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정(鄭蘭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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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명종 20). 조선 명종 때 척신(戚臣) 윤원형(尹元衡)의 첩. 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부총관 윤겸(允謙)이며, 어머니는 관비(官婢)출신이다.
>스스로 미천한 신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윤원형에게 접근, 그의 첩이 되었다.
>1545년 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모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그의 동생 윤원형의 사주(使嗾)에 따라 명종과 문정왕후에게 인종의 척족 윤임(尹任)이 그의 조카 봉성군(鳳城君:중종의 8남)을 왕위에 세습시키려 한다고 무고,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과 이조판서 유인숙(柳仁淑), 영의정 유관(柳灌) 등을 제거하게 하였다.
>그뒤 문정왕후의 환심을 얻어 궁중에 무상출입하는 한편, 1551년(명종 6)정실 김씨(金氏:安遂의 딸)를 축출, 적처(嫡妻)가 되었으며, 이어 김씨를 독살하고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작호를 받았다.
>봉은사(奉恩寺)의 승려 보우(普雨)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불교진흥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 모리행위를 하기도 하였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이 사림의 탄핵을 받아 황해도 강음(江陰)에 유배되자 함께 배소에 퇴거하였다.
>이때 김씨부인의 계모 강씨(姜氏)의 고발로 김씨독살사건이 탄로나자 사사(賜死)될 것으로 판단, 가노(家奴)에게 금부도사가 오면 알려달라고 하였는데, 금부도사가 평안도를 향하여 금교역(金郊驛)을 지날 때 이를 알리자 윤원형과 함께 음독, 자살하였다.
>죽은 뒤 본래의 신분으로 환원되었다.
윤원형이 문정왕후의 세력을 등에 없고 권력을 독점하게 되자 그 동안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친형 윤원로를 유배시켜 사사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애첩 정난정과 공모하여 정실부인 김씨를 독살하고 노비 출신인 그녀를 정경부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또한 정난정은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부를 축적하였다. 이 때문에 윤원형의 집에는 뇌물이 폭주하여, 한성 내에 집이 15채나 됐으며 남의 노예와 전장을 빼앗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고, 죽고 사는 것이 그의 손에 달렸다는 말이 오갈 지경이었다.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은 정난정의 자녀들과 다투어 혼인줄을 놓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정난정은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병조판서직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
* 문정왕후 윤씨
문정왕후 윤씨는 영돈녕부사 윤지임의 딸로 1501년에 태어났다. 1517년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45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성질이 독하고 질투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인종 집권시에는 툭하면 인종을 찾아가 '우리 모자(그녀와 명종)를 언제쯤 죽일 거냐'고 하면서 괴롭혔다고 한다. 명종을 대신해 섭정을 펼칠 때에는 왕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며, 수렴청정에서 손을 뗀 뒤에도 명종의 정사 운영에 지나친 간섭을 해 조정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심지어는 왕이 자신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매질을 하거나 독설을 쏟아 놓기도 했다. 그녀의 이런 지나친 집권욕은 결국 명종 대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조선 조정을 패권 다툼의 장으로 몰아갔던 희대의 악후 문정왕후는 1565년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