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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j2000 2001-06-12


1999년..
두번의 공공근로를 나갔지요.
행복을 가져 오려고..
곧 근로수입이 늘어나는 것이 행복의 원천 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2차.
한여름.
지금은 다 갈아 엎어진, 해마다 홍수면 어김없이 물에 잠겨버리는
하천변부터 시작해
동내의 가장 높은 주택가까지..
우리의 손과 발이 안간데가 없었습니다.
뙤약볕도 먼지도 빗줄기도 바람도
모두가 우리의 즐거움이고 재산이었습니다.
조약돌 하나, 모래한줌,덜익은 땡감 한알, 새앙쥐 한마리 까지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4차.
가을이 넘어갈 무렵.
근무지로 지정된곳은
자원재생공사.
지금은 그 주변이 월드컵공사로
모두 파엎어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호젓한 오솔길 변 이었지요.
넓지는 않아도 잘 정리한 들판에서
재생가능용품을 선별하는 작업과
손수 두드려만든 간이작업장에서의 선별작업들....
눈싸인 길을 발길로 더듬어 오르내리는것도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가장 나어린 청년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박수와 웃음이
메아리쳐지던것도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거리로 남았습니다.
모두들 가난을 이겨보려는 밝은 마음씨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시간 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게는 그 작업들이 힘이 들었던지
일시적 마비 현상으로
결국 이듬해 1차근로에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공공근로에의 참여가 되고 말았지요.

몇달을 쉬다가
심심해서 파출부를 나간다고 나가다가
스쿠터를 탄채 넘어져
왼쪽 팔다리에 경상을 입었지요.
그랬어도 쉬엄쉬엄 파출부 일을 나갔더니
백화점에까지 일을 시켜 주더라구요.
며칠 나간 백화점 임대 점포에서
일백만원 줄테니 정식직원으로 근무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지만
건강에 자신이 없던터라
확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과로를 했었나 상당한 고통이 허리에와 집으로 돌아와 쉬었습니다.
그리고
테니스 엘보우라는것이 제게 왔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껏 잘 낫지도 않고
나았는가 싶으면 또 시큰거리고....
사람 미치겠네요....
겉으로 보아 멀쩡 하지나않나......
아예 팔을 못쓰는것도 아니고......

그래도
lg화학연계회사인 엘지위델스에서
저를 채용하겠다고해 며칠 나갔지요 .
그러나
몸은 편한 일이었지만
마침 그당시
미국 모슈퍼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길래 거길 갈 준비를 하려고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러가지 사정상
무산이 되었고.....

결국 올해 공공근로 신청은 자격미달로 못하고
취로사업신청 역시 안했습니다.
차라리 시간제 일이 나을것 같아서죠.
몸이 아파 일하다말고 병원에 다녀 오려면 점심을 굶어야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려면 어지럼증에 시달린적이 많아서 였죠.

역시
행복은 제 편이 아니더군요.
전 돈을 마련하기위하여 모 백화점 용역회사에 미화원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더군요.
시간만 나면 피곤에 지쳐 앉아만 있으려는 저를
짝궁이 좋아했겠어요?
게다가 아침나절이면 왜그리도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하던지.......
점심나절은 되어야 기상을 하던 저로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일이
정말 버거웠습니다.
결국
체력이 딸려서
보름만에 사직서를 제출했지요.
한달쯤후 감독님께서
더 쉴거냐고 전화가 왔길래
얼마나 필요하냐고했지요.
다섯명.
주위에는 없길래
인력센타와 인근 일하는여성의집에 연락을 했더니
몇명이 전화를 해왔고
나중에 감독님과 통화를하니
몇명이 왔더라고..
고맙다는 김감독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저는 마음이 편해졌었답니다.

아직도 제게 행복은 멀기만 합니다.
건강이 주는 행복.
가장 큰 행복이지요..
건강하면 근로노동의 수입은 극대화하니까요....
자신의 모든것으로 수입을 증대할수있는것은
정말 소중한것이지요.....
거기에 다른이들에게의 금전적,심리적 빚을 지지않고 살아거는것은
더욱더욱 행복한일이랍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건강으로 ,근로수입으로
여러분의 행복한 미래를 설계해 나가시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으며
오십을 바라보는 아줌마의 흰소리를
여기서 끝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