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고 오래된 책은 거의 재미가 없고 따분해서 저는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워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과 평화.>..같은 책...
톨스토이 괴테..
어쩌다 맘먹고 한번 읽어볼라치면 도저히 읽어낼 재간이 없었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과 에밀리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조금 읽어낼 수 있었지만
그런데 어쩐지 이 보부아르 전기인 "시몬드 보부아르"는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도서관에서 몇 번 흘깃거리고 봤는데 보봐리여사가 하도
유명해서 <너무 유명>하면 이상하게 질투도 나고 멀게도 느껴지고..
.<꼭 나의 복숭님처럼...ㅎㅎㅎㅎ 복숭님이 이글을 안보시겠져~~~~>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대지를 쓴 펄벅 여사만큼이나....>
질려있었어요. 아주 안 볼려고 했는데...
보봐리 여사가 염소별자리여서 저하고 조금은 맞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저는 외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도서관 열람실 서가를 들어가는 입구에 이 책이 놓여 있더라구요.
그래서 <에이 한번 가져가 볼까?>하고 뽑아 왔는데
정말 벽돌 1장의 무게처럼 좀 무겁더군요.
그런데 첫 도입부터 <어린이 명작만화>처럼 귀족계급의 생활이
쉽게 쓰여져 있어서...읽기에 수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리고 사르트르도 유명하긴 한데 저는 잘 몰랐어요.
여자인지 남자인지 조차도...
그랬는데 보봐리 여사랑 수 십 년 간 <50년 동안 이군요.뜨아~~>
동거를 했던 남자이구요
바람둥이로 많은 여자들을 편력했군요.
그리고 두 사람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관계였답니다.
보봐리는 너무 빨리 어른스러워진 여성이고
사르트르는 영원한 어린아이로 남아 있었다는군요.
그 두 사람의 스토리가 매우 상세하게 이어져 있어요.
그리고 제가 약간 알고있는 카뮈 이야기도 나오고 그래요.
카뮈가 사르트르랑 라이벌이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군요.
그런데 카뮈가 보봐리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군요.
다른 유명 예술인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을 참...어이없기도(?) 독파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 참 책 가운데 부분에 많은 사진들이 나와있어요.
보봐리 <여기서는 보부아르>는 여성스러우며 섬세하고
또 약간은 신경질적으로도 보이고...그래요. 차림은 머리에
터번을 두른 차림이 많고....미인에 가까운 (?) 외모라고 쳐 둡시다.
그런데 여성운동가라고 칭호가 붙어 있군요.
각설하고요......
저하고 지금 함께 읽어 보실까요?
음...
제가 얼마나 많이 타이핑을 할지 예측불허이고...
.아무튼 쓰는 데까지만 써볼게요..
★.<프랑수아즈>는 <시몬드 보부아르>의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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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바쁜 세상에 웬 책을 자꾸 옮겨 쓰느냐?
누가 이걸 읽겠느냐...하시는 분도 더러 계실테죠...
그런데 제 생각은 인터넷이 문자 매체이구요 문자라면 저는
문학의 모태라고 까지 생각하거든요..
글과 편지와 책...
제 머릿속에는 이런 걸로 가끔씩 가득차 있어서 이렇게 억지를 부리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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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프랑수아즈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었지만 스스로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가 아름답다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총명한 얼굴에 짙은 갈색 눈과 숱 많은 밤색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늘 어둡고 시무룩했다.
이제 스무살이 다된 그녀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는그녀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도 별로 없었고 젊은 남자와 사귈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좋은 짝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사업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뒤에야
갑자기 딸의 결혼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브라쇠르 집안과 보부아르 집안을 모두 알고있는 친구가
중매에 나선 결과, 조르주드 보부아르가
프랑수아즈 브라쇠르의 가장 유력한 신랑감으로 떠올랐다.
브라쇠르 집안에서는 조르주가 비록 재산은 그들보다 적지만
사회적 지위는 더 높고 장래도 유망하다고 생각했다.
두 집안의 어른들은 1906년 여름에 중립지대인 울가트 휴양지에서
맞선을 보기로 결정했다.
프랑수아즈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따라갔고,
조르주는 결혼할 나이가 된데다 프랑수아즈의 여러 조건---돈이 많고,
나이가 어린걸 보면 숫처녀인게 확실하고,
신앙심이 깊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맞선을 보았다.
이런 여자라면 현모양처로서 손색이 없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젊은 여자가 막대한 지참금을 갖고 온다는 점이었다.
맞선을 본지 몇 주일만에 조르주드 보부아르는 프랑수아즈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프랑수아즈는 결혼준비를 하면서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푸른 눈을 가진 약혼자에게 매혹되었고,
그들의 결혼에는 비록 금전 거래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두 사람은 사랑을 맺어졌다.
그들은 1906년 12월 21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몽파르나스가 103번지에 있는 크고 우아한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프랑수아즈의 아버지는 아직 지참금을 내놓지 않았지만,
그녀와 조르주는 언젠가는 그것을 받게 될 거라고 믿었다.
에르네스트 나르시스는 메이리냑에서 일하던 수줍은 소녀
루이즈 세르마디라를 아들 내외의 하녀로 보내주었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파리생활이 시작되자,
프랑수아즈는 집안 일을 꾸려 나가고 이질적인 사회 속에서
남편의 지위에 걸 맞는 아내로서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그녀를 이끌어 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지만,
두 사람은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사교계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조르주는 그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프랑수아즈에게는 그것이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그토록 충실하게 날마다 일하러나가는데도
왜 부자가 되지 않고 성공하지 못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르주는 아내한테 좀 더 교양을 쌓아야한다면서
문학과 연극을 배우라고 요구했다.
그는 고상한 취미를 아내에게 가르치고,
유행에 따라 옷을 멋지게 차려입는 법과
집안을 세련되게 꾸미는 법을 가르쳤다.
그녀는 총명했고 남편의 가르침을 좋아했지만,
이런 일을 하려면 돈이 들었다.
지참금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들은 아파트를 꾸미느라 큰돈을 지출했다.
프랑수아즈는 남편을 사랑했다.
남편이 원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거기에 맞춰 행동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신혼시절에는 남편과 열렬한 육체관계를 가졌고,
결혼생활의 인습적인 구조가 허물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이런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수녀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는 믿음을 그녀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생활에서 여자의 공식지위는 종속적이지만
여자의 영향력은 남자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수아즈는 평생동안 남편에게 복종했고,
불만이 있어도 하녀 루이즈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한테도 내색하지 않았다.
불만을 참느라 그녀는 감정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었기 때문에,
느닷없이 난폭하게 분노를 터뜨리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의 우울한 표정과 갑작스러운 역정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의지가 강하고 도도한 여자가 되었다.
그녀가 번득이는 눈으로 노려보면 누구나 기가 죽었다. 거만하다는 비난이 평생동안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따뜻한 마음씨와 동정심이 부족한 차가운 여자로 보였다.
푸랑수아즈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어머니 레옹틴과 똑 같았다.
그녀는 검소한 생활을 꾸리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조르주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했다.
그는 흑단으로 만든 육중한 가구와 빨간 바탕에 검은 무늬를 수놓은
화려한 카페트를 사들였다.
그들의 아파트는 생제르맹 가에 있는 아버지의 아파트만큼이나
호화롭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게다가 조르주는 결혼한 뒤에도 여전히 연극과 문학을 좋아했다.
연극 때문에 그는 자주 외출했고,
문학에 대한 애정 때문에 집을 책으로 가득 채웠다.
조르주는 또한 아내를 교육시켜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신식 남편이었다.
그는 아내도 자기와 똑 같은 취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수아즈는 남편의 이런 배려를 고맙게 생각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망설임이 있었다.
문학과 연극에 대한 취미는 교회가 금지하는
쾌락의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모양처로서 집안을 꾸려나가려면 취미 따위에
시간을 뺏길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 스무 살 난 여자는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 찬
결혼생활 속에 내던져졌지만,
그 어느 것도 체념하고 받아들일만한 시간여유를 갖지 못했다.
결혼 1주년 기념을 지내자마자
그녀는 첫아이를 낳았고,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의무와 책임이
그녀를 또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