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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울음소리 듣기 힘들어진다


BY 아리사 2001-06-25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젊은이들이 떠나간 농촌의 얘
기도,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의 제목도 전혀 아니다. 오늘 한국사회
의 실제 상황이다.

출산율 1.42,


기발한 다산장려정책으로 종종 해외토픽거리를 제공하던
프랑스보다 낮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강력한 출산억제정책의 성공 사례는
더이상 자랑할 거리가 못된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우리 사회는 이
미 저출산율시대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경제적 어려움에만 얽매여 모성보호 양육지원
노인문제 등 인구대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현재의 감소 추세대로라면 절대 인구수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추정되는 2015년의 한국 상황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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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 휴일
날 긴급대책회의에 불려나온 각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출산력 급감으로 인구가 올해를 고비로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
습니다.

무엇보다 생산노동인구가 절대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런 추세로 간다
면 조만간 국가비상사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신설된 국가인구정책위원장의 설명이 끝나자 회의장은 일순간 술렁
거렸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해. 출산보조금을 300만원씩이나 책정하다
니.”
산업자원부 장관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받았다.

“맞아요. 다산장려금이란 건 또 뭐고, 세살될 때까지 다달이 보육
비 10만원씩을 국가에서 지급한다니 위원장은 제정신이요. 기저귀,
분유, 젖병값으로만 한해 국고에서 1조원씩 빠져나간단 말이오.”
재정경제부 장관이 상기된 얼굴로 쏘아붙였다.

“처음 문제가 드러났던 2001년부터라도 대비를 했으면 이 지경은
안됐을텐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더니, 그 꼴 아닌가.”

혼자 중얼거리던 총리가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 “어쨌던 대통령
지시 사항이오. 강력한 인구증산정책을 펴라는…. 결혼한 부부가 아
니라도 아이를 낳거나 낳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대상에게 출산장려
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해봐요.”

“그럼 옛날 유럽이나 일본처럼 동거 부부나 미혼모에게도….”

“연애 축하금이라도 줘야지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떻
게든 여성들이 마음을 바꾸도록 혜택을 줘야 해요.”

회의는 난상토론으로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인구 상황
은 10여년 전 여성계와 인구학자들이 경고한 것 이상으로 심각해져
있었다. 모성보호 관련 법이 경제계의 반대로 무산됐던 2001년 1.4
명꼴이던 가임여성 한명의 평균 출산 자녀수는 0.42명으로 낮아졌
다. 15년도 안돼 출산율이 3분의 1로 떨어진 셈이다.

대신 노인층은 두배나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15~29살의 젊은 노
동력 인구는 현재 15%에서 10년 뒤에는 아예 한자리수로 떨어지고
반면 65살 이상 고령인구는 20%를 훨씬 넘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동안 정부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외국인 노동
자를 더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결해왔다. 그러다 고령자 증가로 의료
비와 보험료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국민총생산이 10%나
곤두박질치자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선 것이다.

“출산휴가 확대와 육아휴직을 그렇게도 반대하던 경총에서는 여전
히 다산장려금도 분담하지 않겠다는 태도인 것 같더군요. 오히려 기
업들이 나서야 할 일 같은데….” 복지부 장관이 화살을 슬그머니
경제계로 돌렸다.

“아니, 그쪽은 부족한 생산노동력을 외국인들로만 채울 작정을 해
요. 올해 700만명이요, 700만명.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이는데도 이
제 한계가 왔어요.”

“이러다가는 우리 군도 외국인 용병을 사와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맞장구를 쳤다.

잠자코 지켜보던 여성부 장관이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각료들에게 이
제라도 여성인적 자원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주문했다.

“모성보호법이라도 애초 약속대로 시행했으면 여성들이 이렇게 출
산을 기피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일하는 여성의 출산과 육아부담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요. 국가 차원에서 미리미리 모성보호에 앞장섰다면 수십조원
에 이르는 사회적 손실과 추가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교육부 장관이 거들었다.

교육부가 내놓은 자료에는 최근 5년 사이 빈교실이 전체의 20%에 이
르렀다.

일선 학교마다 학생수가 줄어들자 교실을 통폐합시켰기 때문이다.
각 교육청은 신규 교사를 채용할 엄두도 못냈고, 희망퇴직 방식으
로 교사 10명 가운데 2명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 대학입시경쟁이니 고3병이니 하는 말은 사전에나 있을 정도로 대학들 역시 신입생이 모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젊은층 이민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과중한 세부
담 때문이라지만 별 소득도 없는 젊은이들도 너도나도 떠나는 판이어
서 나이제한을 둘까 합니다.” 법무부는 경제활동인구 감소와 노령인
구 증가로 국민 1인당 세부담이 커지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이민자수가 전년도에 비해 200%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시각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전국노인정당추진협의회(전노추) 주
최로 궐기대회가 열렸다.

“만국의 노인들이여, 단결하라!” “노인운동가를 국회로!”

엄동설한에도 아랑곳없이 노인 1만여명이 황금색 머리띠를 동여맨
채 구호를 외쳤다.

정부는 그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난 고령인구를 감당하지 못했다. 대
회는 정부의 궁색한 노인복지정책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이날 밤 9시 뉴스에서는 국무회의와 탑골공원 시위 두 장면이 교차
하고 있었다. 인구의 불균형이 사회·경제적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으며 청년층 인구의 부족은 노동력 부족은 물론 군병력 부족까지 야기해 국방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언급에 이어, 봄이 오기 전에 강력한 출산장려정책을 펴야한다는 전문가의 해묵은 지적이 뒤따랐다.

[한겨레 5월1일자]