, 시시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월남 여자들 이야기나 해봐라. 월남 여자들 맛은 어떻더냐?"


김덕만은 내 말을 듣고 잠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맛이라니? 무슨 맛?" 하고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그가 능청을 떠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의 의미를 정말로 모르는 것 같기도 해서,"능청 떨지마, 임마! 나에게까지 숨길래? 월남 여자들과 한번도 안했단 말이냐?" 하고 쏘아댔는데, 그때서야 그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빙긋이 한번 웃고는, 자기는 월남 여자는 고사하고 한국 여자하고도 한번도 자본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눈을 크게 뜨고 "난 숫총각이다. 진짜로 숫총각인기라." 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녀석의 말이 거짓말 같기도 하고 정말 같기도해서 그의 표정을 유심히 보기만 했는데, 그는 내가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나에게 "보여 줄까?" 하고서, 갑자기 일어서더니 바지 지퍼를 내리고 그것을 꺼낼 채비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질겁을 하고 그를 말리지 않을 수 없었고, 곧 배꼽을 움켜 쥐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보여 주긴 뭘 보여 준단 말이냐. 어찌 그게 보아서 알 수 있는 성질이냐!


김덕만은 그렇게 순진했다. 그날 내가 안 바로는 그는 정말 동정이었다. 우선 그는 연애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고, 여자를 사본 경험도 없었다. 돈을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절제력이 초인적으로 투철했기 때문에 여자를 안 샀는지, 아니면 소박한 신념 때문에 여자를 안 샀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우리들의 동정이야 이미 저 호기만발했던 신입생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종삼에 단체로 헌납해 버렸지만, 그는 그것을 신주 모시듯 지키고 있었다. 그가 동정을 지킨 경위가 이해 안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를 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에게 "야, 너 고자 아니냐?"하고 실실 놀려댔다. 그러나 그는 싱글싱글 웃기만 했지 아무 대꾸도 안했다. 그래서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 "넌, 핸드 플레이라는 것도 모르는 놈아니냐?" 하고 놀려 댔는데, 그 말까지 나오자 그는 훗훗 하고 웃으며 나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벌개졌다.


그는 성(性)에 대해서도 순수한 것을 지향하는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내가 보기에는 촌스런 것이었지만, 월남 근무 때 펜팔로 사귄 여자와 편지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간호대학 출신으로 미국에서 취업하고 있었고, 김덕만이 귀국했을 때는 그 여자는 이미 미국으로 건너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 한번도 상면한 일이 없이 편지로만 연애를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농담을 마음대로 해댈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진 것은 그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그때쯤부터 나는 그를 '떡만이'라고 불렀다. 김덕만이라는 이름을 경상도식으로 발음하면 '덕'자가 '떡'자로 발음되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를 일부러 '떡'에 힘을 주어 "떡만아"하고 부르다가 가끔 "떡만두!"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존심이 강한 그는 내가 그렇게 불러도 언제나 싱글벙글 웃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그는 나에게는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여름방학이 되었고, 나는 고향에 내려갔다. 그러나 김덕만은 여름방학 내내 그의 집이 있는 부산에 가지 않았다.


그의 말로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겠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그 계획을 말했을 때 나는 한번쯤 부산에 갔다오지 그러느냐고 은근히 권해 보았는데,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그는 방학 동안 내내 낮에는 도서관에서 그리고 밤에는 그 '외로운 비둘기 집'에서 외롭게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개학이 되어 상경해 보니 김덕만은 하숙집을 동숭동의 그 '외로운 비둘기 집'에서 명륜동 쪽으로 옮겨 놓고 있었다.


하숙집을 옮긴 이유는 '하숙집 주인들과 가족처럼 친해지니까 대우가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하숙집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김덕만 말에 의하면 여름방학 동안 어떤 때는 여주인이 외출하고 없어서 그가 부엌에 들어가 점심을 차려먹은 일이 자주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숙생들은 모두 고향집으로 떠나고 없었고, 가족 같은 김덕만 혼자 남았으니 여주인이 소홀하게 대했던 모양이었다. 김덕만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이사 이유로 충분한 것이었다.


명륜시장 골목에 있는 그 하숙집은 등급으로 따지면 학교 부근에서는 고급에 속하는 집이었다. 일식 이층 건물인 그 집은 방들도 깨끗할 뿐만 아니라 전화도 있었고, 식탁 메뉴도 다채로웠다. 그런 장점 때문에 그 집은 하숙생들의 이동이 적었다. 일반인을 포함해서 10여명이 넘는 하숙생들 때부분이 2,3년씩 그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은 말하자면 조건과 대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해 10월 말쯤부터 나도 그 집에서 하숙했다.


나는 그 집에서 2학기의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김덕만과 같은 방을 사용한 것이다. 기간으로 따지면 한달 보름 정도에 지나지 않는 기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도 그를 못잊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 시기 이후에 기막히고도 충격적인 장면을 수없이 연출했다.


하나, 그것들은 그 시기의 김덕만을 모르면 한낱 시정의 스캔들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입학 시험장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지막 대면까지 여러 번 탐독한 소설보다 더 훤히 기억하고, 또한 안타까워하는 것은 잠시나마 그와 한방을 썼고, 그리고 그 시기에 그가 겪는 심리적 갈등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아름다운 풋사랑


이야기의 순서를 위해서 나는 잠시 김덕만의 성에 대한 태도를 잠시 언급해야 될 것 같다. 김덕만이 25세가 되도록 동정이었다고 해서 성에 무관심하다든지, 또는 성 결벽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내 느낌으로 판단한 것이다. 성에 무관심하다든지, 또는 성 결벽증에 걸려 있는 사람들은 음담패설이나 또는 성에 관한 건전한 얘기까지도 싫어한다.


나는 성 결벽증에 걸려있는 녀석을 하나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성 행위 자체를 매우 불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성 욕구가 왕성한 20대에 성 얘기 자체를 싫어한다든지 성행위를 불결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상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이 녀석은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그 녀석은 신입생 시절에 나와 같은 하숙집에서 하숙했던 재수생이었다. 재수생 입장이었기 때문에 공부에만 전념해야할 처지였지만, 원래 성격이 지극히 내성적이고 말도 별로 없어서 누구와 어울리려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낮에는 주로 학관에 다녔는데, 학관이 쉬는 날에는 혼자 고궁을 돌아다니는게 취미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는 그 녀석이 비원에 혼자 놀러 갔다 와서 이런 얘기를 했다. "오늘 재수가 더럽게 없는 날 입니다. 비원 숲속에서 대낮에 그것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지난번에는 우이동 숲속에 갔다가 그것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요 오늘은 비원에서 보았어요." 그녀석은 마치 똥이라도 밟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얘기를 듣고 그 녀석이 목격한 장면에 대해서 자세하게 묻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다.


성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강렬한 시기에 남자와 여자가 대낮에 숲속에서 성교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서 흥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흥미는 커녕 그 장면을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재수 없는 일이라는 표정을 짓고 잇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만일 조금이라도 친했던 녀석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졸라서라도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었겠지만 그 녀석과는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체면상 졸라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호기심이 갈렬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넌지시 이렇게 말을 꺼냈다."이 형은 어떻게 그런 장면을 자주 보게 됩니까? 비원 어느 쪽에서 보았고?" 그러나 녀석은 띄엄띄엄 몇 마디 했다.


"난 보려고 해서 본 게 아닙니다. 머리 좀 식히려고 비원 숲속에 산책 나갔다가 보게 된 것입니다.. 숲속에 들어가다 보니까 뭐가 희끗희끗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 무심코 봤더니 남자 새끼 엉덩이가 들썩들썩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그래서 자세하게 보았더니 남자는 바지를 반쯤 벗고서 여자 위를 올라타고 있는 중이었어요. 여자는 다리를 쩍 벌리고 두 팔로 남자를 꽉 껴안고 있었어요. 대낮에 말이에요.


지난번에는 우이동 숲속에 들어갔다가 나무에 치마가 걸려 있어서 그 밑을 보았더니 여자는 엎드려 엉덩이를 쳐들고 있었고, 남자는 바지를 반쯤 벗고 마치 개처럼 그 엉덩이를 타고 있었어요. 머리 좀 식히려고 숲속에 들어가면 재수없게 그런 장면만 보이니 이젠 비원에도 안 갈 참입니다."


녀석은 이렇게 말을 하고서 눈썹까지 찌푸렸다. 그리고 그 녀석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표정이어다. 그래서 나는 이날 그 녀석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 뒤에 내가 농담삼아 녀석에게 비원에는 정말 안 가느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고개까지 흔들며 "이젠 안 갑니다. 비원은 더러워요"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하여튼 그 녀석은 하숙생끼리 모여 음담패설에 열을 올릴 때면 혼자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버릴 정도로 성 결벽증이 심했다. 그러나 김덕만은 그 녀석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어떤 날, 나는 김덕만에게 내가 어떤 여자에게 유혹당했던 일을 털어 놓은 일이 있었는데, 이때 그는 분명히 넋이 빠져나갈 듯이 이야기에 취해 있었다. 내가 어떤 여자에게 유혹 당했던 이야기는 좀 길지만, 김덕만의 성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같다.


나는 군데 입대하기 직전에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한 달 동안 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서울에 살고 있는 이모뻘 되는 친척의 권유로 하게 된 아르바이트였다. 이모로부터 집에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 갔더니 이모는 이렇게 말했었다.


"얘야, 내 친구 딸이 불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시간을 낼 수 없겠니? 내 친구 집은 온통 여자뿐이라서 무엇보다도 품행이 단정한 학생을 구하고 이는데 쉽게 구할 수 없는 모양이다.


어디 얼굴만 보고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세상이니? 나하고는 각별한 사이니까 네가 수고 좀 해다오. 사례는 다른 집보다 더 잘 할거다. 남편이 돈 잘 벌고 있으니까. 어때? 용돈 번다고 생각하고 한번 해볼 생각 없니?" 이런 조간이라면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대뜸 좋다고 대답했고, 이모는 즉시 그 집에 연락해 나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집은 신당동 주택가에 있었는데, 집 규모로 보아서도 상당한 부자였다.


이층 양옥집에 정원도 꽤 넓었고, 정원에는 귀한 화초들이 잔뜩 심어져 있었다. 집 주인은 사업을 한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나는 아르바이트 기간 동안 한번도 만난 일이 없었다.


내 친척 말마따나 이 집은 여자들뿐이었다. 내 친척의 친구인 안주인과 딸 셋, 그리고 여주인의 동생인 듯한 여자도 있었다. 여기에 가정부까지 여자였으므로 그 집은 남편만 빼놓고는 모두 여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 여자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빼어났다.


여주인은 40세 전후로 매우 교양있고 우아했으며 고3짜리 딸을 비롯하여 고.1 중 2짜리도 미인의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여주인의 동생인 듯한 여자가 단연 빼어났다.


서른살 정도로 보인 그 여자는 내 느낌으로 결혼한 여자 같았는데, 마치 활짝 핀 장미처럼 화사했다. 나는 고.1짜리에게 하루에 두 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불어를 지도하기로 하고 그 집에 출입했는데, 그 집 여자들은 모두 나를 대단히 환영했다.


내가 그 집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면 가정부가 달려와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인사했고, 현관으로 들어서면 부인과 딸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극진히 맞이했다.


주인의 여동생은 대개 응접실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들어서면 일어서서 정감어린 미소로 나의 시선을 받았다. 어쨌든 이 아르바이트는 매우 즐거웠다.


호화찬란한 커다란 양옥 집에서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그 집 딸애에게 두 시간 동안 불어를 지도하는 시간은 달콤하기 까지했다. 특히 나는 첫날부터 여주인 동생의 은근한 미소에 퍽 매료되어 있었다.


그 여자는 익을 대로 익은 복숭아 처럼 싱싱했고 풍만했는데, 웃을 때는 눈에 정감이 가득 차 있어서 그 미소를 바라보면 마음이 산란해질 정도였다.


내가 출입한 첫주에는 가정부가 차를 끓여 왔었으나 다음 주부터는 그 여자가 차를 끓여 왔다.


그 여자는 차를 가지고 왔을 때 내가 쳐다보면 얼굴 가득히 정감어린 미소를 띠며 "차 마시고 하세요"라고 싱긋 웃었다. 그리고 찻잔을 내 앞에 놓고는 다시 그 정감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웬지 부끄러워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쩔쩔맸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 여자가 발산하는 성적 매력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여자는 확실히 싱싱하고 발랄했으며 매우 육감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여자로서는 알맞은 키에 가슴도 풍만했고, 가늘한 허리 아래로 터질 듯이 부풀어 있는 엉덩이 곡선도 내 눈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그 여자는 언제나 엷은 홈웨어 차림이었으므로 육체의 곡선이 뚜렷하게 드러났고, 매끄럽고 하얀 피부가 그 육체의 곡선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여자 때문에도 아르바이트가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그 집에 가기로 되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유쾌했고, 시간이 되어 하숙집에서 나올 때는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내가 그 여자를 사모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도 나보다 연상이었고, 자세히는 알 수 없었으나 결혼한 여자임에 분명했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는 이미 확실히 선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확실한 선이라기보다는 내 손이 미칠 수 없는 상태라는 인식 때문에 호감이 연정으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여자와의 일은 의외로 빨리 벌어졌다.


아마 내가 그 집에 출입한 지 4주째가 되던 날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그 집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눌렀더니 가정부 대신 여주인 동생되는 그 여자가 대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 여자가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좀 의외여서 좀 멈칫거렸더니 여자는 다정하게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고서 생긋 웃었다.


그래서 나도 인사를 한 뒤 대문 안으로 들어섰더니 여자는 내문을 걸고 "들어오세요"라고 말하고서 내 앞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여자의 풍만한 엉덩이 곡선이 내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더욱이 아름다운 부인의 터질 듯한 엉덩이 곡선이 엷은 홈웨어 속에서 율동적으로 흔들거리고 있었으니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부인에게 들킬까봐 근심스럽게 그 엉덩이 곡선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응접실에 도착해 보니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응접실에서 나와 마주 앉아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사정이 생겼어요. 오늘 아침 애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거 모두 큰집에 갔어요.


선생님께 연락할 길이 없어서 연락 못했어요. 헛걸음하시게 해서 죄송해요." 여자는 말을 마치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앉음새를 고쳐 다리를 포개고 앉더니 "오늘은 종일 집을 지켰더니 너무 심심해요. 두 시간 동안 저하고 얘기하다가 가 주세요. 오후부터 내내 선생님 오시기를 기다렸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서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 정감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여자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두 시간은 할 일이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했는데, 여자는 이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여자는 매우 여유가 있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선 커피를 드릴까, 술도 있으니까 술도 드시고"라고 말하고서 일어서더니 부엌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나는 집안에 여자와 단 둘이만 있다는 것이 거북스러웠으나 잠자코 앉아 있었다.


여자는 잠시 후 과일과 커피를 끓여 왔다. 이때 얼핏 보니 여자는 막 목욕을 끝낸 직후인 듯 더욱 싱싱했고, 또 한편으로는 요염하게 보였다. 우리는 다정하게 커피를 마셨다. 여자는 시종 미소를 짓고 있었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화술도 능란했다.


내가 커피를 마신 뒤 돌아가셨다는 그 집 할아버지 얘기를 꺼냈더니 이렇게 응수했다. "아이, 그 얘긴 꺼내지 마세요. 오늘 이 큰 집에서 혼자 자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서워요. 우리 다른 얘기해요. 술 드릴까요?" 나는 거북해 있던 터라 쾌히 승낙했다.


술병은 응접실 안쪽 장식장 위에 잔뜩 놓여 있었다. 여자는 일어서서 장식장 쪽으로 걸어갔는데, 이때 여자의 허리 아랫쪽 풍만한 곡선이 또 내 시선을 자극했다.


여자는 장식장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술병 하나를 골라내 보더니 그걸 들고서 티 테이블 위에 놓고 다시 잔을 가지러 부엌쪽으로 걸어갔다.


이때도 내 시선은 그 여자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관능이 슬그머니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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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여기 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