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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풍양속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효(孝)


BY .. 2001-05-01

★전원생활--이라는 월간잡지에서 옮겼어요.

미풍양속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는 효

어버이날이되면 이땅의 자녀들은 효를 실천하기위해 부산을 떤다.
쇼핑센터는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는 이들로 발디딜 틈이 없고,
명절이되면 전국의 도로가 부모를 찾아가는 자식들로 꽉 메워지는
진풍경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효가 사라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
도대체 효가 어떻게 변해가길래


요즘 김성규 씨 (45. 서울시 성북구)는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 같이 답답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는 요즘은 자꾸만 아내 눈치만 살피게 되고
한숨만 나온다.
김씨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이 효자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 에는 홀로 고생하면서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해서
허튼 짓은 하지 않았다.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작은 집도 한 채 사드렸고 매달 생활비도 보내드렸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내의 불만을 묵살해가며 매주 찾아뵙고
계속 생활비를 보내드렸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회사에서 승진을 하면서 일이 점점 많아지자
어머니를 찾아뵙는 날이 줄어들었다.

더구나 두 아이의 교육비가 늘어나자
솔직히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님이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뒤에는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자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태까지 자신은 어머니도 여자라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곱게 잘 살아왔으면서 새삼스럽게 무슨 재혼이냐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께 그러지 마시고 함께 살자고 했다가
아내에게 지청구만 먹었다.

아내는 김씨를 가리켜 정말 부모의 행복을 생각 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효'에만 집착하는 아들이란 말도 했다.
어버이날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의 재혼에 대해 의논하기로 했지만,
부모를 모시고 살 형편이 안 되는 자신의 처지와 정말 내가
어머니의 행복을 가로막는 불효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졌다.

전설이 되어가는 삼강오륜의 효자들

차선영씨 (35.서울시 강서구 목동)는
세 살 난 딸아이의 소꿉놀이 상대를 해주다가
갑자기 장난감을 집어던지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면서도 행여 전화벨 소리가 울리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마도 남편은 지금쯤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한 어머니를 업고
공주에 있는 둘째 언니 집에 가서 어머니의 끝없이 이어지는
신세타령을 듣고 있을 것이다.
차씨의 어머니는 딸 셋을 남부럽지 않게 애지중지 키워놔야
무슨 소용 있냐는 소리를 시작으로,
내 살 너희들이 다 파먹었으니
남은 내 인생을 책임지라는 말을 끝없이 반복하고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차씨와 함께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막내딸이 어렵다고 하자 서운함을 어쩌지 못하고
폭언을 퍼붓다가 돌아간 뒤 한동안 소식을 끊고 지냈다.
어머니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딨냐고 했지만
차씨는 서운한 것이 많았다.
자립심이 강한 자신과는 달리 위로 두 언니는
늘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 보냈고,
결혼하고 나서까지 손을 벌리던 사람들이었다.


누가 봐도 표나게 두 언니에게 금전과 정성을 아끼지 않던 어머니는
큰언니는 미국에 있고 둘째 언니는 몸이 부실하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과 함께 살기를 원했다.
차씨는 어머니와 한집에 살수는 있지만
일하는 출퇴근시간이 불규칙한 자신의 직업 때문에
어머니께 세끼 더운밥을 해드리기가 힘들뿐더러
성격도 맞지 않아 늘 싸울텐데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가
독하다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차씨도 아버지와 살면서 여자문제, 아들문제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정하게 지내고 싶지만
워낙 담백한 자신의 성격과는 달리 잔걱정이 많고
섬세하면서 까다로운 어머니와는 늘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남편은 당신만 좋으면 난 괜찮다고 하지만
시부모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언니나 자신의 집 가까운 곳에서 간병인을 얻어서
살고 자주 찾아보면 좋지 않으냐고 했지만 어머니는 자식을 놔두고
남의 손 빌어서 살기 싫다며 한사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삼강과 오륜을 사회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던 나라답게
효자, 효녀들에대한 얘기가 많이 전해져온다.
한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은 부모를 위해 딸기를 찾아 나선 이야기,
어머니가 좋아하는 귤이 바람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밤새 귤나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이야기,
병든 어머니의 몸보신을 위해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음식을 만들어 드렸다는 가난한 아들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평균수명 늘면서 부양기간도 함께 증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사람들은 자연스레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각인받고 자란다.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30~40대만해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를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효와 불효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세대는
'부모는 자식이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세대인 요즘
30~40대에서 심하다.


세대가 더 아래로 내려오면 전통적인 방식의 효는
우스개 소리로까지 여겨진다.
삼강오륜에 전해져오는 효자들은 효자병신이라는 '효병이'로
취급되는 형편이다.
효를 실천한 대표주자로 여겨지는 심청이는 요즘 잣대로 보면
그런 불효자식이 없다고도 한다.
부모눈을 뜨게 하려고 자신의 몸을 던졌다지만
자식을 먼저 앞세우고 세상에 남아 눈을 뜬 아버지는
죄책감으로 더 괴로워할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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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사 발행

<전원생활> 5월호에서
영덕 강구항이 아름답게 화보에 나와 있군요.
박라일락님...아름다운 곳에 사시는군요.
바다 물 빛깔이 몹시도 푸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