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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미개인


BY 파랑새 2001-06-03

2살된 아들이 폐렴으로 3인실 병동에 입원해 있을때다.
좁은 병상에서 아들은 링겔을 꽂은채 매일 혈관을 찾아 씨름하고,
나는 아들이 침대를 튀쳐나갈까봐 침대에서 아들과 꼼짝마라 였다.
두명이 애기 환자는 우리 보다 하루 먼저 함께 들어왔다고 했다.
내 앞 병상에는 우리애보다 2달 늦은 남자애지만,
등치는 우리 아들보다 5kg이나 더 나간다.
애 엄마는 28살인데도 애가 세명인데다
첫째는 벌써 여섯살이라고 한다.
옆 병상에는 6개월된 여자앤덴 눈웃음을 치는게 너무 귀엽다.
처음에 나는 왜 옆 병상에는 애기 엄마는 안 보이고
이모, 아니면 누난가 할 정도로 앳된 여자애가 그 작은 아기 곁에서 떠나줄 모르고 있을까 생각하다
참다 참다 궁금하여 내가 아기 엄마는 어디 갔어요 하고 물었더니
내가 애 엄마에요 하는게 아니겠어요.
나는 질문해 놓고는 깜짝 놀라고 무안해서
전 고등학생인줄 알았어요 했다.
21살이랜다.쇼킹!!!!
두 명 모두 우리 애랑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오게 되었다.
낮에 친구가 고생한다고 김밥이랑 일회용 커피를 사왔다.
밤 10시 쯤에 애 3명을 겨우 잠재우고
세명의 애기엄마와 쇼킹 신랑과 함께
그제서야 여유가 생겨 친구가 사온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내가 커피팩을 손이나 입으로 아무리 뜯으려고 해도 미끄러워 뜯길 생각을 전혀 안한다.
그걸 본 앞 병상 왈가닥 엄마가 내게 그것도 못 뜯냐고 하면서
단번에 뜯고는 "커피가 굳었네"하면서 내게 주었다.
나는 고맙다며 팩속의 하얀 팩을 뜯고 종이컵에 부었다.
2명의 엄마와 쇼킹 신랑도 똑같이 자기 컵에 하얀 팩을 뜯어 부었다.
그 순간 커피향이 진동을 하면서 "와, 원두커피네" 하면서 모두들 좋아했다.
쇼킹 신랑이 대표로 정수기에 가서 4개의 컵에 물을 부어 오면서 하는 말
"종이스푼이라 저어도 저어도 알갱이가 사라지지 않는데요?"
그러자 왈가닥 엄마가 그래요 하면서
사물함에서 나무젓가락을 꺼내더니만 커피를 젓기 시작했다.
아무리 저어도 알갱이는 그대로 있는데요.
에이 모르겠다.
커피향은 갈수록 진동을 더 하고, 모두들 그냥 마시기로 했다.
한 모금은 음미하면서,
두 모금째는 왜 이러지,
세 모금째는 에이 못 먹겠다.
알갱이가 너무 굵어서 도저히 입안이 깔깔해서 못 먹겠다고
나를 포함한 애기 엄마들은 커피를 마시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근데 쇼킹 신랑은 맛만 좋다며 한 컵을 다 마셨다.
나는 그때야 뭔가 이상해서 개봉안된 커피팩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사용설명서를 보니 무식이 탄로나서 어이가 없었다.
근데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다 젊은 엄마 아빠 들인데도 하나같이
현대판 미개인이었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팩으로 먹는 게 녹차만 아니고, 커피도 있다는 것을..............!
나도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그 커피를 준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는
참 맛있는 커피가 있다고 하면서 주고는 설명도 안 해 주고 가냐
하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니까 친구 배꼽을 잡고 웃는다.
"히즐러 커피" 하면 당연히 원두커피인줄 알았어야 되지 않겠냐고...
친구는 너무 웃어 배꼽을 잡을수도 없단다.
너무 쇼킹한 병실 가족들이라고들 놀린다.
괜히 원두커피는 향만 풍겨 마시지도 못하고
체면만 구겨서,
남아있는 커피팩을 다시 뜯을 마음이 없어지고 말았다.
커피는 마시지도 못하고 향만 온 병실안에 잔뜩 베어서 속이 쓰린다.
모두들 그제야 멋쑥한 웃음을 지며 피곤한 병동이 하루해를 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