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저거 외삼촌이 우리 복순이 착하고 이뿌다고 델꼬가서 공부도
시켜주고 시집까지 보내준다고 사정사정 해서 오는 공일날 서울로 보내기
로 했다. 앞마실에 인물 빤질한 말님이는 서울에 있는 무역회사에 취직했
다 카더라, 밤나무집 귀자는 큰 회사 시험쳐서 경리로 간다 카더라"
60년대 후반에 시작된 탈 농촌, 우리 누나 세대들의 출가문화의 일면인데
훗날 소문을 들어보면 외삼촌 집에 간 복순이는 식모, 경리로 취직되었다던
귀자는 봉제공장 여공으로, 무역회사의 말님이는 양깔보가 되어있다.
따져보면 모두 근거 없는 얘긴 아니다.
당시엔 식모도 하나의 직업이었고 대개 '하도 착해서 공부시켜 시집보낸다'
는 전제가 따르며, 양깔보는 양놈상대로 달러 버니까 용역, 써비스에 해당.
일종의 무역일 수 있고, 특히 공장에선 마이크로 각종 안내방송을 하고 출
근첵크, 봉급봉투 나눠주는 경리가 선망의 대상이었으니.....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식모와 지극히 열악한 환경의 여공
자리는 중국, 네팔, 필리핀, 기타 동남아 등지의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지만 아직도 거시기 자리는 우리의 동생, 딸들이 지켜내고 있다.
사랑을 팔고 사며 써비스 직종이라 한 차원 높은(?) 분야라서 그런지 부가
가치가 높은 고소득 직종이라 그런지 잘 모르겠다.
컴퓨터 통신의 보급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원조교제를 비롯 여성들의 몸
장사를 두고 그 원인과 죄를 남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여론에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못한다. 즉 여성들의 쉽게 돈 벌겠다는 책임이 더 크다.
아무리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지만 제 발로, 그것도 몰래 빠져나가 썩은
사타구니 밑천으로 왜놈, 코쟁이 노리갯감으로 살아가는 계집들은 정말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좀 비약 시킨다면 왜놈의 털요강이 되고 싶어 환장
한 계집들로 인해 정신대 할머님들의 억울함이 왜곡되거나 핑계꺼리의
소지까지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끼리 어떻게 돈으로 거시기가 가능한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산다. 믿거나 말거나.....
씨잘떼기 없는 걱정이 많은......막/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