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야 하는데 가슴 속에 답답하게 담겨있는 질문들이 있어서 집중이 잘 안된다.
한국남자가 한국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생각 한편으로, 내가 눈감고 안보고 있다고 해도 문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 아니라 더 곪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 뜨고 정신 차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함부르크의 박사과정 유학생 (이하 아이디 "고래")이 쓴 독일여성들에 대한 분석문(?)이 나의 고민을 촉발했다. 그의 글을 안 읽은 분들도 많을테고, 관심없는 분들도 있을 터다, 그냥 복잡해진 나의 생각들을 정래해보고 싶어졌다.
고래님의 메일로 직접 보내지 않는 이유는 그의 글을 읽고 절절하게 조리있게 반박한 여성분들의 글을 대한 그의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며, 이런 식의 토론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볼만한 그릇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성들끼리 생각을 나눠보는게 낫겠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의 의견인즉슨, 독일여성들은 정치의식, 자의식이 분명하다, 공부도 열심히 잘한다, 그래서 대학진학, 사회진출이 활발하다, 성의식도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어서 결혼에, 남자에, 자식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힘도 좋고 몸매도 좋다. 그래도 너무 자의식 강하고 뻣뻣해서 매력없게 생각하는 남자들도 많다. 그러니 한국여성더러 어쩌라고? 그가 생각하는 한국여성은 정확히 독일여성의 반대형상이다.
그런데도 순종적 이미지와 탄력있는(!) 피부로 독일남자들의 인기 연애대상이어서 말배우기가 훨 수월하단다. 그런데 고래님 자신은 한국여자들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진보적 남성. 그런 그가 한국남자들에게 용기있게 독일여자를 정복해보라고 온갖 천박한 예문을 들어가며 자신있게 권하고 있는데...
너무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배배 꼬여 있어서 참 어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의 모든 주장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문제점은 일단 한국여성에 대한 그의 비인격적이고 우월적인 자세이다. 한국여성들의 사고와 행동이 모순적이고 비논리적인 경우도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 기본자세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극단적 대립을 요구한다. 과연 한국여성의 현실이 남성의 현실과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겠는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서서 돌멩이 툭툭 던지며 야, 일어나라구, 깨어나, 이 바부팅아! 해대거나 그저 뒷짐지고 서서 혀만 끌끌 찰 일인가?
한국여성의 현실은 꼭 그만큼 한국남성의 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언어로 같은 문화에서 비슷한 생각의 부모, 스승들로부터 비슷한 가르침 (봉건적인 윤리) 을 받으며 자랐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속에서 배운 것을 실습까지 하며 어른이 되었다. 어떻게 여자만 덜 떨어진 인격체로 자라난단 말인가, 태어날 때부터 여자는 구제불능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싶은건가, 아니 독일여성들은 아주 멋진 인간이 되었다고 보는 모양인데 그럼 한국여자만 깨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존재인가. 그러니까 한국여성들더러 어쩌라고. 혼자서들 제발 알아서 팔짝팔짝 깨어 일어나 인간노릇도 하고 남자 갑갑하게 좀 하지 말라고? 덜 떨어진 생각으로 남자를 교훈할 생각일랑 더더욱 말라고?
여성들의 자의식이 부족하거나 인간적 권리에 대한 주장이 결핍된 것을 모두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터다. 스스로 깨어있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기득권을 오래 누려온 남성들이 알아서 여건 만들어주고 격려해주길 기다려서도 안될거다, 그럴 일도 절대 없을테지만.
다만 내미는 손에는 맞받아 잡아주는 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왜 보지 못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고래님의 눈에 독일남성들의 장점이 보이지 않은 것은 그가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들을 비하하고 모욕하는게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여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서지 않고 모나지 않게 살기를 원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른 점 인정해야 하고, 남성이 우월하게 잘해낼 수 있는 부분까지 꼭 공평히 나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여성들이 가진 못 말리는 이중성, 자의식도 지키고 싶고 낭만도 맛보고 싶은, 그런 것도 애교로 여겨지는 정도의 사회는 되었으면 싶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쪼잔하고 구석구석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한국남성들을 싸잡아 매도했던 일은 없는지,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거꾸로 생각하게 된다. 진흙탕물 함께 뒤집어 쓰고서 상대방을 손가락질 하며 깔깔거리는 꼴이나 아닌지...
독일여성들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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